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재혼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부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세수를 하면서도, 교복 셔츠 단추를 채우면서도 손이 자꾸 헛돌았다. 마지막 단추를 두 번이나 다시 끼워야 했다. 밥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우유 한 잔만 겨우 마시고 집을 나섰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서연이가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늘 봐왔던 풍경인데도 오늘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빛이 그녀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고, 책상 위에는 어제와 똑같은 필통과 물통이 놓여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내 눈에만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며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그것만으로도 반 아이들 몇몇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지만,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나는 걸 느꼈다.
쉬는 시간, 나는 창가에 서서 지난밤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었다. 아버지와 박지현 씨는 삼 개월 전 회사 거래처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박지현 씨가 운영하는 작은 인테리어 회사와 아버지 회사가 업무로 얽히면서 몇 번 자리를 같이했고, 그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엔 그냥 일 얘기만 하는 사이였는데, 하다가 말끝을 흐리며 손으로 뒷목을 긁었다. 나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뭔가를 조심스럽게 말한 적이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몇 달 전부터 퇴근이 늦어지고 표정이 밝아졌던 게 떠올랐다. 나는 그때 회사 일이 바빠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얼굴이 달라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아버지의 변화가 딱 그랬다. 웃음이 많아졌고, 넥타이 색깔이 화려해졌고, 향수 냄새가 은근히 진해졌다. 언젠가 아버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구두를 닦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냥 승진이라도 한 줄 알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다 그 이유였구나 싶었다.
박지현 씨 쪽도 사정이 비슷했다. 남편과 몇 년 전 사별하고 딸 하나를 홀로 키워온 여자였다. 서연이가 그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서연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학교에서 아무도 몰랐다. 그녀는 늘 밝고 명랑했고, 결핍을 짊어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을 때, 나는 박지현 씨의 웃는 얼굴에서 서연이와 닮은 눈매를 발견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이 이제 우리 엄마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실감 나지 않아 자꾸 헛돌았다.
점심시간, 나는 급식실에서 우연히 서연이와 마주쳤다. 같이 앉을까. 그녀가 먼저 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친구들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서연이의 물음은 그저 평범한 제안처럼 지나갔다. 우리는 조용히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식판 위에 놓인 반찬을 뒤적이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녀의 손을 훔쳐보았다. 젓가락을 쥐는 방식, 국을 뜨는 속도, 아무것도 아닌 동작들이 갑자기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서연이가 문득 물었다. 우리 언제부터 알았지, 너랑 나.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일 년 전, 고등학교 입학식 날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알고 있었다기보다 짝사랑하고 있었다. 강당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하던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날 강당 안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그런데도 그녀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귀에 박혔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나는 은근히 그녀의 동선을 눈으로 좇았다. 등교 시간, 매점 앞, 도서관 창가.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나는 조금 늦게 시선을 돌리며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물론 말을 걸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같은 반이 된 건 이번 학년 처음이었고, 그마저도 짝이 아니라서 대화할 기회는 드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사실은 요 며칠 사이 벌어진 이례적인 일이었다. 재혼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이런 우연한 자리조차 나에게는 과분한 행운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내 의붓누이가 된다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짝사랑의 대상이 가족이 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렘과 당혹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그 마음을 담을 자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서연이는 그런 내 속을 전혀 모르는 얼굴로 밥을 먹으며 재잘거렸다. 급식이 오늘따라 맛있다는 둥, 다음 시간이 체육이라 귀찮다는 둥,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평온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조금 씁쓸해졌다.
집은 좀 좁던데, 방이 몇 개야.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다 말고 잠시 멈췄다. 사실 나는 그날 아버지가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다. 이불 속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말한 건 다름 아닌 집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방이 두 개인데, 하나는 부부 방이고, 다른 하나는 원래 내 방이었다. 그런데 그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아버지는 서연이가 들어오면 방을 새로 구할 거라고 했다. 지금 사는 집은 임시로 지내는 거고, 다음 달 안에 방 세 개짜리 집으로 이사할 계획이라고. 그런데 계약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그 사이 잠깐이라도 서연이와 방을 나눠 써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아버지의 말이었다. 잠깐이라는 단어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면서도 내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라, 하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나는 서연이의 질문에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을 흐렸다. 방 두 개야, 라고만 말했다.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놀라거나 어이없어할까, 아니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길까. 나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연이는 내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럼 다행이네, 하고 웃으며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방과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의 문자를 받았다. 이사 날짜가 앞당겨졌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주 토요일, 박지현 씨와 서연이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새집을 구하는 건 최소 한 달은 걸릴 거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도 덧붙여 있었다.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한 달. 침대 하나짜리 방에서, 한 달.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로 오래 서 있었던 것 같다.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나는 그 문자를 또 한 번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콱콱 박히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는데, 그게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한방을 쓴다는 상상, 그것도 침대가 하나뿐인 방에서. 나는 그 생각을 떨쳐내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한 번 떠오른 그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나는 그 문자만 생각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방 쪽을 흘깃 쳐다봤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옷장 하나가 놓인 좁은 공간. 다음 주 토요일부터 그 공간에 서연이가 들어와 산다. 나는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저 다가오는 토요일이 두려운 동시에 조금은 설레었다는 사실만이, 낯설고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