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던졌다.
빗물이 튀는 골목 바닥에, 배달원은 넘어진 오토바이에 다리가 끼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헬멧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트럭 헤드라이트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계산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거기서 나와요!!"
나는 소리치며 달려갔다.
발밑에서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운동화 안까지 축축하게 젖어 들어오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덥석-
배달원의 팔을 붙잡았다.
젖은 옷 사이로 잡힌 팔이 미끄러웠다.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온몸의 힘을 다해 그를 끌어냈다.
무겁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무겁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제발, 제발···.'
속으로 되뇌면서 발을 굴렀다.
오토바이 다리에 걸려 있던 그의 발목이 겨우 빠져나왔다.
콰아아앙-!
트럭이 오토바이를 그대로 덮쳤다.
방금 전까지 배달원이 있던 자리였다.
바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잠깐이라도 늦었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그를 안은 채로 바닥에 함께 굴렀다.
촤악-
빗물이 튀고, 팔꿈치가 아스팔트에 긁혔다.
피가 살짝 배어나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쿵, 쿵, 쿵.
빗소리보다 더 크게 내 귓속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배달원은 헬멧을 벗으며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젊은 남자였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 저 지금 살았어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손끝이 부들부들 떠는 게 눈에 보였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네, 괜찮아요. 다행이에요."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웃었다.
트럭 기사가 놀란 얼굴로 뛰어와 상황을 확인했다.
"미, 미안합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편의점에서 나온 손님, 우산을 쓰고 지나가던 행인, 근처 가게 사장까지.
"괜찮으세요?"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누군가 119에 신고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저 배달원 옆에 앉아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빗방울이 계속 얼굴을 때렸지만, 이상하게 그것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그가 숨을 고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함께 숨을 몰아쉬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빨간 불빛이 골목을 물들였다.
구급차가 오고, 배달원이 실려 가기 전, 그는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정말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아니에요. 몸조리 잘하세요."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아주며 말했다.
구급대원이 그를 들것에 눕히고 차 안으로 옮겼다.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다시 울리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게 끝이었다.
나는 우산도 없이 다시 빗속을 걸었다.
팔꿈치가 쓰라렸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는 게 불편했지만, 그런 것쯤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사람 하나 살렸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빗방울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문득 어제 야근하다 잠깐 졸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피곤했었나.
오늘은 이상하게 몸은 무거운데 마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집 앞 골목에 들어섰을 때, 눈앞에 이상한 것이 떠올랐다.
[미확인 존재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뭐야, 이거."
허공에 떠 있는 반투명한 글자였다.
장난인가 싶어 손을 휘저어봤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술 취한 사람이 뭘 잘못 봤나.
아니, 나는 술 한 잔도 안 마셨는데.
눈을 몇 번 깜빡여봤다.
글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떠 있었다.
[선의의 행동이 관측되었습니다.]
[대상: 강도윤]
[자격 심사 중···]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내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발밑이 갑자기 물처럼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이거 진짜 뭐야.'
이게 꿈이라면 지금 당장 깨고 싶었다.
하지만 팔꿈치의 쓰라림은 여전히 생생했다.
꿈이라면 이렇게까지 아플 리가 없었다.
[자격 확인 완료.]
[성좌 '모계의 전쟁과 사랑'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성좌라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쿠웅-
세상이 통째로 뒤집히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의 가로등이, 빗방울이, 눈앞의 벽돌담이 전부 하얗게 번져나갔다.
마치 누군가 세상 전체를 지우개로 지우는 것 같았다.
색이 빠지고, 형체가 흐려지고, 남는 건 오직 하얀 빛뿐이었다.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했다.
"뭐야, 이거, 뭐냐고···!"
나는 소리쳤지만 내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발버둥 쳐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을 뻗어보려 해도, 손끝이 어디 있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온몸이 붕 뜨는 느낌.
중력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추락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무섭다는 감정보다, 그저 멍한 느낌이 더 컸다.
그리고 눈앞이 새하얗게 타오르듯 밝아졌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엄마, 미안해요. 저 오늘도 밥은 잘 챙겨···.'
며칠 전 통화했을 때, 엄마는 또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야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선명하게 떠올랐다.
거기서 정신이 끊겼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천장을 보고 있었다.
하얀 천장, 은은한 조명, 어딘가에서 규칙적으로 삐-삐-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분명 병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병원과도 달랐다.
천장의 재질부터 이상했다.
매끈한데 어딘가 낯설고, 조명의 색깔도 형광등이 아닌 부드러운 은빛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이 무거웠다.
주삿바늘이 팔에 꽂혀 있었다.
투명한 링거액이 관을 따라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분명 골목에서 빛에 휩싸였는데.
그 다음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낯선 여자 넷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이대도 제각각이었고, 옷차림도 낯설었다.
그런데 그들 눈에는 하나같이 걱정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한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도윤아··· 도윤아, 정신이 드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이게 대체, 어디···.'
다른 여자들의 얼굴도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전부 다른 나이, 다른 인상.
하지만 모두 나를 보는 눈빛만은 똑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눈앞에 다시 그 글자가 떠올랐다.
[당신은 새로운 세계로 전송되었습니다.]
심장이 다시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눈앞에 서 있는 저 낯선 사람들은, 대체 나를 누구라고 부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