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마차가 뒤집혔다.
세상이 통째로 돌아갔다. 나는 짚더미 사이로 굴러떨어지면서 뭔가에 머리를 박았다. 별이 튀었다. 진짜로 별이 보이는구나, 그런 생각을 할 정신이 아니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병사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마물이다! 전열을 정비해라!"
"놓치면 안 된다! 뒤를 막아!"
말들이 히힝거리며 앞다리를 치켜들었다. 짐칸이 반쯤 부서진 채로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그 위로 짐짝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나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마차 뒤편으로 굴러갔다. 손바닥에 나뭇조각이 박혔다. 아팠지만 소리를 낼 정신이 없었다.
같이 있던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옆에서 훌쩍이던 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숲속으로 도망쳤다.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딱, 딱.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마치 내가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발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멈추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뒤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이어졌다. 낮고 걸걸한, 사람의 것이 아닌 소리였다. 나는 방향을 가늠할 정신이 없었다. 그냥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옆구리가 찢어질 듯 아팠는데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발이 걸려 넘어졌고, 무릎이 돌부리에 찍혔다.
퍽.
아팠다. 진짜로 아팠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건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삼 년 동안 이 집에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거였다. 아파도 조용히, 놀라도 조용히, 무서워도 조용히. 소리는 곧 관심이고, 관심은 곧 매질로 이어졌으니까.
한참을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완전히 낯선 숲이었다. 나무들이 지나치게 굵고 높았다.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어디가 위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새까맸다. 병사들의 목소리도, 마차 소리도, 그 걸걸한 짐승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와 내 숨소리만 남았다.
혼자다.
괜찮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 집에서도 나는 늘 혼자였으니까. 밥때가 되어도 부르는 사람이 없고, 아파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고, 방구석에서 며칠을 앓아도 아무도 문을 열어보지 않는 곳. 거기에 비하면 이 숲은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어두울 뿐이었다.
무릎에 손을 얹었다. 상처를 치유하려던 순간, 나는 멈췄다.
여기서 힘을 쓰면 누군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도망친 지 몇 시간도 안 된 상황에서, 능력을 썼다가 병사들 눈에 띄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갔다. 마물로 취급될 수도 있고, 팔려나갈 수도 있고. 이 세계에서 내가 뭘로 분류될지, 아직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곧 웃음이 났다.
이 상황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 당장 다리를 못 쓰면 그게 더 큰 문제였다. 나는 조용히 손을 얹었다. 옅은 푸른빛이 손끝에서 돌았다. 따뜻한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그냥 뭔가가 스며드는 느낌. 상처가 아물었다. 무릎을 몇 번 굽혀보니 아까의 통증은 흔적도 없었다.
다행이다.
그리고 그때, 무언가가 다리에 닿았다.
물컹.
나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뺐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마물인가. 병사가 말한 그 마물이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온몸이 얼어붙었다.
발밑에 작은 형체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투명한 젤리 같은 몸체. 사람 두 손을 합친 정도 크기의 슬라임이었다.
숨을 죽이고 몇 초를 그대로 서 있었다. 슬라임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할 기색도, 도망칠 기색도 없었다. 그냥 거기 웅덩이처럼 늘어져 있었다.
다치고 있었다. 몸 한쪽이 찢어진 듯 움푹 들어가 있고, 빛이 그 부분에서만 흐릿했다. 마치 램프 심지가 다 타서 꺼지기 직전 같은 빛이었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세계의 마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잘 몰랐다. 방금까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던 것도 마물이라고 했으니, 이 조그만 것도 뭔가 숨겨진 위험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공격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냥 힘없이 바닥에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멈춰 섰다.
이상하게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저렇게 빛이 흐릿해지다가 완전히 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슬라임이 몸을 살짝 움츠렸다. 도망칠 힘도 없으면서 그렇게라도 반응하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괜찮아."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먼저 건 말이었다.
이 집에 온 뒤로 나는 말을 하는 쪽이 아니었다. 듣는 쪽이었다. 명령을 듣고, 욕을 듣고, 가끔은 침묵을 들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 누군가에게 말을 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젤리 덩어리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손끝에 상처 부위를 대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힘이 발동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무릎을 치료할 때는 됐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 걸까.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시도했다. 눈을 감고, 손끝에 집중하고, 아까와 똑같이 마음속으로 뭔가를 그려봤다. 하지만 손끝에서 아무 빛도 돌지 않았다.
혹시 사람한테만 되는 걸까. 아니면 마물이라서 안 되는 걸까. 이 힘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누가 설명해준 적도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 손끝에서 빛이 돌았고, 그걸로 상처가 나았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결국 나는 힘을 쓰는 걸 포기하고, 대신 옷자락을 찢어 그 부위를 감쌌다. 소맷단을 길게 찢어 슬라임의 상처 부위를 몇 번 둘러 묶었다. 응급처치라고 하기엔 초라했다. 젤리 몸에 붕대를 감는다는 게 애초에 말이 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슬라임이 몸을 살짝 흔들었다. 마치 고맙다는 듯이. 몸 전체가 파르르 떨리듯 움직이는 모습이, 어쩐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옆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도망칠 힘도, 방향을 찾을 힘도 없었다. 별빛 하나 제대로 안 보이는 숲 한가운데서, 어느 쪽이 마을이고 어느 쪽이 위험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이 작은 생명체 옆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넌 이름이 뭐야." 나는 물었다. 대답이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슬라임이 몸을 부풀렸다 줄였다. 마치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몽, 몽, 하는 것처럼 들렸다. 목청이랄 게 있을 리 없는 몸인데도, 분명 그런 소리가 났다.
"몽이." 나는 작게 웃었다. "그럼 몽이라고 부를게."
이름을 붙이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싶었다. 사람한테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본 적이 없는데, 반쯤 죽어가는 슬라임한테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쉬웠던 것 같기도 했다. 이 조그만 것은 나를 때리지 않을 테니까.
그날 밤, 나는 몽이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
젤리 같은 몸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하게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상처 부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팔을 둘러 안았는데, 몽이는 그 안에서 몸을 몇 번 뒤척이더니 곧 잠잠해졌다. 자는 건지, 그냥 힘이 다 빠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옆에 있어주고 있었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온기를 나누며 자는 밤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낯선 안도감. 원래 있던 세계에서도 이런 밤은 없었다. 여기서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름도 모르는 숲 한가운데서, 처음 만난 슬라임을 안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새벽 무렵, 나는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사각, 사각.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나뭇가지를 밟으며 걸어오는 소리였다. 사냥이라도 하듯 여유가 있었다.
나는 몽이를 끌어안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손이 떨렸다. 몽이도 그걸 느꼈는지 몸을 바짝 움츠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챙, 챙그랑.
갑옷 소리였다.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걸음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 병사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 마물이라고 외치던 병사들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림자 속에 몸을 파묻었다. 등 뒤로 나무껍질이 거칠게 닿았다. 몽이를 안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발소리가 멈췄다.
바로 몇 걸음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