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강도훈은 산을 내려가는 동안 한 번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발밑에서 마른 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그에게는 즐거운 듯했다.
앞장서서 걷는 그의 등판은 여유로웠다.
반면 강도윤의 걸음은 무거웠다.
산길은 좁았다.
돌부리가 곳곳에 솟아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오후의 빛이 조각조각 떨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소나무 냄새가 진하게 번졌다.
"흑요봉엔 왜 올라간 거야."
강도훈이 물었다.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묻잖아."
강도훈이 다시 말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거긴 아무도 안 올라가는 데야. 영맥도 안 통하고, 짐승도 안 사는 데."
강도윤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대답 안 하는 게 습관이 됐나 보네."
강도훈이 그의 어깨를 밀쳤다.
강도윤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손바닥이 흙바닥에 쓸렸다.
작은 돌이 손목을 긁고 지나갔다.
등 뒤에 있던 두 사람이 웃었다.
한 명은 목이 갈라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다른 한 명은 낮게 킥킥거렸다.
한때는 저 웃음이 강도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저들이 강도윤의 뒤에 서서 함께 걷던 시절이 있었다.
강도훈이 저런 눈으로 강도윤을 볼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강도훈이 뒤에서 걷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전 일이었다.
영맥 서열이 뒤바뀐 뒤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말투가 바뀌었다.
걷는 순서가 바뀌었다.
그리고 웃음의 방향이 바뀌었다.
강도윤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발이 그의 어깨를 다시 눌렀다.
"일어서지 마."
강도훈이 낮게 말했다.
"내가 일어서라고 할 때까지."
숨이 막혔다.
등이 흙바닥에 눌렸다.
돌부리가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등 뒤로 습기 찬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도윤은 눈을 감았다.
주먹이 날아왔다.
옆구리에 통증이 번졌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네 번째 주먹은 조금 더 세게 들어왔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소리를 내면 더 재밌어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턱을 악물었다.
숨을 짧게, 코로만 쉬었다.
두 사람은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한 명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저번보다는 오래 버티네."
다른 한 명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더 웃기지."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통증이 오는 속도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참느라 감각이 둔해진 거라고.
하지만 다섯 번째 주먹이 들어왔을 때, 강도윤은 분명히 느꼈다.
방금 맞은 자리의 통증이 이미 절반쯤 가라앉아 있었다.
주먹이 지나간 자리마다 뜨거운 기운이 스쳤다.
마치 상처가 안에서부터 아물어가는 느낌이었다.
피부 아래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는 감각.
낯설고, 동시에 익숙한 감각이었다.
강도훈이 발을 멈췄다.
"…뭐야."
그가 강도윤의 옷자락을 걷어 올렸다.
방금까지 붉게 부어 있던 옆구리가 멀쩡했다.
피멍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살갗은 그저 조금 붉은 기가 남았을 뿐, 그마저도 눈앞에서 옅어지고 있었다.
강도윤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낸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 반응하고 있었다.
웅—
뼈 깊은 곳에서 울림이 다시 느껴졌다.
어제까지 없던 감각이었다.
산꼭대기에서 들었던 그 소리와 비슷했다.
낮고, 멀고, 그러나 분명히 몸 안에서 울리는 소리.
"이거 뭐냐고."
강도훈의 목소리가 커졌다.
뒤에 있던 두 사람도 다가와 강도윤의 옆구리를 내려다보았다.
"약을 발랐나."
한 명이 중얼거렸다.
"요즘 그런 약도 나온다던데."
"약 발랐다고 상처가 이렇게 사라지냐."
강도훈이 그를 노려보았다.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저 부정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강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이 일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바닥의 쓸린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도 이미 절반쯤 아물어 있었다.
강도훈의 눈이 그 손을 발견했다.
표정이 조금 더 딱딱해졌다.
"손도 그래?"
그가 낮게 물었다.
강도윤은 손을 슬쩍 감췄다.
하지만 이미 본 것을, 안 본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강도훈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푸른빛이 살짝 도는 검이었다.
9품이라는 등급이 붙은 검이었다.
칼날이 오후 빛을 받아 얇게 번뜩였다.
칼끝이 강도윤의 팔을 향했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자."
강도윤의 눈이 커졌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됐어, 형."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필요 없어."
강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쥔 손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조금 뒤로 물러섰다.
다른 한 명은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칼끝이 그의 팔뚝을 얕게 그었다.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피가 흘렀다.
분명히 흘렀다.
붉은 선을 따라 피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상처 가장자리가 스스로 붙기 시작했다.
살갗이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맞물렸다.
흐르던 피도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강도훈의 손이 멈췄다.
뒤에 있던 두 사람도 숨을 멈췄다.
"이게 뭐야."
한 명이 뒤로 물러섰다.
"이거 사람 맞아?"
"조용히 해."
다른 한 명이 그의 팔을 잡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강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검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강도윤의 팔뚝에서 떠나지 못했다.
강도윤 자신도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처는 이제 흐릿한 붉은 선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 선조차 눈앞에서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는 알았다.
이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산에서 만난 그 금빛 시신과, 그 순간 들려온 낮은 각인의 소리와, 지금 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흑요봉 정상에서 본 것이 눈앞에 다시 떠올랐다.
금빛으로 빛나던 시신.
그 위에 새겨진 문양들.
점. 선. 물결. 탑.
그리고 그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울렸던 그 소리.
지금 이 울림과 똑같은 소리였다.
강도훈이 검을 거두었다.
표정이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오히려 더 서늘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강도훈이 낮게 말했다.
"이건, 내가 먼저 알아봐야 할 것 같으니까."
"형."
강도윤이 그를 불렀다.
"이거 뭔지 알아?"
강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뒤에 있던 두 사람을 향해 눈짓을 했다.
"너희도 입 다물어."
그가 말했다.
"어디서 이 얘기 나오면, 그게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내가 찾아낼 거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의 여유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강도윤을 한 번 더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두 사람도 그 뒤를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도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몸은 멀쩡했다.
그런데 마음은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방금 그의 몸에서 일어난 일을, 강도훈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강도훈은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계산이 끝나면, 반드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강도윤은 자신의 팔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붉은 선은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손끝으로 그 자리를 천천히 눌러보았다.
아무 통증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걸음을 옮겼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매일 걷던 길인데도, 오늘은 다른 곳을 걷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구도 그의 얼굴을 오래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날 밤, 강도윤은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보며 팔뚝의 흐릿한 붉은 선을 만지고 또 만졌다.
창밖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바람이 창틀을 스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감고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렸다.
흑요봉 정상.
금빛 시신.
그리고 그 낮은 울림.
그 울림이 지금 자신의 몸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무엇이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강도훈이 무엇을 알아보러 다닐지, 그것 역시 강도윤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