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 카메라는 금방 사라졌다. 렌즈가 있던 나무 틈 사이로 잠깐 빛이 반사됐던 것 같았는데, 눈을 깜빡이는 사이 그 반사광조차 사라졌다. 아마 우리가 눈치챈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서연이 낮게 말했다.
“방금 그거 봤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누군가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은, 겪어봐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직 촬영하고 있는 거야, 저 사람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답을 하는 순간 그 사실이 진짜가 될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잠시 그 나무를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이전과 조금 달랐다. 문을 열었을 때 쏟아지던 시선의 무게가 어제와는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여전히 시선은 쏟아졌지만,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놀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누군가 낄낄거리며 손가락질하던 소리도, 뒤에서 들려오던 휘파람 같은 것도 없었다. 대신 다들 슬쩍 나를 보고는 다시 자기 할 일로 눈을 돌렸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제보다 나아진 건지, 아니면 다들 이 상황에 흥미를 잃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교과서를 꺼내는 동안에도 계속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뭔가 달라졌다는 감각. 그 감각의 정체를 알게 된 건 쉬는 시간이 되어서였다.
쉬는 시간, 짝인 이현우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원래 나와 크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냥 무난하게 인사만 주고받는 정도였다. 학기 초에 몇 번 필기를 빌려준 게 전부였고, 그 외에는 서로의 이름을 아는 수준의 거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야, 너 괜찮아. 어제 안 나온다고 해서 걱정했잖아.”
나는 조금 놀랐다. 걱정, 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요 며칠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말들만 귀에 박혀 있었다. 마이크 든 남자애, 라는 말. 재밌는 구경거리, 라는 말. 그런 말들 사이에서 걱정이라는 단어는 마치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찮다고 짧게 대답했다. 이현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나도 재밌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다시 보니까, 이거 너무한 거 같더라. 방송 나가고 애들 반응 보니까 더.”
나는 그 말을 듣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손끝이 저릿하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현우가 계속했다.
“태현이가 처음에 이거 얘기했을 때, 나도 웃었거든. 근데 네가 진짜로 그 자리에 서서 마이크 들고 있는 거 보니까, 그거 웃을 일이 아니었어. 나 그때 좀 미안했어.”
태현. 그 이름이 나오자 목뒤가 서늘해졌다. 처음 그 자리에 나를 세운 사람. 웃음거리로 만든 사람. 그 이름을 이현우의 입에서 들으니, 그날의 조명과 마이크의 무게가 다시 손끝에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목이 메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 누군가 내 편에서 사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상황을 처음부터 재밌어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하는 사과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진심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이현우는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부터 뭐, 도움 필요하면 말해. 애들이 뭐라 해도 내가 좀 막아줄 수도 있고.”
그 말이 무슨 대단한 약속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그냥 흔한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조금 풀리는 걸 느꼈다. 며칠 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던 무언가가, 아주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오후, 이현우는 정말로 몇 번 나섰다. 누군가 또 커플 얘기를 꺼내려 하자, 야 그만해, 하고 짧게 끊었다. 그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한, 조금 심드렁한 어조였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놀리던 애들이 슬쩍 물러났다. 마치 처음부터 별 관심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사람 하나가 편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놀림이라는 것도 결국 여러 명이 눈치를 보며 만들어내는 분위기라는 걸,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한 사람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나머지는 생각보다 쉽게 방향을 바꿨다.
점심시간, 유서연 쪽 무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연이 나중에 말해주길, 친한 친구 하나가 다가와 이제 그만 놀려라, 하고 말해줬다고 했다. 그 친구는 원래 서연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최근 며칠 서연이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계속 봐온 모양이었다. 서연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 웃었는데, 그 웃음에는 안도와 씁쓸함이 반쯤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우리 둘만 이 상황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며칠 동안 등 뒤로 쏟아지던 시선을 혼자 다 받아내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그 무게가 아주 조금씩 나눠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방과 후, 나는 서연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 굳이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맞춰졌다. 교문 앞 은행나무 잎이 벌써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몇 잎씩 떨어져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걸으면서 서연이 물었다.
“오늘 좀 괜찮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이현우가 도와줬어.”
서연이 웃었다.
“나도 다행이야. 우리 편이 조금씩 생기는 거 같아서.”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이 상황이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불편하고 억울한 일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혼자 견디는 건 아니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서연도 비슷한 기분인 듯 보였다. 어깨에 힘이 좀 빠져 있었고, 걸음 사이 간격도 어제보다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잠깐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길가 가로수 그늘이 번갈아 얼굴 위로 지나갔고, 그 사이사이 서연의 옆얼굴이 언뜻언뜻 보였다. 나는 그 얼굴에서 어제보다 옅어진 그늘을 봤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교문을 나서기 직전, 나는 다시 그 카메라를 발견했다. 이번엔 나무 뒤가 아니라, 길 건너편 카페 창가에서였다. 유리창에 반사되는 오후 햇살 사이로, 뭔가 검고 길쭘한 물체가 우리 쪽을 향해 고정돼 있는 게 보였다. 렌즈가 정확히 우리 쪽을 향해 있었다. 나는 서연의 팔을 살짝 잡았다.
“저기 봐.”
서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 옅어졌던 그늘이 다시, 그보다 더 짙게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우리 대화, 저것도 다 찍힌 거야.”
나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나눴던 말들, 이현우가 도와줬다는 이야기, 서연의 웃음, 우리 편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는 말. 그 모든 게 어딘가의 화면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