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용사 키우는 악역 영주

5화

마수가 나를 향해 몸을 틀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어왔다. 땅이 흔들렸다. 발밑의 자갈이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가까이서 보니 그 눈은 검다기보다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빛을 삼키는 구멍 같았다. "영주님, 물러나십시오!" 대장의 외침이 멀게 들렸다. 물러날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소원이 다음 표적이 된다. 저 짐승의 시선은 이미 나를 지나 그녀의 등을 쫓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검을 쥔 손에 땀이 배어 미끄러웠다. 마수의 앞발이 치켜 올라갔다. 떨어진다. 콰앙! 간발의 차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흙과 돌이 튀어 얼굴을 때렸다. "쿨럭!" 숨이 턱 막혔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다음 공격이 더 두려웠다. 한 번, 두 번. 앞발이 다시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내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피할 곳이 좁아지고 있었다. 협곡 벽이 뒤에서 나를 가두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소원의 목소리가 뒤에서 터졌다. 그녀가 마수의 옆구리를 타고 뛰어올랐다. 관절이 있는 뒷다리를 향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짧은 정적. 카앙! 검이 다시 박혔다. 이번엔 더 깊게. 크아아아악! 마수가 몸을 뒤틀며 울부짖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소원의 팔이 검을 비틀어 넣는 각도,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짧은 숨소리까지 다 보였다. 잘했다. 그 한마디를 속으로만 삼켰다. 거체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협곡 벽이 그 무게에 흔들렸다.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 시야를 가렸다. "됐다!" 대장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희망이 섞였다. 남은 병사 둘이 창을 세워 마무리를 준비했다. 창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도 안심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마수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쓰러진 채로 몸을 뒤틀며 남은 앞발을 마구 휘저었다. "피해!" 누군가 외쳤지만 늦었다. 퍼억! 대장이 그대로 튕겨 벽에 부딪혔다. 갑옷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대장!" 소원이 소리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병사 하나가 대장을 향해 달려갔지만, 마수의 꼬리가 그를 옆으로 쳐냈다. 몸이 인형처럼 튕겨나갔다. 남은 건 나와 소원, 병사 하나뿐이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서서 검을 쥐고 있었을 뿐이다. 마수의 몸에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했다. 그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쇠 같은 냄새였다. "뒤로!" 내가 소리쳤다. 소원이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남은 병사도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그 순간, 마수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쿠웅. 협곡 전체가 진동했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 남은 건 정적이었다.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조금 전까지 울리던 비명과 포효가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섯이었던 순찰대에서 셋이 죽었다. 대장은 숨은 붙어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다. 살아 있는 병사 하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대장 옆에 앉아 지혈을 시도하고 있었다. 소원이 무릎을 꿇었다. 검을 놓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네 탓이 아니다."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확신은 없었다. 이 판단, 이 지휘, 결국 내가 내린 것이었다. 협곡을 순찰 구역으로 정한 건 내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들어가자고 결정한 건 나였다. 죽은 병사들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게 더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흙먼지와 피로 얼룩진 지금의 모습만 눈에 남았다. 돌아오는 길,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장을 실은 마차의 바퀴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렸다. 소원은 내내 마차 옆에서 걸었다.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원망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였다. 성으로 돌아와 대장을 의무실로 옮기고, 시신들을 수습했다. 소원이 그중 한 병사의 얼굴에 천을 덮으며 잠시 손을 멈췄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름이... 하준이었어요. 검술 훈련장에서 매번 저한테 지던 애였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몰랐던 이름 하나가 그렇게 남았다. 그날 밤, 집무실에 홀로 앉아 지도를 펼쳤다. 협곡의 위치, 마수가 나타난 시점, 사냥꾼들이 실종된 경로. 촛불이 지도 위에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게임 속 기억을 다시 더듬었다. 흑안의 마수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는 원래 두 달 후, 마왕의 본격 침공과 함께 시작되는 이벤트였다. 너무 이르다. "누군가가 앞당겼다." 혼잣말이 방 안에 낮게 깔렸다. 순찰 경로를 다시 짚어봤다. 그 협곡은 원래 정기 순찰 구역이 아니었다. 최근에 새로 편입된 구역이었고, 그 결정을 내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최근 부임한 경계 관리관이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그 협곡이었을까. 서류철을 뒤졌다. 관리관의 임명 서류를 다시 꺼내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이상한 흔적이 있었다. 인장이 두 번 겹쳐 찍힌 자국. 하나는 청하백가의 정식 인장, 다른 하나는 미세하게 다른 문양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문양을 들여다봤다. 뿔 달린 눈동자. 마왕의 편지에 찍혀 있던 것과 같은 문양이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청하령 내부에, 이미 마왕의 손이 뻗어 있다는 뜻이었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것이 흘러내렸다. 서랍을 열어 편지를 다시 꺼냈다. 두 달의 시한, 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 글자를 하나씩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시한은 애초에 나를 위한 유예가 아니었다. 마왕이 준비를 마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이미 청하령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관리관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부임 인사를 할 때 지었던 온화한 웃음.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있었을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경계선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창밖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신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두 달은, 이미 절반쯤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그 절반조차 온전히 내 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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