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강태준 시점]
새벽 두 시.
방 안에는 모니터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 형광등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고, 책상 스탠드조차 켜지 않은 채 나는 어둠 속에서 화면 하나만 노려보고 있었다. 눈이 시렸다. 안구 뒤쪽이 뻐근하게 당겨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정도는 익숙했다. 이 년째 반복되는 새벽이었다.
편집 프로그램 타임라인 위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컷을 나누고, 자막을 넣고, 색을 보정했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화면 오른쪽 아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새벽 두 시 십일 분, 두 시 십칠 분, 두 시 이십삼 분. 시간은 흐르는데 나는 그 흐름을 잊은 채 손끝의 리듬에만 몰두했다.
화면 속에서는 핑크빛도 아니고 금발도 아닌, 반짝이는 은발 아바타가 웃고 있었다. '테리'. 구독자 십이만. 방송 시작 이 년, 내가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무보수였다. 누구도 시킨 적 없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유나가 처음으로 마이크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날, 나는 그 옆에서 카메라 각도를 잡아주고 있었다. 그날의 조회수는 삼백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나는 웃었다. 진심으로, 아이처럼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나는 뭔가에 걸려버린 기분이었다. 발목에 실이 묶인 것처럼, 나는 그 이후로 계속 그 옆자리에 있었다.
서유나와 나는 초등학교 삼 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다. 전학 온 날, 자리를 못 찾고 서 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던 아이. 그날의 유나는 지금과 똑같이 눈이 컸고, 목소리가 또랑또랑했다.
"너 이름이 뭐야? 나는 유나야. 서유나."
그 짧은 자기소개가 십 년을 이어질 줄 그때는 몰랐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같은 학원을 다녔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유나가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열여덜 되던 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편집자였고, 스케줄 관리자였고, 채팅창의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랜 팬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내가 자료를 정리하고 밤을 새워 편집을 한 건 순수한 우정 때문이 아니었다. 화면 속에서 웃는 저 캐릭터가, 실은 유나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유나의 목소리가, 유나의 웃음이, 저 은발 아바타를 통해 흘러나오는 걸 지켜보는 게 좋았다. 그게 전부였다.
가끔은 그 사실이 부끄러워서 스스로를 비웃곤 했다. 십 년을 알고 지낸 친구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고, 그 마음을 숨기려고 매니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도 한심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나 옆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까.
타임라인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오늘 자 영상은 오전 여섬 시에 업로드하면 될 것 같았다. 자막 오타 하나를 발견하고 고쳤다. '괜찬아요'를 '괜찮아요'로. 이런 작은 실수를 놓치면 채팅창은 곧바로 난리가 난다. 유나의 팬들은 그 정도로 세심했다.
나는 노트북을 닫으려던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서유나]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이유 없이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늦은 시간이었다. 유나는 보통 이 시간엔 자고 있거나, 아니면 다음 방송 콘텐츠를 구상하며 메모장을 채우고 있을 시간이었다.
문자였다.
"태준아, 내일 저녁에 시간 돼?"
짧았다. 평소라면 이모티콘 몇 개쯓, 별거 아닌 말들로 시작했을 텐데. "야 자냐?" 같은 인사도 없이, "오늘 방송 어땠어?" 같은 잡담도 없이. 그냥 그 한 줄뿐이었다.
나는 화면을 몇 초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잠깐 멈췄다.
답장을 눌렀다.
"당연히 되지. 무슨 일 있어?"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화면을 계속 쳐다봤다. 채팅창의 '읽음' 표시가 뜨는 걸 지켜보는 그 몇 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답장은 삼 분 뒤에 왔다.
"만나서 얘기하자. 학교 앞 카페, 일곱 시."
그게 다였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평소의 유나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끝내지 않았다. "왜 궁금해?ㅋㅋ" 라든가, "만나서 얘기해줄게~" 같은 여운이라도 남기는 게 유나였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것도 없었다. 문장 끝에 마침표조차 붙어 있었다. 유나는 원래 마침표를 잘 쓰지 않았다.
위장이 이상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감각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냥 새로운 콜라보 얘기일 수도 있고, 다음 방송 콘셉트 상담일 수도 있었다. 요즘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도 같았다. 별일 아닐 거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도 머릿속에는 그 짧은 문장 두 줄만 떠올랐다. 만나서 얘기하자. 일곱 시. 그 사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몇 번이나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학교 복도에서 박현우를 만났다. 현우는 키가 크고 인상이 좋아서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유일한 친구.
"너 얼굴이 왜 그래."
현우가 내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딱 봐도 밤새운 얼굴인데. 눈 밑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다."
"편집 좀 하다가."
"아직도 유나 방송 만지고 있냐?"
현우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걱정이 섞여 있었다. 매번 하는 소리였다. 대가도 없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너 인생도 좀 챙기라고.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저녁에 유나 만나기로 했어."
"둘이서?"
현우의 표정이 순간 이상하게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할 얘기 있대."
"무슨 얘긴데?"
"몰라. 문자가 되게 짧더라고."
현우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마치 하려던 말을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그냥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저녁에 연락해."
그 짧은 말 속에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현우는 원래 저런 애가 아니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끝까지 캐묻고, 아는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다 뱉어버리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걸 캐물을 여유가 없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1교시, 2교시, 3교시. 선생님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칠판에 적힌 글씨는 눈에 담기지 않았다. 나는 수업 내내 유나가 보낸 문자만 생각했다. 그 짧고 건조한 문장을 몇 번이나 되새기면서, 나쁜 예감을 지우려 애썼다.
점심시간에는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급식판에 놓인 반찬을 뒤적거리기만 했다. 짝꿍이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뭐라고 답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후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콜라보 얘기라면 이렇게 심장이 뛸 이유가 없는데. 콘셉트 상담이라면 굳이 얼굴을 보고 말할 이유도 없는데.
종례가 끝나고 나는 가방을 챙기며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다. 여섬 시. 여섬 시 삼십 분. 시간이 이상하게 더디게 흘렀다.
일곱 시가 되기 열 분 전, 나는 학교 앞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카페 안은 은은한 원두 냄새와 낮은 재즈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유나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금발로 물들인 긴 머리가 카페 조명 아래에서 유독 밝게 빛났다.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늘 보던 웃음인데, 오늘은 그 웃음 뒤에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물감이었다.
나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테이블 위에는 유나가 이미 시켜놓은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내가 늘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유나가 좋아하는 카페라떼.
나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다.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 했는데도 그랬다.
유나는 대답 대신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가락이 유리잔 표면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아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태준아. 우리, 이제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정리. 정리라는 단어가 이렇게 낯설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리라니, 뭘."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워졌다.
유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평소라면 미안한 얘기를 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딴 곳을 보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결심한 사람처럼.
"매니저 일. 우리 관계. 전부."
카페 안의 소음이 갑자기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았다. 재즈 음악이,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가, 창밖을 지나가는 차 소리가 전부 물속에 잠긴 것처럼 흐릿하게 뭉개졌다. 오직 유나의 마지막 한마디만이 귓속에서 선명하게 맴돌았다.
전부.
그 단어 하나가 마치 얼음물처럼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