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독을 마신 건 내 발로 걸어가서 마신 거였다.
한양성 중앙 대전, 국왕과 왕비, 문무백관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나는 성녀의 관을 쓰고 축배를 받았다. 삼 년간 지맥에 영혼을 갈아 넣어 결계를 유지한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였다. 대전 기둥마다 금박이 번쩍였고,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촛불 수백 개를 매달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 나라가 나한테서 뽑아 먹은 걸로 저런 걸 세웠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공로를 치하한다면서 잔에 독을 타는 건 무슴 심보인지 모르겠지만, 뭐 이 나라 왕실 사람들 심보가 원래 그랬으니까.
문무백관들이 도열해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하게 다들 비슷했다. 존경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고, 그냥 곧 없어질 물건을 구경하는 눈. 그중에서 국왕은 눈도 안 마주쳤다. 왕비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웃고 있었다. 웃는 거 다 보이는데 뭘 가리나 싶었다.
"언니, 이거 마시고 편히 쉬어."
유서은이 웃으면서 잔을 내밀었다. 내 동생. 나보다 세 살 어리고, 나보다 백 배는 예쁘고, 나보다 천 배는 사악한 애였다. 저 목소리, 저 웃음,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저게 진심인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언니 손 꼭 잡고 걸어 다니던 애가, 지금은 내 잔에 뭘 넣었는지 뻔히 알면서 저렇게 웃는다. 그때는 내가 참 순진했지.
"서연, 성녀의 소임은 여기서 끝이야."
이신후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약혼자였던 남자. 삼 년 전엔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지금은 내 동생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잡은 채로 나를 보면서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도 재주다 싶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유통기한이 이렇게 짧다는 걸 그때 알았다.
"소임이 끝난다는 게 이런 뜻인 줄은 몰랐네요."
나는 잔을 받으며 웃었다. 웃는 게 웃겨서 웃은 게 아니라, 안 웃으면 울 것 같아서 웃었다. 삼 년. 삼 년 동안 매달 지맥에 영혼을 밀어 넣으면서 몸이 삭아가는 걸 느꼈다. 처음엔 손끝이 저렸고, 다음엔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고, 나중엔 심장이 자주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밤마다 이불 속에서 심장 소리를 세어보곤 했다. 셋, 넷, 멈춤. 다시 하나, 둘. 그게 무서워서 잠을 설친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나를 도구로만 봤다. 도구가 낡으면 버리는 거고, 새 도구가 생기면 갈아 치우는 거고.
잔 안의 술은 붉었다. 저게 무슨 색이었는지 나중에 기억하려고 애써봤는데, 그냥 붉었다는 것밖에 안 남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던 게 이상했다. 삼 년 동안 손이 떨리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죽으러 가는 마지막 순간엔 떨리지 않더라.
독이 든 술은 달았다. 이상하게 달았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위장이 뒤틀리는 감각이 왔고,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뜨거운 게 아니라 차가웠다. 몸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는데, 그게 독인지 아니면 억울함인지 구분이 안 됐다.
"어? 언니 왜 그래?"
유서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저것 봐라, 연기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네. 저러니 다들 속지. 나도 처음엔 속았으니까. 이신후는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게 더 웃겼다. 최소한의 연극도 안 해줄 만큼 나는 이미 쓸모없는 존재였다는 뜻이니까. 사랑했던 남자가 옆에 서서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내가 쓰러지는 걸 지켜본다. 그 무심함이 독보다 더 독했다.
바닥에 쓰러지면서 천장을 봤다. 화려한 샹들리에, 금박을 입힌 기둥, 이 나라가 나에게서 빨아먹은 것들로 지어진 궁전. 숨이 안 쉬어졌다. 몸이 차가워지는데 이상하게 머리는 맑았다. 억울하다, 분하다, 이런 감정보다 먼저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삼 년 전, 처음 지맥에 손을 얹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유서은이 언니 힘내라고 손수건을 쥐여줬었다. 그 손수건,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안 하고 싶어서 내 등 떠민 거였다. 이신후는 그때 옆에서 잘할 수 있다고 웃어줬다. 그 웃음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자기 짐 하나 던 것에 대한 안도였을 거다. 그런 걸 사랑이라고 믿었던 내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좀 웃겼다.
몸이 굳어가는데 눈물은 안 났다. 울 힘도 없었던 건지, 아니면 이제 와서 눈물 흘릴 가치도 없다고 몸이 판단한 건지. 그냥 눈을 뜬 채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야 한쪽에서 뭔가 반짝였다. 손톱만 한 크기의 빛 덩어리였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그 빛이 내 눈앞으로 다가와서, 마치 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멈췄다.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무도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으니까. 국왕도, 왕비도, 유서은도, 이신후도. 다들 내가 널브러진 걸 구경하기만 했다.
뭐야, 저건.
죽어가는 마당에 이상한 것에 관심이 가는 것도 웃겼다. 그 빛은 은은하게 흔들렸는데, 촛불이나 마법진의 빛과는 결이 달랐다. 뭔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숨을 쉬는 것 같은, 그런 흔들림.
의식이 끊기기 직전, 그 빛이 아주 작게,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뭐라고 속삭인 것 같았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목소리라기보다는 진동 같은 거였고, 말이라기보다는 감각 같은 거였다. 다만 그 순간 확실히 느낀 감각이 있었다. 뭔가가, 나를, 붙잡았다.
시야가 완전히 하얗게 뒤덮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건 유서은의 얼굴이었다.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저것도 연기였을까, 아니면 진짜 좀 무서웠던 걸까. 이제 와서 알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천장이 달랐다. 화려한 대전의 샹들리에가 아니라, 낡은 목조 지붕이었다. 나뭇결이 그대로 보이는, 옹이 자국까지 익숙한 지붕. 익숙한 냄새가 났다. 먹다 남은 약초 냄새, 낡은 침구 냄새,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흙바람 냄새. 이거 내 방 냄새인데. 그런데 이 방은 삼 년 전에 이미 없어진 방이었다. 내가 성녀 책봉을 받으면서 궁으로 옮겨가기 전에 쓰던, 변방 사가의 낡은 방.
이상하다. 이 방, 부서졌다고 들었는데. 성녀가 된 이후에 이 집 자체가 다른 용도로 바뀌었다고, 그런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없어진 방 이불 속에 누워 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봤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삭아가던 손이 아니었다. 매끈하고, 힘이 있고, 젊었다. 손등에 있던 잔주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삼 년 동안 지맥에 갈려나가면서 생겼던 흉터도, 얼룩도 없었다.
젊다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는데, 그게 죽음의 전조가 아니라 그냥 건강한 사람의 심장 박동이라는 게 낯설었다. 방을 둘러봤다. 낡은 서랍장, 벽에 걸린 색바랜 부적,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익숙했다. 저 나무, 저거 삼 년 전 벼락 맞아서 죽은 나무인데, 지금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가지마다 초록 잎이 무성하게 돋아 있었다. 죽었던 나무가 저렇게 살아 있으면 안 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