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탐색자가 저 하나라니

1화

야간자율학습 3교시, 나는 교실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다. 누가 볼까 봐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습관이다. 담임은 이제 내가 나가도 아무 말도 안 한다. 포기했다는 뜻이다. 출석률 5%짜리 학생을 붙잡고 뭘 어쩌겠나. 처음엔 담임도 나를 붙잡았었다. "서준아,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냥 눈빛으로 안다. 가라, 어차피 갈 거잖아. 복도는 어두웠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아래를 지나가며 괜히 발걸음을 죽였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뻔했다. 한지연 팀장님. "네, 팀장님." "서준아, 지금 어디야?" "학교요. 왜요, 또 뭐 있어요?" "있긴 있는데... 이번엔 좀 커." 좀 크다는 말이 나오면 항상 아주 컸다. 경험상 그랬다. 지난달에도 팀장님이 "조금 큰 건"이라고 했다가 나 혼자 던전 하나를 통째로 정리한 적이 있다. "얼마나 큰데요?" "고블린 웨이브. 근데 이번엔 합동 작전이야." "합동이요?" "응, 충청권 지부들 다 모여."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합동 작전이라니. 그동안 진천 지부 단독으로만 뛰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왔다. 협회가 지부끼리 뭘 합친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좋은 일에는 절대 사람을 안 모으는 게 이 바닥이다. "팀장님, 저 이번 주에 시험 있는데요." "알아. 근데 강제 소집이야." "강제요?" "본부 명령이라 나도 어쩔 수 없어." 목소리에 미안함이 묵직하게 배어 있었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팀장님은 항상 이랬다. 욕은 협회한테 하면서 미안함은 나한테 떠안겼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돼요?" "내일 아침 여섯 시, 지부 앞으로 와." "학교는요?" "결석계 내가 처리할게." 또 결석계. 이번 달만 벌써 열두 번째다. 나중에 졸업장 대신 결석계 모음집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복도 창문에 이마를 대었다.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편했다. 머릿속이 뜨겁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진천의 유일한 탐색자. 랭크는 A상위. 연 소득 8억. 숫자만 보면 인생 다 이룬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학교 친구도 없고, 연애도 없고, 잠도 부족하고. 스무 살도 안 됐는데 벌써 번아웃이 뭔지 안다. 동갑들은 급식 메뉴로 싸운다는데, 나는 몬스터 웨이브로 밤을 샌다. 왜 하필 나였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 동네에 탐색자가 나 하나뿐이니까. 다른 지부들은 인원이 넘치는데, 진천은 항상 이 모양이다. 인력 부족. 협회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자 제일 싫어하는 현실. 가끔은 이 마을 자체가 나를 이용해먹는 거대한 시스템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겠나. 누군가는 해야 하고, 여기엔 나밖에 없으니. 집에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들었다. 계산하면서 알바생 얼굴을 보니 나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동지애 같은 게 살짝 느껴졌다. 야식이라고 하기엔 좀 슬픈 저녁이었다. 방에 들어와서 태블릿을 열었다. 노노냥 방송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이 시간만큼은 학교도, 협회도, 시험도 다 잊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배신 미션 왔습니다!" 화면 속 검은 단발머리 소녀가 손을 흔들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저 눈웃음 하나 보려고 하루를 버틴다는 게 조금 한심하지만, 사실이었다. 노노냥. C랭크지만 방송으로는 국민 배신자. 동료를 순위에서 배신하고 자기 혼자 살아남는 서바이벌 콘텐츠로 떴다. 사람들은 그녀를 욕하면서도 본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다만 나는 욕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오늘의 배신 상대는... 짜잔! 이 오빠입니다!" 화면에 뜬 남자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노노냥은 카메라를 향해 씩 웃었다. "미안해요 오빠, 저는 살아야 하거든요." 악랄한 대사인데 왜 저렇게 귀엽게 들리는지. 팬심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객관적으로 보면 저건 그냥 나쁜 짓인데, 노노냥이 하면 예능이 된다. 라면을 먹으며 방송을 보다가 문득 채팅창에 눈이 갔다. [내일 합동 토벌대 소집이래] [진천에서도 파견 나온다던데] [누구지?] 순간 라면 국물이 코로 넘어갔다. 켁켁. 나 얘기였다. 댓글창이 점점 더 빠르게 올라갔다. [진천 탐색자면 그 유명한 걔 아냐] [걔 랭크 A상위라던데] [한 명뿐인데 A상위? 실화냐] 내 얘기를 남들이 실시간으로 떠드는 걸 보는 기분은 묘했다. 자랑스러워야 할지, 부끄러워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설마 노노냥도 그 작전에 오는 건가? 아니, 그건 너무 편의적인 상상 아닌가? 그래도 혹시? 어느 쪽이든? 결론 없는 자문자답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답도 없는 질문을 안고 라면 국물을 마지막까지 들이켰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도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이 꺼지고 방이 어두워지자, 그제야 내일 걱정이 슬며시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정각에 지부 앞에 도착했다. 겨울도 아닌데 아침 공기가 서늘했다. 한지연 팀장님이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 "왔네." "네. 근데 팀장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뭐가." "불편해 보여서요." 팀장님이 짧게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평소랑 좀 달랐다. "들켰네. 사실 이번 작전, 본부 쪽에서 좀 이상하게 짜놨어." "이상하게요?" "가면 알게 될 거야." 서류를 건네받았다. 합동 토벌대 편성표. 종이는 아직 잉크 냄새가 남아 있었다. 급하게 뽑은 게 분명했다. 맨 위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로 여러 지부 이름들. 청주, 충주, 제천, 그리고 서울 본부 파견단까지. 인원수를 세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다른 지부는 다들 세 명, 네 명씩 왔는데 진천은 나 혼자였다. 숫자를 눈으로 다시 세어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바뀌지 않았다. "팀장님, 저 혼자예요?" "응." "왜요?" "진천엔 너밖에 없잖아." 맞는 말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편성표 속 다른 지부 이름들이 갑자기 크게 보였다. 나는 그 틈에서 이름 하나로 덜렁 서 있는 셈이었다. 버스에 오르며 창밖을 보았다. 오늘도 학교는 결석이다. 이번 달 열세 번째. 버스가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그냥 팀장님이 시키니까 탄 거였다. 창밖으로 익숙한 논밭이 지나갔다. 매일 보던 풍경인데, 오늘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나는 끌려가고, 상황은 알아서 굴러간다. 누군가는 결정하고, 나는 그 결정 위에 얹혀 움직인다. 언제부터 이런 삶이 당연해졌을까.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합동 작전이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뭔가 큰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버스 엔진 소리가 낮게 웅웅거렸다.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진천에서 나 혼자. 다른 지부에선 서너 명씩. 본부 파견단까지 낀 이 이상한 편성.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퍼즐 조각 하나가 빠진 느낌. 아니, 어쩌면 조각 하나가 남는 게 아니라 애초에 이상한 자리에 끼워진 느낌. 그리고 그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틀리지 않았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