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결계 문이 코앞이었다.
그리고 오크들의 발소리는 등 뒤에서 점점 더 커졌다.
다다다다닥!
거리로 치면 한 오십 미터쯤 남았을까.
평소라면 숨 안 차고 뛸 거리였지만, 지금 내 몸뚱이는 이세계로 소환되기 전까지 헬스장 근처도 안 가본 몸이었다.
폐가 풀무질하듯 벌떡거렸다.
"헉, 헉... 못 뛰겠어..."
정우가 다리를 절뚝이며 뒤처졌다.
발목을 접질린 모양이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하필 이 순간에.
[대여 시도]
[정우의 창술 Lv.1이 만료되었습니다]
아니 시발.
진짜 이 타이밍에.
누가 이런 스킬 유통기한을 짜놓은 거야, 배달앱 쿠폰도 이렇게 야박하게는 안 하는데.
손끝에서 낯선 감각이 빠져나가고, 다시 어설픈 내 몸으로 돌아왔다.
방금까지 손에 쥐어져 있던 창 잡는 감각, 발을 내딛는 각도, 그 모든 게 스르륵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렌탈샵에서 갑자기 물건을 회수해 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대여였으니까 회수당한 게 맞았다.
나는 급하게 뒤를 돌아 김민재를 붙잡았다.
"화염술 하나만 빌려줘요!"
"빌,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갖다 써!"
김민재가 반쯤 정신 나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저 자식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도 마찬가지긴 했다.
[스킬 해석 발동]
[대상: 김민재]
[스킬: 화염술 Lv.1]
[등급: F]
해석창이 뜨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오크들의 발소리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쿵쿵 뛰었다.
제발, 제발 빠릿빠릿하게 좀 떠라.
[대여 시도]
[화염술 Lv.1을 15분간 대여합니다]
손끝에서 열기가 확 올라왔다.
마치 라이터 스위치가 손바닥에 박힌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바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라이터가 된 느낌이랄까.
불경스럽게도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신학교 시절 배웠던 [출애굽기]의 불타는 떨기나무였다.
모세는 불에 타지 않는 나무를 보고 놀랐다는데, 나는 지금 내 손바닥이 안 타는 게 더 신기했다.
나는 뒤도 안 보고 손을 뻗어 화염구를 만들어 뒤쪽 마른 풀숲으로 던졌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확 번지며 오크 몇 마리가 걸음을 멈췄다.
짐승은 불을 무서워한다.
지구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그건 똑같았다.
동물이든 몬스터든 결국 본능은 다 통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 세계 설계자가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벤치마킹한 건지도 몰랐다.
"뛰어요! 지금이에요!"
다섯 명 전부가 결계 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정우는 절뚝이면서도 이를 악물고 뛰었고, 박서준은 아예 말도 못 하고 헐떡이며 뛰기만 했다.
평소 그 잘난 척하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지금은 그냥 겁에 질린 고등학생 얼굴 그 자체였다.
문지기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뭐, 뭐여! 뒤에 그게 뭐여!"
목소리에 사투리가 잔뜩 섞여 있었다.
"오크 아녀? 저 새끼들이 왜 여까지 와붕겨!"
"문 열어주세요! 빨리요!"
촤르르르륵!
결계 막이 열리며 우리 다섯이 그대로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무릎이 바닥에 쓸리는 느낌이 났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쾅!
문이 다시 닫혔다.
오크 리더가 결계에 몸을 던졌지만, 마력 막에 튕겨 나갔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뒤로 나동그라지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놈, 방금 결계 막에 얼굴을 정면으로 박은 것 같은데.
꼬시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지금은 그냥 숨 돌릴 때였다.
성경 말씀치고는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 없었다.
나는 땅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숨이 턱까지 차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심장이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손끝은 조금 전 화염술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순전히 긴장 때문인지 미세하게 떨렸다.
박서준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자신만만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하얗게 질린 얼굴만 남아 있었다.
저 녀석이 이렇게 조용한 걸 보는 건 오늘 처음이었다.
평소엔 뭐든 한마디씩 얹던 놈이 지금은 숨소리만 겨우 내고 있었다.
"괜, 괜찮아...?"
한소미가 다가와 내 옆에 무릎을 꿇었다.
숨을 몰아쉬는 사이, 나는 곁눈질로 그녀의 표정을 봤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표정이었다.
"너, 방금 그 화염구..."
한소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민재 스킬 아니었어? 근데 왜 네 손에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뭔가 큰 걸 숨기다가 딱 걸린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변명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나 F등급 아니고 스킬 해석사인데요, 라고 순순히 말할 수도 없었다.
이 세계 사람들이 그 등급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이미 대충 들었으니까.
아마 그 자리에서 무슨 실험체 취급을 당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용거리로 낙인찍힐 게 뻔했다.
"아, 그게... 갑자기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넘겼다.
실은 안 태연했다.
목소리 끝이 살짝 흔들린 걸 그녀가 눈치챘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김민재가 옆에서 헐떡이며 끼어들었다.
"몰라, 몰라.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냥 살았으니 된 거 아니냐."
순진한 놈.
덕분에 위기는 넘겼다.
저 녀석의 뇌 구조는 참 단순해서 좋았다.
누가 이 상황에서 저렇게 편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문지기 아저씨는 이미 마을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분명 이장님한테 보고하러 가는 거였다.
저 걸음 속도를 보니 여기 있는 그 어떤 오크보다도 빠른 것 같았다.
사람은 역시 자기 이해관계가 걸리면 초인적인 속도를 낸다.
박서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거 아버지한테 걸리면..."
자기가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은 이제 슬슬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냥터 밖으로 나가자고 큰소리치던 놈이, 이제는 아버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인생이 참 짧고 굴곡이 많다.
*
그날 밤, 여관으로 돌아온 나는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서는 벌레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낮에 그 난리를 쳤던 게 마치 다른 세상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화로운 밤이었다.
[대여 스킬 규칙 정리]
1. 대여는 대상보다 같거나 낮은 해석 등급에서만 가능
2. 동시에 두 개 이상 대여 불가
3. 대여 시간은 해석 정밀도에 비례
4. 만료 시 즉시 회수, 재대여는 재해석 필요
제법 규칙이 정리됐다.
버그가 아니라 설계된 기능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는 게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야, 대체.
설마 정말로 어떤 신이 앉아서 코딩을 했을 리는 없고.
[요한계시록]도 아니고, 그냥 API 명세서 같았다.
어떤 개발자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나는 지금 그 문서에도 없는 히든 엔드포인트를 발견한 셈이었다.
버그 리포트를 넣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 세계에 고객센터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었다.
있다면 지금 당장 항의 메일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목: F등급인데 왜 이렇게 만렙 기능을 주셨나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도현아, 잠깐 나와볼래?"
여관 아저씨 목소리였다.
평소보다 톤이 낮고 조심스러웠다.
왠지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방문을 열었다.
아저씨 뒤에 한소미가 서 있었다.
표정이 아까보다 더 진지해져 있었다.
낮에 결계 앞에서 봤던 그 애매한 표정이 아니라, 뭔가 확신을 다지고 온 듯한 눈빛이었다.
"저기, 아까 결계 앞에서 일어난 일 말이야."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장님이 벌써 알고 계시더라. 근데 이상한 게, 살아 돌아온 애들이 하는 말이 다 달라."
박서준 패거리 이야기가 벌써 마을 전체에 퍼진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
아니, 그럴 리가 있지.
이 마을 좁아터진 걸 생각하면 소문 도는 속도가 인터넷 밈 퍼지는 속도랑 맞먹을 것 같았다.
한소미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도현아, 나 솔직하게 말해줄래?"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너 정말 F등급이야?"
그 순간, 방 안 공기가 확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별 하나가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게 나를 내려다보는 눈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딘가 아주 높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며 흥미롭다는 듯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그 생각을 애써 지우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한소미의 눈은 거짓말을 하면 바로 알아챌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