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비석이 깨어나는 밤

1화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삼킨 게 돌덩이였다는 사실을, 나는 죽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했다. 조물경(造物境). 천 년의 세월 동안 단 세 명만이 올랐다는 그 경지에 서서, 나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만고진천비의 파편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삼키는 순간 뼈가 타는 듯한 열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고, 핏줄 하나하나가 불로 지지는 듯 뒤틀렸다. 눈앞이 새하얗게 지워지며,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캄캄했다. 소리도 없었고, 냄새도 없었고,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을 때, 어디선가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이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천장은 낮았고, 낡은 서까래에 거미줄이 얼기설기 걸려 있었다. 이불에서는 삭은 짚 냄새가 났으며, 손등에는 잔주름 하나 없이 뽀얀 살결이 붙어 있었다. 손가락을 몇 번이나 오므렸다 펴보았는데도 현실감이 붙지 않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돌아왔다. 말 그대로 천 년을 거슬러, 백가의 셋째 도련님 백강의 몸으로. 웃음이 나왔다. 씨발, 진짜로 됐다고? 죽기 직전에 삼킨 돌덩이 하나가 천 년을 되돌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되묻을 대상이 없었다. 나는 손바닥을 들어 눈앞에 대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진짜였다. 이 몸이, 이 방이, 창밖에서 들려오는 시녀들의 발소리가 전부 진짜였다.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조물경까지 올랐던 무공의 이치, 전생에서 겪었던 모든 굴욕과 승리, 그리고 무엇보다 — 이 시기 이후 벌어질 일들. 석 달 뒤, 큰아버지 백중호가 아버지 백정헌과 고모 강옥영을 독으로 죽인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여동생 설아가 한독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둔다. 전생의 나는 이 모든 걸 지켜만 봤다. 아니, 정확히는 알지도 못했다. 그때 나는 설빙아라는 계집에게 미쳐 있었고, 무공에 미쳐 있었고, 가족이 죽어가는 걸 알아챌 여유조차 없이 수련만 팠던 머저리였으니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나는 그저 다음 초식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했었다. 설아의 마지막 숨을 지켜본 것도, 사실 지켜본 게 아니라 시신이 다 식은 뒤에야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나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몸속 어딘가에, 아마 단전 근처 어디쯤인가, 만고진천비의 파편이 있을 것이다. 삼켰으니 사라지진 않았을 거다.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가라앉힌 뒤, 전생에서 익혔던 감각을 총동원해 몸속을 훑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명륜조차 열리지 않은 몸이라 기감(氣感)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는 느껴져야 했다. 온기든, 파장이든, 하다못해 이물감이든. 그런데 그냥 조용했다. 죽은 돌덩이 하나가 뱃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나는 배를 몇 번이나 눌러보고, 손바닥으로 단전 부위를 문질러보고, 심지어는 숨을 참으면서 압박까지 줘봤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괜찮아. 첫 시도부터 될 거라 생각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바닥에 내려섰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휘청거렸지만, 벽을 짚고 버텼다. 열다섯 살짜리 몸뚱이는 전생의 마지막 순간, 조물경의 절정에서 산맥을 쪼갤 힘을 냈던 그 육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손끝에 힘을 주는 것조차 서툴렀다. 이 허약한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명륜을 열어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그래야 석 달 뒤 벌어질 참극을 막을 힘이라도 생긴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가부좌를 틀었다. 등을 곧게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눈을 감았다. 전생에서 조식(調息)의 이치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던 기억을 더듬어, 숨을 깊게 들이쉬고 아랫배로 밀어 넣기를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호흡이 익숙해질수록 정신은 점점 아래로, 단전이라 불리는 그 자리로 내려갔다. 열 번을 넘기고 서른 번을 넘겼을 때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무릎 아래 저리는 감각이 서서히 발끝까지 퍼졌다.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 반응이 오길 바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십 번. 칠십 번. 백 번을 넘겼다. 여전히 조용했다. 어금니를 악물었다. 절박함이 부족한 걸까, 방법이 틀린 걸까, 아니면 이 돌덩이가 원래부터 나를 살릴 생각이 없었던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와중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숨을 몰아넣었다. 이백 번, 삼백 번을 넘어가자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흔들렸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쿵쿵 울렸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듯 뻑뻑했다. 결국 나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숨을 헐떡이며 천장의 서까래를 올려다보았다. 거미줄 한 줄기가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마저 원망스러웠다.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명륜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만고진천비는 여전히 죽은 듯 고요했다. 회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뼈저리게 다가왔다. 불운은 성실함을 배신했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 거다. 전생에서 조물경까지 오르는 데 필요했던 그 수많은 갈래길 중 하나가 지금 이 시점에도 반드시 존재할 거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나 앉으려 했다. 무릎에 힘을 주고, 벽을 짚고, 두 번째 시도를 시작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 마당을 가로지르는 소리, 그리고 곧이어 내 방문 앞에서 멈추는 소리. 문고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문이 벌컥 열리고, 시녀 난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치맛자락이 흙투성이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건지, 말을 뱉기도 전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도련님! 아가씨가... 아가씨가 이상해요!" 나는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걸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좍 끼쳤고,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표현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나 싶었다. 설아. 한독은, 예정보다 훨씬 빨리 찾아오고 있었다. 기억 속 시간표로는 아직 여유가 있어야 했다. 적어도 며칠, 아니 몇 주는 더 있어야 겉으로 티가 날 정도로 진행될 병이었다. 그런데 지금, 회귀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이 순간에, 벌써 증상이 터졌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인가. 정말 우연일까?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여유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상관없었다. 벽을 짚고, 문지방을 넘고, 난영을 밀치듯 지나쳐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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