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장터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었다.
돌바닥이 차가웠다.
무릎뼈에 닿는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 풍기는 냄새들이 뒤섞여 코를 찔렀다.
말린 생선, 향신료, 사람들의 땀 냄새.
그 사이로 피 냄새가 섞여 들었다.
내 피 냄새였다.
"이 쓸모없는 것이."
조 부인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부터 들렸다.
그리고 등줄기에 불이 붙는 듯한 통증이 지나갔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이가 살을 파고드는 감각까지 선명했다.
'소리를 내면 더 오래 맞는다.'
지난 삼 년 동안 배운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처음 이 방법을 배웠을 때는 소리를 참는 것조차 서툴렀다.
지금은 숨소리조차 죽이는 법을 안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뭐라 속삭였다.
또 누군가는 지나가던 걸음을 조금 늦추었을 뿐, 곧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여우 귀가 달린 노예를 편들어줄 사람은 이 대선제국 어디에도 없었다.
청림국이 무너지기 전에는, 나도 저 사람들처럼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는 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쪽이 되었다.
그 사실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찍이 다시 떨어졌다.
이번엔 어깨였다.
옷이 찢어지며 살갗이 드러났고, 그 위로 오래된 흉터들이 겹쳤다.
새 상처와 오래된 흉터가 서로 자리를 다투듯 겹쳐졌다.
손목 안쪽에도 흉터가 있었다.
스스로 낸 것들이었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팔려면 팔리는 값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니냐!"
조 부인이 소리쳤다.
그녀의 아들들이 뒤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중 하나가 내 쪽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손끝에 낀 반지가 볕에 번쩍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또 시작이구나.'
이런 순간이 몇 번이었는지는 이미 셀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 인파 사이에서 걸음 소리가 멈췄다.
다른 발소리들과 확연히 달랐다.
또각, 또각.
구두 굽이 돌바닥을 짚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걸음.
귀족이 분명했다.
"거기서 멈추십시오."
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는 억양의 흐트러짐이 전혀 없었다.
조 부인이 채찍을 든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도 고개를 들었다.
목을 드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비단으로 지은 겉옷을 걸친 여인이 서 있었다.
옷깃에 새겨진 문양은 은실로 놓여 있었고, 그 무늬만으로도 값을 짐작할 수 있는 옷이었다.
목선을 따라 흐르는 옷감의 결이 부드러웠고, 허리춤에는 작은 장식용 검이 매달려 있었다.
실용성보다는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장식이었을 것이다.
손끝의 반지는 세 개, 모두 다른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혼담을 넣은 곳이 세 곳이라는 뜻일 것이다.
'저 신발, 흙 한 점 묻지 않았다.'
마차를 타고 왔고, 걸어온 거리가 짧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이 자리까지 굳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왜 걸음을 멈췄을까.'
귀족들은 대개 노예가 맞는 모습을 구경거리로 여길 뿐, 멈춰서지 않는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지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이 여인은 그런 부류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놀랍도록 오래 머물렀다.
마치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시선이 내 눈, 뺨, 그리고 목덜미의 흉터를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
관찰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부인."
그녀가 조 부인을 향해 말했다.
목소리에 흐트러짐 없는 예의가 담겨 있었으나, 그 아래에는 서늘한 무언가가 깔려 있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노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제국법상 벌금 대상입니다."
조 부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제 소유물입니다. 제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뾰족하게 올라갔다.
"소유물이라도 지나치게 훼손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지요."
여인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
웃음이라기보다는 계산의 표시처럼 보였다.
"마침 저는 개인 시녀가 필요합니다. 그 아이, 파실 생각 없으십니까?"
조 부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값을 올리려는 생각이겠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 조 부인과 여인 사이를 오갔다.
구경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
"이 아이는 손이 많이 가는 물건입니다. 값이 상당히 나갈 텐데요."
"값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인이 곧바로 답했다.
망설임이 전혀 없는 대답이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미리 정해두고 온 것처럼 매끄러웠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과는 다른, 낯선 종류의 떨림이었다.
가슴 안쪽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는데, 통증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저 사람은 왜 나를 사려는 걸까.'
동정일까, 그저 취향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좋은 징조는 아닐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나를 사간 사람들 중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으니까.
조 부인이 못마땅한 얼굴로 값을 불렀다.
일반적인 노예 값의 세 배가 넘는 액수였다.
주변에서 누군가 낮게 숨을 들이켰다.
여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금 계약서를 작성하죠."
조 부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예상보다 쉽게 거래가 성사된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세 배 값을 부른 건 상대가 물러서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 얼굴에 비웃음이 스쳤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아가씨. 이 아이는 손버릇이 나쁩니다."
조 부인이 나를 곁눈질하며 덧붙였다.
"자기 손목이나 긋는 게 특기지요."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몇몇의 시선이 내 손목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움인지, 다른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여인의 시선이 다시 내 손목으로 향했다.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아까보다 길었다.
그 눈빛에서 나는 동정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읽었다.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 부인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이 상황 전체를 향한 것인지.
혹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었다.
"계약서, 지금 씁시다."
여인이 다시 한번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더 이상의 흥정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조 부인의 하인이 급히 어디선가 종이와 인장을 가져왔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였다.
내 이름과, 내가 누구였는지는 그 종이 위에 적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물건의 값과 인수인의 이름만 오갈 뿐이었다.
나는 그날, 내 삶의 주인이 또 한 번 바뀌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이번이 몇 번째 주인인지 헤아리다가, 헤아리는 것 자체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 부인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불길한 것을 보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비웃음이 남아 있었는데, 그 웃음이 유난히 오래 걸려 있었다.
마치 이 거래가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눈빛이 계약서에 적힌 어떤 조항보다도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