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누나, 심장이 이상해요

5화

다음 날 아침, 나는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마룻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지만, 그 빛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어젯밤 이후로 누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 역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머그컵에는 어젯밤 마시다 만 커피가 그대로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셔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미지근함을 넘어 차갑게 식어버린 그것이, 지금 이 집 안의 공기와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았다. 누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노크를 할까, 말까.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그 손끝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초인종이 울린 건 오전 열 시쯤이었다. 강소연이었다. 지아 씨 계세요? 그녀가 물었다. 방에 있을 텐데, 아직 안 내려왔어요. 나는 대답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강소연이 거실로 들어서다가 나를 힐끗 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요. 뭔 일 있었어요?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 별일 없었는데. 강소연이 소파에 걸터앉으며 팔짱을 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였다. 지아 씨가 아침부터 방에서 안 나오는 거 보면 뭔 일 있었던 거 같은데.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매가 날카로웠다. 저한테는 말 안 해도 되는데, 너무 담아두지는 말아요. 지아 씨, 겉보기엔 강해 보여도 은근히 여린 사람이거든요. 나는 그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여린 사람이라니. 강소연이 알고 있는 누나와 내가 알고 있는 누나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놓친 조각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강소연은 더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가벼웠다. 노크 소리가 두 번, 곧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낮은 목소리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게 어렴풋이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는 잠시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다. 적어도 이 집에서 나 혼자만 어색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강소연이 처음 이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누나가 돌아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녀는 늘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누나와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 편안함이 부러웠던 걸까. 나는 그 감정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오후에는 이하연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 동기이자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야, 너 오늘 시간 되냐? 나 오랜만에 학교 앞 카페 갈 건데. 나는 답답한 집 안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바로 나가겠다고 답했다. 옷을 대충 걸쳐 입고 집을 나서는데, 등 뒤로 여전히 닫혀 있는 누나의 방문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카페에 도착하니 이하연이 창가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늘 앉던 자리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카페의 이 자리를 좋아했던 그녀였다.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하연이 물었다.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나는 얼버무렸다. 너희 누나 온다며. 왔어? 이하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때, 8년 만에 보니까. 나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끝을 타고 흘렀다. 많이 변했더라. 예상보다 훨씬. 어떻게 변했는데? 이하연이 재촉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냥, 뭐랄까. 나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 이하연은 별생각 없이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지난 학기 시험 이야기, 요즘 새로 생긴 술집 이야기, 누군가의 연애 소식.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지만, 대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누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부터가 이상하게 힘겨웠다. 어젯밤 복도에서의 일을, 어깨에 닿았던 손의 온기를,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하연이 왜 벌써 가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카페 문을 나서자 저녁 바람이 차게 불어왔다. 하늘은 이미 붉은 기를 잃고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나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왔어? 누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응. 나는 짧게 대답하며 신발을 벗었다. 신발끈을 푸는 손가락이 유독 굼떴다. 누나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다. 어제는 미안했어. 내가 너무 급하게 들이댔나 봐. 나는 대답 없이 그 손의 온기를 느꼈다. 뿌리치고 싶다는 생각과, 그대로 두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두 감정이 부딪히며 가슴 한복판이 묘하게 저릿했다. 앞으로는 천천히 할게. 누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지우야, 나는 너랑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어. 그게 잘못된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깨 위 누나의 손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예전의 누나와 지금의 누나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이,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 간극을 메우자는 말이, 어째서 이렇게 낯설게 들리는 걸까. 나는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누나의 시선이 계속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복도에서 있었던 일이, 오늘 어깨 위에 얹혔던 손의 감촉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눈을 감았지만, 잠은 얕고 자주 끊겼다. 그런데 새벽 무렵, 물을 마시러 방을 나섰다가 나는 복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목이 말라 무심코 문을 열었을 뿐인데,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낯익은 실루엣이 들어왔다. 내 방문 앞에, 누나가 벽에 기댄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걸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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