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채팅창에 뜬 그 한 줄을 보고, 나는 하마터면 마이크를 끌 뻔했다.
[숨은게님, 손목에 그 흉터, 언제 생긴 거예요?]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마우스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굳었고, 나는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화면 너머 채팅창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화님]이라는 아이디는 늘 조용했다. 이모티콘 몇 개, 짧은 안부 인사 정도가 전부였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게 낯설었다. 그 무해했던 이름이 이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들고 나타날 줄은, 나는 미처 몰랐다.
나는 손목을 슬쩍 카메라 밖으로 치우며, [그냥 예전에 데어서요]라고 짧게 답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미묘하게 헛돌았다. 왜곡된 음성 뒤로 내 진짜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는 걸, 시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믿고 싶었다. 방송을 이어가는 내내 심장이 이상한 속도로 뛰었다. 흉터를 가리는 손목 밴드가 유독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그 질문을 애써 흘려보내려 했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며 몇 번이나 뒤척였는지 모른다. 별일 아닐 거라고, 그냥 우연한 궁금증일 거라고 되뇌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 잘못 끼워진 톱니바퀴처럼 불안한 소리가 났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신화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에는 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려다 그녀의 걸음이 내 쪽으로 곧게 다가오는 걸 느끼고 멈춰섰다. 평소라면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그녀의 자세가, 오늘은 이상하게 팽팽했다.
"잠깐 얘기 좀 해."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평소의 나른함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끼며 그녀를 따라 복도 끝 계단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방송 얘기일까, 아니면 그저 별거 아닌 일일까. 어느 쪽이든 좋은 예감은 들지 않았다.
계단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발목을 스쳤다. 신화연은 벽에 등을 살짝 기댄 채 나를 마주 보고 섰고, 나는 그 앞에서 무방비하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아빠, 신도현이라고. 작년 가을에 청계 저수지에서 사고 당했어."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빠르게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저수지의 차가운 물,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그날의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그때 아빠를 구해준 사람, 손목에 화상 흉터가 있다고 했어." 그녀는 내 손목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숨겼지만, 그 움직임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다.
침묵이 계단 사이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창밖으로 늦가을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너였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눈빛에는 놀라움과 죄책감, 그리고 뭔가 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매가 우묵하게 그늘져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인해야 할지, 인정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 계단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왜 말 안 했어. 학교에서 몇 번이나 은인 찾는다고 방송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나는 그 물음에, 그날 체육대회에서 실격당했던 일과 그 뒤로 완전히 무너진 내 반 안의 자리를 설명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설명한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미안해." 대신 나는 그 말을 뱉었다.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가장 먼저 나온 말이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네가 왜 미안해."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짧게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내가 미안한 거지. 나 너 계속 음케라고 불렀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계단 손잡이를 꾹 눌렀다. 손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졌다. 나는 그 손을 보며, 이상하게도 그녀가 나보다 더 아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건, 뭐. 상관없어."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실제로는 상관없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렇게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상관없긴 뭐가 상관없어." 그녀는 짧게 반박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그날 이후로 신화연은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갚아야 한다는 듯, 쉬는 시간마다 내 자리로 찾아왔고, 급식실에서는 내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우연인가 싶었지만, 그런 우연이 며칠씩 반복되자 더는 우연이라 부를 수 없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몇몇은 신화연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태도를 바꿨다. 어제까지 나를 스쳐 지나가던 시선들이 이제는 흘깃거리며 무언가를 재는 듯한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서은이라는 그녀의 친구는 처음엔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훑어보다가, 신화연이 유난히 나에게 신경을 쓰는 걸 보고는 뭔가 눈치를 챈 듯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나를 향한 건지, 신화연을 향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편치 않은 시선이었다.
나는 그 변화가 반갑기보다는 두려웠다.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이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식는지,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몸으로 배웠다. 처음엔 다정했던 시선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무심함으로, 무심함은 다시 냉대로 바뀌곤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의 이 관심도, 결국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런데 그날 방과 후, 신화연이 내 팔을 붙잡으며 던진 한마디가, 나를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잡는 순간, 손끝의 온도가 예상보다 뜨거워서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오늘 밤 방송, 나 보러 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