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법 좀 숨기겠습니다

1화

천장에 매달린 모빌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나무로 깎은 새 세 마리, 물고기 두 마리.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솜씨가 나쁘지 않다. 옅은 벚나무색 도료가 칠해져 있고, 물고기 지느러미 부분에는 은박까지 살짝 입혀놨다. 이런 걸 만들려면 시간이 꽤 들었을 텐데. 아마 이 저택 어딘가에 목공에 재주 있는 하녀나 집사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걸 두 살짜리의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죽고 나서 눈을 뜬 게 벌써 두 해 전이다. 스물둘에 방구석에서 폐인처럼 살다가 어느 날 그냥 죽었다. 이유도 몰랐다. 마지막 기억은 침대에 누워 웹소설을 읽다가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갓난아기의 몸이었고, 이 세계가 내가 읽다 만 웹소설 '백수 환생기'의 세계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정말이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되는 건가. 이렇게 되는 거구나. 처음 며칠은 그냥 멍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목도 못 가누는 몸으로 뭘 할 수 있겠나. 그저 누워서 천장을 보고, 사람들 목소리를 듣고, 조금씩 이 세계의 정보를 주워 모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확신했다. 이건 진짜 그 소설이다. 내가 3권까지 읽다 접었던, 딱히 명작도 아니었던 그 판타지 소설. 이름은 석도훈. 이 저택의 둘째 아들이자 유일한 아들. 아버지는 석강호, 어머니는 서지은.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없으니까. 원작에서도 이 가문은 그럭저럭 이름값 있는 마법 명가로 나왔다. 다만 비중은 크지 않았다. 조연 중에서도 조연, 배경 설명 한 줄로 끝나는 그런 위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또 시작이다. 요람 안에서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온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데도 몸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마력이 흘러나온다. 원작에서 이 세계 마법사들은 최소 열 살은 넘어야 첫 발현을 한다고 했다. 그것도 재능 있는 놈들이나 그 나이에 겨우 흉내를 내는 수준이었다. 나는 두 살이다. 아니, 정확히는 두 살하고 삼 개월. [미세 마력 유출 감지] 머릿속에서 낮은 알림이 스친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나만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이것도 원작에는 없던 기능이었다. 전생의 게임 시스템 같은 게 왜 나한테 붙어 있는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처음 이 알림을 봤을 때는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뭔가 힌트라도 주는 건가 싶어서. 근데 두 해 동안 겪어보니 이 시스템은 그냥 감지하고 경고만 할 뿐, 해결책은 절대 안 준다. 있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 지금 중요한 건 저 모빌이다. 모빌 끝에 달린 새 한 마리가 부르르 떨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는 깃털처럼 얇게 깎인 나무 날개에서 파직, 하고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속이 뒤틀린다. 안 돼. 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마력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몸속에서 뭔가가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진다. 마치 수도꼭지를 억지로 틀어막는 느낌. 두 살배기 몸으로 이런 걸 제어한다는 게 얼마나 무리한 짓인지는 안다. 어른의 정신머리가 있어도 몸이 못 따라주면 다 소용없다는 걸 이 두 해 동안 몸으로 배웠다. 그래도 해야 한다. 지금 이 방에 누구든 들어오면 끝이다. 원작에서 두 살에 마력을 발현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안다. 정확히는 이 소설 초반부에 나오는 '괴물 아이'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느 귀족가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마력 폭주를 일으켜서 결국 신전에 끌려가는 이야기. 그 아이는 실험체가 됐다. 산 채로. 그 장면을 읽었을 때는 그냥 판타지 클리셰다, 하고 넘겼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 그게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타는 냄새가 옅게 났다. 모빌의 새 한 마리, 날개 끝이 검게 그슬려 있었다. 증거를 지워야 한다. 두 살짜리 팔로 요람 난간을 붙잡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몸이 이렇게 약한 게 이렇게까지 서러운 일인지 예전엔 몰랐다. 전생에는 팔 굽혀 펴기 한 번 안 해본 몸이었어도 최소한 서 있을 순 있었는데. 지금은 요람 난간을 붙잡은 손가락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다. 손을 뻗어봐도 모빌까진 한참 멀다. 저 새 한 마리를 떼어내려면 최소 서른 센티는 더 자라야 할 것 같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아니 정확히는 이 조그만 가슴팍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저 그슬린 자국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말을 못 하는 나이다. 그럼 저게 발견되면 어떻게 되지. 하녀가 발견하면 별일 아니라 넘길 수도 있다. 근데 만약 이 가문에 마법사가, 마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원작에서 석강호는 이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마법사였다. "도훈아, 엄마 왔어." 서지은의 목소리다. 문이 열린다. 나는 재빨리 손을 내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기 특유의,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 사실 이 표정을 짓는 데는 이제 도가 텄다. 두 해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연습한 표정이다. 눈을 크게, 입은 살짝 벌리고, 시선은 초점 없이. 어른 연기 백날 해도 이보다 어려운 연기는 없었다. 엄마가 요람 위로 얼굴을 들이민다. 금발이 흘러내려 내 볼을 스쳤다. 좋은 냄새가 났다. 이 세계 기준으로도, 전생 기준으로도 미인이다. 서지은은 항상 이런 식으로 갑자기 방에 들어온다. 노크도 없이, 발소리만 남기고. 처음엔 그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고 안심할 순 없다는 게 문제지만. "우리 아기, 뭐 하고 있었어?" 엄마의 시선이 모빌로 옮겨갔다. 나는 속으로 숨을 멈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엄마의 눈이 모빌을 훑는다. 새 세 마리, 물고기 두 마리. 그중 하나가 그슬려 있다. 눈치챌까. 눈치채면 뭐라고 할까. 만약 이걸 남편에게, 석강호에게 얘기하면 어떻게 되나. 별의별 생각이 두 살배기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어? 이거 왜 이래…" 엄마 손끝이 그슬린 새 날개를 만졌다. 미묘한 표정이 스친다. "불이라도 났었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손끝으로 그슬린 부분을 살짝 문질러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웃으며 넘겼다. 그냥 낡아서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촛불이라도 근처에서 흔들렸나 싶은 얼굴이었다. "하녀한테 새 걸로 바꿔달라고 해야겠네." 나는 안도했다. 동시에 알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걸. 이번엔 넘어갔다. 근데 다음번은. 그다음 번은. 마력이 이렇게 제멋대로 터져 나오는데, 언제까지 운으로 넘길 수 있을까. 오늘은 모빌이었다. 다음엔 뭐가 될지 모른다. 이불이 될 수도 있고, 유리창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이 방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두 살짜리 몸에 어른의 정신이 갇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힘을 품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위기를 만들어낼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 이 저택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엄마가 나를 안아 올렸다. 따뜻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이 사람은 아직 내가 뭘 숨기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냥 평범한, 조금 신기한 아기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이 따뜻함을 지키려면, 나는 계속 숨겨야 한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숨길 수 있을지는, 나도 몰랐다. 다만 확실한 건, 이 저택에 곧 손님이 올 거라는 사실이다. 원작 1권 초반에 등장하는, 이 가문의 운명을 뒤바꾸는 그 손님이. 날짜를 세어보면, 얼마 남지 않았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