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공기를 느꼈다. 몇몇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시선이 스치듯 나를 향했다가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냥 평소와 다른 아침이라고만 생각했다.
자리에 앉자 옆자리 짝이 먼저 말을 걸었다. 도윤아, 너 그거 봤어? 나는 뭘 말하는 건지 몰라 되물었다. 뭘. 짝은 휴대폰을 내밀며 화면을 보여줬다.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게시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화제의 방송 커플, 그 후 감동 스토리.
나는 그 제목을 보는 순간 목 뒤가 서늘해졌다. 짝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에는 편의점 벤치가 나왔다. 각도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은 분명하게 보였다. 나와 서연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짝은 내 반응을 보고 신이 나서 말했다. 완전 감동이던데. 반 애들이 다 이거 얘기해. 진짜 진심이었구나 싶고.
나는 짝의 손에서 휴대폰을 거의 빼앗듯이 가져왔다.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봤다. 목소리는 선명했다. 어제 아침, 편의점 앞에서 서연과 나눈 그 대화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날 나는 무슨 말을 했더라. 그러고 보니 그날은 방송 촬영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처음으로 카메라 없이 서연과 마주 앉았던 날이었다. 그래서 더 솔직했다. 사실은 이 방송이 부담스럽다고, 서로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 솔직한 말들이, 자막 하나로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 큼지막한 자막이 화면 아래 박혀 있었다.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이건 우리가 허락한 적 없는 촬영이었다. 우리끼리, 정말 우리끼리만 나눴다고 믿었던 대화였다.
교실 안은 이미 그 영상 얘기로 시끄러웠다. 누군가 조회수를 확인하며 소리쳤다. 야, 이거 벌써 오만 넘었어. 다른 애가 맞장구쳤다. 대댓글도 장난 아니야, 완전 팬클럽 생겼어.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감동받는 그 장면이, 사실은 도둑맞은 순간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서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영상 봤어. 답장은 채 십 초도 지나지 않아 왔다. 나도 방금 봤어. 미쳤어, 이거.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어떻게 찍힌 거지. 우리 그날 카메라 없다고 했었잖아. 서연의 답장이 이어졌다. 몰카였던 거지. 처음부터. 짧은 문장 하나에 서연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서연과 함께 방송반 부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서연의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서연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부실 앞에 도착하자 박태현이 스태프 몇 명과 함께 서서 웃고 있었다. 나를 보자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야, 봤어? 반응 완전 좋아. 조회수 벌써 몇만이야.
나는 그 태평한 목소리에 화가 치밀었다. 그거 우리 허락 없이 찍은 거잖아.
박태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좋은 그림인데. 다들 좋아하잖아. 오히려 너네한테 좋은 거 아냐. 이미지 좋아졌잖아.
서연이 낮게 말했다. 그건 우리가 정할 문제야. 좋은 이미지든 나쁜 이미지든, 우리 동의 없이 찍고 올리는 건 잘못된 거야.
박태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음으로 덮었다. 야, 너무 예민하게 그러지 마. 방송이라는 게 다 이런 거지. 안 그러면 재미없어.
스태프 중 한 명이 옆에서 작게 웃으며 거들었다. 맞아, 요즘 이런 콘텐츠가 제일 반응 좋아. 편집만 잘하면 다 좋은 그림이지.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좋은 그림이라는 말이, 우리를 그냥 소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그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방송반 부실 문이 열리고 디렉터가 나왔다. 손에는 태블릿을 든 채였다. 우리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어, 마침 잘 왔네. 사실 다음 주에 짧은 후속 촬영 하나 더 하려고 했거든. 이번엔 두 사람 인터뷰 형식으로.
나는 그 말을 듣고 뭔가 목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후속 촬영이라는 말도, 우리 동의를 구하는 척하는 저 말투도, 전부 처음 그날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소재였다.
디렉터는 태블릿 화면을 우리 쪽으로 살짝 돌렸다. 봐봐, 반응이 진짜 뜨겁잖아. 이 흐름 놓치면 아깝지. 인터뷰 형식으로 짧게, 십 분만 하면 돼.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동의 없이 찍힌 영상, 지금이라도 내려주세요.
디렉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아, 그건 저희가 편집한 부분이라. 이미 반응이 좋아서, 지금 내리기는 좀 그런데. 대신 다음 촬영은 제대로 동의받고 진행할게요. 어때, 그때는 미리 얘기하고.
그 말은 사과가 아니라 협상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그냥 넘기고, 다음 일에만 형식적인 동의를 구하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태도에서 처음으로 이 방송사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확실히 느꼈다. 우리는 반응이 좋으면 계속 쓸 수 있는 소재였고, 반응이 사라지면 그때야 버려질 소재였다.
서연이 다시 말했다. 지금 그 영상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곤란한지 모르시죠. 저희가 언제 사귄다고 한 적도 없는데, 저 자막 하나로 사람들이 다 믿어버렸어요.
디렉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숨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반응이 좋으니까 그렇게 간 거지. 나쁜 뜻은 없었어. 진짜야.
나쁜 뜻이 없었다는 말이, 오히려 더 차갑게 들렸다. 나쁜 뜻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원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 갇혀 있었다.
서연이 내 팔을 살짝 잡았다. 나는 그 손의 온도를 느끼며, 우리가 이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방법은 아직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방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카메라는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박태현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는 듯 끼어들었다. 야, 어차피 다음 주까지 시간 있잖아. 천천히 생각해봐. 나쁜 얘기 아니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서연도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걸으며 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우리가 화내는 것도 다 하나의 반응으로 보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휴대폰 화면을 켰다. 조회수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처음 확인했을 때보다 훨씬 늘어 있었다. 댓글창을 열자 응원의 말들이 넘쳐났다. 진짜 부럽다, 이런 사랑 하고 싶다, 두 분 응원합니다. 하트 이모티콘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걸 읽으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우리의 진심이라고 믿고 있는 그 장면이, 사실은 우리가 허락하지 않은 도둑 촬영이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감동받는 문장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표처럼 느껴졌다.
댓글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 편 언제 나오나요, 기대돼요. 다음 편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우리는 드라마도 아니고 예능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를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 하늘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나는 그 어둠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방송사는 절대 우리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거였다. 다음 주로 예정된 인터뷰 촬영, 그리고 그다음, 또 그다음. 이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나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서연의 문자였다. 나 방금 이상한 연락 받았어. 다음 주 촬영 말고, 다른 얘기가 있대.
나는 그 문자를 보며 심장이 다시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