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비석이 깨어나는 밤

3화

강옥영 고모의 눈빛은, 그날 밤 내가 잠들지 못하게 만든 유일한 이유였다. 뭐였니,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얼버무렸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다시 캐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어깨를 두드리고 방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었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불 속에서 나는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다. 천장을 노려보다가, 다시 옆으로 돌아눕다가, 또 반대로 돌아눕다가. 눈을 감으면 설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장면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강옥영의 그 하얗게 굳은 얼굴이 떠올랐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을 하면 믿어줄까. 믿지 않으면, 나는 미친놈으로 낙인찍힌 채 이 집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조물경까지 오른 수련자였던 내가, 열다섯 살짜리 몸뚱이 속에서 헛소리를 하는 걸로 취급받는다는 건 상상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석 달 안에 설아는 죽고, 아버지와 고모는 큰아버지의 독에 쓰러진다. 그건 확정된 미래였다. 내가 겪어본, 이미 지나간 미래였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감았고, 다음 날은 온종일 몸이 무거웠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고 있는데, 저 사람은 모른다. 그 비대칭이 목덜미를 조여왔다. 다음 날 밤, 자시가 넘은 시각. 나는 결심을 굳히고 강옥영의 처소로 향했다. 회랑을 걷는 동안 발밑의 냉기가 버선을 뚫고 올라왔고, 그 서늘함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문 앞에서 몇 번이나 발걸음을 돌릴까 고민했지만, 결국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기 직전,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안에서 낮은 대답이 들려왔고,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영도 함께 있었다. 강옥영이 가장 신뢰하는 시녀였고, 설아의 방에서도 늘 곁을 지키던 아이였다. 두 사람은 이미 뭔가를 짐작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강옥영의 눈 밑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밤새 잠을 못 잔 건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고모."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제 말을, 믿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냥 들어만 주세요." 강옥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은 무릎 위에서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말했다. 천 년 뒤의 미래에서, 조물경까지 오른 수련자로 살다가, 죽음 직전 만고진천비라는 신물을 삼키고 이 몸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이대로라면 석 달 안에 큰아버지 백중호가 아버지와 고모를 독살하고, 그보다 앞서 설아가 한독으로 죽는다는 것. 말을 하는 동안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낯설었다. 열다섯 살짜리 아이의 목소리로,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뱉어내고 있었으니까. 말을 마치자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촛불 하나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난영은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강옥영의 얼굴은 종이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과, 동시에 뭔가를 확인받은 듯한 눈빛이 뒤섞여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거, 저도 압니다." 나는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설아가 아까 나아진 것도, 제가 절박했던 순간 몸속에서 뭔가 반응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삼킨 돌이... 반응한 거예요." "큰형님이..." 강옥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큰형님이 정말 그런 짓을..."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했다. 큰아버지 백중호의 야심에 대해서는 그녀도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모님." 난영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실은... 얼마 전에 큰나리께서 안채 약방을 유심히 살피시는 걸 봤습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일이라 여겼는데." 강옥영의 얼굴이 한층 더 굳었다. "약방을요?" 나는 되물었다. "네. 약재 목록을 확인하시고, 관리하는 의원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방 안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내 말이 완전히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는 증거가, 이미 이 집 어딘가에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아." 강옥영이 내 손을 잡았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온도가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설아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나는 뭐든 할 거야." 난영도 무릎을 꿇었다. "저도 도련님을 따르겠습니다. 도련님이... 아니, 고모님 덕분에 청루에 팔려가지 않고 이 집에서 살 수 있었다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그 은혜, 이렇게라도 갚겠습니다." 예상보다 빠른 믿음이었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백중호의 야심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내 말이 완전히 허황되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사람은 절망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그날 밤부터 우리는 은밀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할 건, 어제 느꼈던 그 반응이 우연이었는지, 재현 가능한 것인지였다. 두 번째는, 그 반응을 확인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설아의 몸 상태를 매일 은밀히 살피며 한독이 언제부터 퍼지기 시작하는지 시점을 좁혀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매일 밤 자시가 지난 뒤 후원 별채에서 모이자고 했다. 낮에는 평소처럼 지내되, 밤에는 명륜 각성을 위한 은밀한 수련을 하기로. "그런데 강아." 강옥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절박함이 있어야 반응한다고 했잖니. 그럼... 어떻게 매번 그런 상황을 만들 거니?" 좋은 질문이었다. 나도 아직 답을 몰랐다. 죽음의 위협을 재현하려면 실제로 위험해야 했고, 그렇다고 진짜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물에 빠져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 가야 하나, 아니면 절벽 끝에 매달려야 하나.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죽음에 가까운 위기, 극한의 두려움, 잃을 게 있는 절박함. 그런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했고, 그건 결코 유쾌한 방법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방법은...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강옥영은 잠시 나를 응시했다. 열다섯 살짜리 조카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려는 눈빛이었다. "강아, 몸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는 말아라." 그녀가 낮게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지금 이 집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아는 사람이야. 네가 잘못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논의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이어졌다. 큰아버지가 언제 움직일 것인지,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아니면 알리지 말아야 할지.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계속 오갔고,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정해졌다. 우리는 함께 움직인다. 그날 밤 처소로 돌아가는 길, 회랑을 지나던 중 저 멀리서 등불 하나가 흔들리며 다가오는 걸 보았다. 큰아버지 백중호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늦은 시각에 왜 이곳을 지나가는 걸까. 나는 재빨리 몸을 기둥 뒤로 숨겼다. 등에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숨을 최대한 죽이고, 등불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발걸음은 곧게 강옥영의 처소 쪽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볼일일까. 방금까지 내가 있던 그곳으로, 그가 지금 걸어가고 있었다. 등불 아래 드러난 그의 표정은, 평소의 온화한 큰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기둥 뒤에 숨은 채, 나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등불이 점점 멀어지면서도, 그 걸음걸이만은 이상하게 또렷하게 눈에 박혔다.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이미 정해진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걸음. 강옥영과 난영은 아직 방 안에 있을 것이다. 방금까지 내가 나눈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새어나갔을 리는 없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목소리도 낮게 유지했다. 그런데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우연일까. 정말, 이 시각에 이곳을 지나는 게 우연일까. 나는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등불이 처소 문 앞에 멈춰 서는 걸 보며, 나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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