‹ 목록으로 12년 학비, 최후의 전장

2화

강민호 대마법사에 대해서는 학원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고급 비단 법포에 파란색 배지를 단 모습으로 학원 복도를 지날 때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터주었는데, 그 이유는 배지의 색깔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10년 넘는 모험의 이력 때문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서쪽 대사막에서 혼자 살아남아 돌아온 게 세 번이고, 마수 토벌 성공률이 90퍼센트를 넘는다고 했는데, 그 숫자가 정확한지는 아무도 확인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걸어온 자리마다 남는 소문의 밀도로 보건대, 적어도 절반은 진짜일 거라는 게 나의 추측이었다. 나는 그 사람 아래에서 실전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하게 설레기도 했는데,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조차도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어쩌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살아있는 전설 밑에서 뭐라도 하나 배워두는 게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값어치 있게 쓰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은근히 깔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산과는 별개로,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출정 전날, 강민호 대마법사는 소대원 다섯 명을 학원 뒤뜰로 불러 모았다. 저녁 무렵의 햇빛이 그의 법포 자락에 걸려 어른거렸고, 그 뒤로 서 있는 배경이 유독 넓어 보였는데, 그건 그의 존재감이 그만큼 압도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임무는 서쪽 산맥 초입, 마을 두 곳 사이의 협곡 요괴 처리다" 하고 그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백승훈 단장의 용병단과 합동으로 움직일 것이며, 너희는 정식 전력이 아니라 보조 인력으로 투입된다. 그 말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나든 백승훈 단장이든 즉시 후퇴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 명령에는 어떤 이유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명령이 왜 필요합니까" 라고 차강윤이 곧바로 되물었다. "저희도 3년간 마법을 수련했습니다. 요괴 몇 마리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강민호 대마법사는 그 말에 픽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교실에서 배운 요괴와 실제로 이빨을 드러내는 요괴는 전혀 다른 생물이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 차이를 모르는 학생들이 매년 몇 명씩 다치니까 하는 소리다." "다치는 정도입니까, 아니면—" 강윤이 다시 물으려 했지만, 강민호 대마법사가 손을 들어 그 말을 막았다. "매년 한둘은 돌아오지 못한다" 하고 그가 짧게 덧붙였다. 그 한마디에 뒤뜰의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는데, 강윤조차도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해서는 또 다른 걱정이 앞섰다. 흰색 배지를 단 채로 정규 용병단 앞에 서는 것, 그것 자체가 나에게는 이미 하나의 시험이었으니까. 실기 성적 61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실전에서는 어떻게 드러날지, 나조차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61점이라는 숫자는 낙제를 겨우 면한 수준이었고, 그 점수표 옆에 적힌 담당 교수의 짧은 평가는 '기본기는 갖췄으나 화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이었다. 화력이 부족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걸 굳이 종이에 박아놓고 보니 기분이 묘하게 씁쓸했다. 출정 당일 아침, 마차 두 대가 학원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고, 그 옆에 물소 가죽 갑옷을 입은 근육질의 남자와 광두의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이름으로는 강철과 오태식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백승훈 단장의 용병단 소속이었다. 강철은 팔뚝에 오래된 흉터가 여러 개 있었고, 오태식은 그 흉터를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듯 소매를 짧게 걷어 올린 채였다. "오, 이번엔 학원 애들이 붙는다며?" 하고 오태식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명 안 되네. 다섯이면... 다 죽어도 우리 손해는 아니고." "태식아, 그런 말은 좀" 하고 강철이 옆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굳이 그렇게 딱딱하게 안 해도 돼. 우리도 다 한때 처음 나가는 신입이었으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그 편한 말투가 오히려 낯설어서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 서 있던 강윤은 그 대화를 아예 무시하고 백승훈 단장에게 먼저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차강윤 가문의 강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그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그 태도만 보면 누가 봐도 훌륭한 귀족 자제였는데, 나는 이미 그 예의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원 안에서 강윤은 나를 몇 번이나 '평민'이라는 단어로 지칭했고, 그때마다 그 단어에는 은근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으니까. 백승훈 단장은 강윤의 인사에 짧게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 무심함이 오히려 강윤의 자존심을 조금 건드렸는지, 강윤의 미소가 아주 잠깐 흔들리는 걸 나는 봤다. 마차가 출발하자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다가 옆자리에 앉은 한혜인과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마차 바퀴 소리가 덜그럭덜그럭 반복되는 와중에, 그녀의 손은 무릎 위에서 살짝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떨려?" 하고 혜인이가 조용히 물었다. "당연하지" 라고 내가 대답하며 웃었는데, 그 웃음이 얼마나 힘이 없었는지 혜인이도 대번에 알아챈 눈치였다. "...우리 둘 다 이번이 처음이잖아" 하고 혜인이가 덧붙였다. "그래도 넌 화구 마법 하나는 확실하게 다룰 줄 알잖아. 그거면 충분해." "충분한지는 요괴가 결정하겠지" 라고 내가 자조적으로 받아쳤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혜인이는 그 말에 피식 웃더니 내 손등을 톡 두드렸다. "그래도, 넌 항상 그거 하나는 실패 없이 하잖아. 그게 사실 더 무서운 재능일 수도 있어." 나는 그 말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화구 마법 하나.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는 유일한 공격 마법이었는데, 3년 동안 매일같이 연습해서 겨우 안정적으로 시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위력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실패 없이 매번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나의 유일한 무기였다. 어쩌면 그게 재능이 아니라 그냥 끈기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결과는 결과였다. 마차 반대편에서는 유하늬가 강윤에게 뭔가 열심히 말을 걸고 있었는데, 강윤은 그 말에 적당히 미소를 지어주면서도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협곡에 도착하면 저랑 같이 움직이실 거죠?" 하고 하늬가 물었고, 강윤은 "상황 봐서" 라고 짧게 대답했는데, 그 짧은 대답에도 하늬는 실망하는 기색 없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유하늬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마법 능력이 혜인이보다 못했고, 이번 실전 평가에도 낙제 후보로 배정된 것 같았는데, 정작 그녀의 관심사는 시험 통과보다는 강윤과의 거리를 좁히는 쪽에 더 있어 보였다. "성재, 넌 왜 그렇게 조용해" 하고 강윤이 뒤늦게 윤성재에게 말을 걸었다. 소령 가문 출신인 윤성재는 마차 구석에 앉아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서 딱히 긴장이나 기대는 읽히지 않았다. 그냥 이 임무 자체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별로 걱정 안 해서" 라고 성재가 짧게 대답했다. "요괴 몇 마리 정리하는 거, 우리한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그렇게 자신 있어?" 하고 강윤이 되물었는데, 성재는 그 물음에 어깨만 슬쩍 들었다가 내렸다. "가문 대대로 마법사 집안인데, 이 정도도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그 말에는 은근한 자만이 배어 있었는데, 나는 그 자만이 실전에서 어떻게 부서질지 궁금해졌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강민호 대마법사가 조금 전에 했던 경고를 떠올렸다. 교실에서 배운 요괴와 실제 요괴는 다른 생물이라는 말. 그리고 매년 한둘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겁게 다가올지, 이때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마차가 산맥 초입에 다다르자, 강민호 대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살피더니 표정이 조금 굳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은 굴뚝에서 연기 한 줄기도 오르지 않았고, 길목에 나와 있어야 할 상인들의 좌판도 텅 비어 있었다. "...예정보다 협곡 초입 마을이 조용하군" 하고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는데, 그 한마디가 마차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방금까지 자신만만하게 떠들던 성재도, 강윤에게 말을 걸던 하늬도, 일순 입을 다물었고, 마차 바퀴가 자갈길을 밟는 소리만 유독 크게 귀에 박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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