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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회사 건물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늘 나를 보면 허리를 굽히던 안내 데스크 직원이 오늘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층에서 내리는 스태프 두 명이 나를 보고는 서둘러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 등을 보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이 커졌다는 걸. 사무실 문을 열자 실장님이 먼저 나를 맞았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평소라면 커피라도 한 잔 건네며 너스레를 떨었을 사람인데, 오늘은 그저 눈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대표님은 이미 그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듯 바라봤다. 방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앉아. 나는 시키는 대로 앉았다. 다리를 모으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러고 보니, 이 방에 처음 앉았던 날이 떠올랐다. 십 년 전, 나는 스물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손이 떨렸던 것도 기억난다. 그때는 이 소파가 이렇게 딱딱한 줄 몰랐다. 무명 배우 시절, 나는 오디션마다 떨어졌다. 스무 번, 서른 번, 셀 수 없이 많은 탈락 통보를 받으며 대본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다 한 감독의 말을 들었다. 눈빛이 너무 착해. 넌 악역은 못 해.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조명, 냉방이 세게 돌아가던 오디션장의 서늘한 공기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말이 시작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웃는 연습보다 웃지 않는 연습을 했다.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는 연습을 몇 시간씩 했다. 사람들 앞에서 다정한 말투를 쓰지 않았다. 인터뷰에서도 늘 무뚝뚝했고, 팬미팅에서도 최소한의 말만 했다. 팬이 손을 흔들면 가볍게 목례만 했다. 그렇게 십 년, 나는 냉혹한 악역 전문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대중은 나를 무서워했고, 그게 곧 내 커리어였다. 스크린 속에서 내가 웃으면 사람들은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그 반응이 좋았다. 아니, 그 반응이 필요했다. 그런데 오늘, 그 십 년이 단 몇 장의 사진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던 사진, 노숙인에게 담요를 건네던 사진. 누군가 몰래 찍어 올린 그 몇 장이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을 뒤흔들고 있었다. 대표님이 낮게 입을 열었다. 여론이 어떻게 될지 몰라. 광고주들 벌써 세 곳이 연락 왔어. 계약 재검토하겠다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목구멍이 바짝 말랐다. 침을 삼키려 해도 삼켜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 검색어는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켰다가 다시 꺼버렸다. 화면에 뜬 내 이름 옆에 붙은 숫자가 무서웠다. 댓글을 보는 게 무서웠다. 이미지가 무너진다는 게 이렇게까지 두려운 일이었나.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무서운 걸까, 그냥 사람들이 내가 다정하다는 걸 안 것뿐인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하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정함이 알려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서운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들어올 배역은 없었다. 십 년 동안 쌓아 올린 이미지가, 그 사진 몇 장 앞에서 유리처럼 얇아 보였다. 대표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활동 중단하고 지켜보자.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활동 중단이라는 말이 내 귀에는 은퇴 선언처럼 들렸다. 나는 십 년을 쌓아온 걸 이렇게 하루아침에 잃는 건가. 스무 살의 내가, 서른 살의 내가, 대본을 붙잡고 밤을 새우던 그 모든 시간이 헛것이 되는 건가.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걷다가 나는 걸음을 멈췄다. 눈앞이 흐려졌다. 벽에 손을 짚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만할까. 그 생각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배우 그만할까. 이 판을 떠나면 편해지지 않을까. 무서운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복도의 형광등이 유난히 하얗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팔을 붙잡았다. 고개를 들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작은 체구에 커다란 눈, 명찰에 윤서아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부터 배정된 매니저였다.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다급했다.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내 팔을 더 단단히 붙잡았다. 저 그만두지 마세요. 저도 오늘 첫 출근이거든요. 나는 그 뜬금없는 말에 헛웃음이 났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녀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저한테는 중요해요. 강도현 씨가 오늘 그만두시면 저는 첫날 매니저 자리를 잃는 거니까요.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그 말이 어이없으면서도, 이상하게 숨이 조금 트이는 걸 느꼈다. 방금까지 목을 조르던 무언가가 살짝 풀린 느낌이었다. 윤서아는 내 팔을 잡은 채로 다시 물었다. 뭐 좀 드셨어요? 아침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뭐라도 드세요. 사람이 굶으면 판단력이 흐려져요. 나는 순순히 끌려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 나를 걱정하는 사람의 손을 뿌리칠 힘이 없었다. 복도 끝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걸음이 생각보다 빨랐다. 나는 그 걸음을 따라가느라 잠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윤서아는 동전을 넣고 캔커피를 뽑아 내밀었다. 캔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서늘한 감촉이 퍼졌다. 저 오늘 대표님한테 큰소리쳤어요. 강도현 씨 잘 챙기겠다고. 그러니까 강도현 씨도 저 잘 챙겨주셔야 해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진심처럼 보였다. 나는 캔을 받아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캔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실장님이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이미지 회복용으로 아침 생방송 출연을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강도현 씨, 내일 아침이에요. 국민 아나운서로 불리는 한소은 씨 프로그램. 생방송으로 해명해야 해요.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손끝이 다시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윤서아가 내 표정을 살피며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캔커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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