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냄새였다.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그 위로 옅게 섞인 꽃향기.
병실 천장이 낯설었다.
새하얀 형광등, 그 옆으로 링거 걸이가 흔들렸다.
'여긴 어디지···?'
머리가 무거웠다.
마치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다가 막 떠오른 기분이었다.
"도윤아, 정말 정신 든 거지? 나 알아보겠어?"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여자는 키가 작았다.
어깨까지 오는 흑발 보브컷 머리, 다부진 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다부진 얼굴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손이었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어···머니?"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이 나왔다.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나조차도 놀라웠다.
왜 이 사람을 어머니라고 불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마치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녀는 그 말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야, 엄마야. 한서연이야. 기억하지···?"
한서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낯선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도 '강도윤'이었다.
한서연의 아들.
강씨 가문의 여섯째 아들.
정보는 계속해서 흘러들었다.
이 병원의 이름, 이 도시의 이름, 강씨 가문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게를 갖는지.
하지만 그 정보들은 마치 남의 것을 빌려온 것처럼 어색했다.
내 것이 아닌 옷을 억지로 껴입은 느낌이었다.
[호스트의 신체·기억 정보가 부분적으로 동기화되었습니다.]
[동기화율: 61%]
나는 그 문구를 보며 숨을 삼켰다.
'동기화라니. 그럼 나는 이 사람의 몸에···?'
61퍼센트.
그럼 나머지 39퍼센트는 어디로 간 걸까.
사라진 걸까, 아니면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도윤아, 왜 그렇게 멍해? 어디 아파?"
한서연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물었다.
갈색 머리, 온화한 인상의 남자였다.
목소리에서부터 사람 좋은 느낌이 뚝뚝 흘렀다.
"아버지···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강정훈이야. 우리 아들 목소리가 좀 이상해졌네."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저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 뒤로 서 있던 백발의 노인이 팔짱을 끼며 나를 살피듯 훑어봤다.
검은 조끼에 빨간 코트, 번 스타일로 틀어 올린 백발.
분위기가 병실과 어울리지 않게 서늘했다.
"성격이 바뀐 것 같구나."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할머니, 그게 무슨···."
한서연이 놀라서 되물었다.
"눈빛이 달라졌어. 예전엔 여자만 봐도 인상을 찌푸리던 아이였는데."
할머니, 강여옥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빛엔 의심과 흥미가 반쯤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이 불편했지만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도 느꼈다.
'그래, 이 세계의 나는··· 여자를 싫어했었나 보구나.'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이유로 그렇게 여자를 멀리했을까.
다행히도, 나는 그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이 낯선 가족들에게 어떻게든 정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강여옥은 계속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다가, 결국 팔짱을 풀지 않은 채 한 걸음 물러섰다.
"당분간 지켜봐야겠구나."
그 말이 왜인지 선고처럼 들렸다.
병실 문이 열리고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5'8 정도의 키에 근육이 옷을 뚫고 나올 듯한 체격이었다.
문을 여는 손길에서부터 힘이 느껴졌다.
"동생, 괜찮아?"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목소리는 컸지만, 그 안에 걱정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형···이세요?"
"그래, 나 민준이야, 큰형."
민준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크고 두꺼운 손이었다.
그 손아귀 힘에 잠깐 숨이 막힐 뻔했다.
그 뒤로 안경 쓴 남자와, 둥근 얼굴에 사업가처럼 보이는 남자도 함께 들어왔다.
"둘째 태호야."
안경 쓴 남자가 짧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말투에서부터 신중함이 느껴졌다.
"셋째 윤재고."
둥근 얼굴의 남자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영업용 미소처럼 익숙해 보였다.
형들 셋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새삼 이 가족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아들이 여섯이라니. 이 세계는 대체 뭐가 다른 거지.'
병실 안이 순식간에 사람으로 가득 찼다.
좁은 공간에 여섯 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선들 속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때, 한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윤아, 혹시··· 기억이 안 나는 거니?"
병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몸의 진짜 기억은, 나에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조금··· 흐릿해요. 죄송해요."
한서연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괜찮아, 괜찮아. 살아있으면 됐어."
그녀는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손이 따뜻했다.
그 온도가 낯설면서도, 묘하게 그리웠다.
민준이 옆에서 코를 훌쩍였다.
"동생아, 다시 못 일어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 큰 덩치가 눈물을 참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짐짓 진지해 보였다.
태호는 안경을 슬쩍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의사들도 반신반의했어. 이렇게 눈 뜬 게 다행이야."
윤재는 그 와중에도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래도 얼굴은 그대로네. 다행이다, 다행."
그 순간, 손목 안쪽이 뜨끔거렸다.
나는 소매를 걷어 손목을 확인했다.
거기엔 붉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화상 자국 같기도, 자연스러운 문신 같기도 한 형태였다.
두 개의 초승달이 서로 등을 맞댄 모양이었다.
"이··· 이게 뭐예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한서연과 강정훈, 형들까지 모두 그 문양을 보며 얼굴이 굳었다.
병실 안 온도가 순식간에 낮아진 것 같았다.
"이거··· 원래 없었던 거야."
강정훈이 낮게 말했다.
민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와 문양을 살폈다.
"이런 게 갑자기 왜 생겨?"
강여옥만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 말 없이 그 문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다른 누구의 걱정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문장 '모후의 총애'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축복: 매혹 (자동), 회복 촉진, 은닉된 잠재력 잠금.]
나는 그 알림창을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매혹? 이게 무슨 소리야.'
문장이라는 단어도, 축복이라는 단어도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섦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매혹'이라는 두 글자였다.
자동으로 발동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발동한다는 소리인가.'
그때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검은 반안경을 쓴 40대 초반의 여자가 들어왔다.
"환자분 상태 좀 볼게요."
그녀가 다가오며 말했다.
차분하고 사무적인 말투였다.
"정하은 선생님, 우리 아들 좀 자세히 봐줘요."
한서연이 다급하게 부탁했다.
정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녀의 발걸음이, 왜인지 조금씩 느려졌다.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걸음이 완전히 멈췄을 때,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
정하은이 나를 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동공이 살짝 커진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
한서연이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불렀다.
정하은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아, 아니에요. 잠시 딴생각을. 그, 그럼 검사 좀 시작할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청진기를 쥔 손끝도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걸 눈치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손목 위의 붉은 문양이 아까보다 조금 더 뜨겁게 느껴졌다.
'설마, 저 반응이··· 그 문장 때문인가.'
병실 안 사람들은 여전히 안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이 몸에서 벌어질 일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