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나는,
다음날, 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자리에 앉기도 전에 느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한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몇몇 아이들이 나를 힐끔거리다가 시선을 피했고, 뒷자리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유난히 신경을 긁었다.
"도윤재, 최서아랑 뭔가 있는 거 아냐?" 누군가 낮게 웃으며 던진 말이 들렸다.
"에이, 걔네 원래 사이 안 좋다며." 다른 목소리가 반박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웃음소리에는 확실히 어떤 관심과 조롱이 섞여 있었다.
나는 못 들은 척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는 손끝이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소문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실체 없이 몸을 부풀리는 건가 싶었다. 창밖으로 늦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책상 위에 얇게 깔렸다. 그 빛이 따뜻하다는 걸 느낄 여유도 없이, 나는 애써 책을 펼치고 시선을 고정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서아 쪽 자리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몇몇 여자아이들이 서아 주변을 둘러싸고 뭔가를 물어보는 듯했고, 서아는 평소보다 더 딱딱한 표정으로 그 질문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냥 위원회 업무야." 그녀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로 단호했다.
"근데 왜 둘이 그렇게 붙어 다녀?" 누군가 재차 물었지만, 서아는 대답 대신 책상 위의 노트를 정리하며 그 자리를 정리해버렸다. 그 무심한 손길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와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부정해줘서 다행인데, 왜 저렇게까지 단호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뒤엉켰다.
쉬는 시간, 지훈이 내 옆에 앉으며 낮게 말을 걸었다.
"소문 좀 도는 거 알지." 그의 목소리엔 걱정과 흥미가 반쯤 섞여 있었다.
"알아." 나는 짧게 답했다.
"괜찮겠어?" 그가 물었다.
"뭐가." 나는 되물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지훈은 턱을 괴고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은 척 웃음을 지었다.
"뭐, 최서아랑 엮이는 거 나쁠 건 없지. 걔 인기 많잖아." 그가 장난스레 덧붙였지만, 나는 그 말에 웃어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딱딱하게 잘라 말했다.
"알지, 알아." 지훈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물러섰다. 그 능글맞은 태도에도 어딘가 진지함이 섞여 있다는 걸, 나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알 수 있었다.
"현수, 요즘 서아 주변에 자주 있는 거 봤어?" 지훈이 조심스레 화제를 바꿨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도서실에서 목격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현수가 서아 옆으로 다가가 뭔가 말을 건네던 그 모습, 그리고 서아가 순간적으로 굳었던 표정.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되짚어보니, 현수의 그 눈빛에는 뭔가 결심한 듯한 단단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 뭔가 미묘하게 달라진 공기를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을 거다.
"왜, 뭐 본 거 있어?" 지훈이 눈치를 챈 듯 물었다.
"아니, 그냥." 나는 얼버무렸다.
지훈은 더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지만, 그의 시선이 잠깐 나를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뭔가를 안다는 듯한, 혹은 나 자신조차 모르는 걸 눈치챈 듯한 시선이었다.
점심시간, 나는 도서실에 잠깐 들렀다가 예린과 지훈이 위원회 서류를 정리하는 걸 도와야 했다.
도서실 안은 평소처럼 조용했지만, 그 정적 속에서도 뭔가 어색한 긴장이 감돌았다. 서류를 나르며 나는 자꾸만 시계를 확인했다. 서아가 언제쯤 올지, 아니면 오지 않을지, 그런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때 예린이 서류철을 정리하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현수가 위원회 자리 바꿔달라고 신청했던데, 알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 한 문장이 크게 울렸다.
"무슨 자리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남자 도서위원." 예린이 답했다.
"도윤재 대신 자기가 하겠다고." 그녀가 덧붙였다.
손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졌다.
나는 서류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애써 표정을 다잡았다.
"왜요." 나는 물었지만, 이미 답을 짐작하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딱히 이유는 안 밝혔는데." 예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담당 선생님한테 정식으로 신청서 냈다는 거 같더라고요. 좀 갑작스럽죠?" 그녀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지만, 나는 그 웃음에 화답할 기운이 없었다.
지훈이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다가 슬쩍 나를 쳐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 안에는 [내가 뭐랬어]라는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그 시선을 피하며 서류 정리에 집중했다. 손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날 오후 도서위원회 시간, 도서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뜻밖의 인물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박현수였다.
"어, 왔네." 그가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위원장한테 허락받았어. 오늘부터 여기 앉을 거야." 그가 그렇게 말하며 서아의 맞은편, 원래 내 자리였던 곳을 가리켰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서실 특유의 종이 냄새와 오래된 나무 책상의 서늘한 감촉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이 공간이,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일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는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무슨 소리야." 나는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내가 대신 맡겠다고 신청했어." 현수가 웃으며 답했다.
"윤재 넌 다른 위원회로 옮기면 되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투 안에는 이미 결정된 무언가에 대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
"그런 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거야?"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위원장이 허락했다니까." 현수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서류도 다 냈고."
그의 말투에는 어딘가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평소의 현수답지 않은, 서두르는 기색이 느껴졌다.
"왜 갑자기." 나는 물었다.
현수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서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1년 넘게 말 못 했던 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의 목소리가 순간 낮아졌다.
서아의 손끝이 파일 위에서 멈춰버렸다.
도서실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는 걸,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창밖으로 지는 오후 햇살이 서아의 옆얼굴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는데, 그 빛조차 지금은 뭔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서아야." 현수가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 너 좋아해. 오래전부터." 그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도서실 안을 채웠다.
정적이 흘렀다.
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서 그 두 사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버석거렸다—왜 그런지, 나는 정확히 알고 싶지 않았다.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는 것 같았고, 도서실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질적으로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철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드는 걸 느끼면서도, 그 손을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여기 내가 앉을게." 현수가 다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원래 내 자리였던 의자를 손으로 짚었다.
그 손짓이 마치 무언가를 확정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자리를 옮기라는 말일 뿐인데,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건지,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 무표정 속에 어떤 대답이 숨어 있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이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