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탐색자가 저 하나라니

4화

다음 날 아침, 나는 결국 진실을 듣게 되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몸은 무거운데 정신은 이상하게 말똥말똥했다. 불길한 예감이란 게 이럴 때 오는 건가. 씻는 내내 손끝이 차가웠다. 캠프 회의실로 불려간 자리였다. 한지연 팀장님과 함께 본부 관리자를 만났다. 회의실 문을 열자 냉기가 먼저 훅 끼쳤다. 에어컨 온도를 얼마로 맞춘 건지, 아니면 원래 이 방이 이런 분위기인지 헷갈렸다. 관리자의 이름은 최영식. 서울 본부 인력배정과 과장이라고 했다. 안경 너머로 눈빛이 서류만 훑고 있었다. 사람은 안 보고 데이터만 보는 타입.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서준 탐색자님, 이번 작전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격식체지만 어딘가 형식적이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투였다. 마치 자동응답기가 말하는 것 같았다. "과장님, 저 세 개 조 지원 건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네, 말씀하세요." "보름 동안 저 혼자 세 개 조를 감당하라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최영식이 서류를 뒤적이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 뜸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초시계로 재면 몇 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서준 탐색자님의 능력치를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제 능력치를 어떻게 아세요?" "그동안의 실적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실적 데이터. 내가 죽어라 뛴 기록들이, 결국 나를 더 굴리는 근거가 되어 돌아왔다. 열심히 할수록 벌 받는 구조. 성실함이 무기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지연 팀장님이 끼어들었다. "과장님, 이건 명백히 과로입니다. 다른 지부에서 인원 충원을 해야지, 왜 진천 소속 한 명한테 다 몰아넣는 겁니까?"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평소 조용조용하시던 팀장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최영식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한 팀장님, 예산 문제입니다." "예산이요?" "충주, 제천 지부는 이번 분기 인력 채용 예산이 이미 소진됐습니다. 반면 이서준 탐색자님은..." 그가 말을 멈췄다. 뭔가 숨기는 듯 느껴졌다. 저 침묵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건지, 감이 좋지 않았다. "반면 뭔데요?" 내가 재차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최영식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서준 탐색자님 개인 실적으로 산정된 지부 지원금이 워낙 크다 보니, 본부에서는 그 실적을 다른 지부 부족분 충당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안 됐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데도 의미가 잡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팀장님이 대신 설명해줬다. 목소리가 떨렸다. "서준아, 이거 말은 좋게 하지만... 니가 실적을 내면 낼수록, 그 성과가 다른 지부 몫으로 재배정되는 구조라는 거야." 피가 거꾸로 솟았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아니라 아예 멎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가 열심히 할수록, 다른 지부는 놀아도 되는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정확히는 그런 거지." 최영식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라고 봐주시면 됩니다." 효율적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이럴 때 웃는 게 맞나 싶었지만, 안 웃으면 울 것 같아서 그냥 웃었다. "과장님, 저 이거 절대 못 받아들여요." "이서준 탐색자님, 이미 결재된 사안입니다." "그럼 다시 결재를 취소해주세요." "불가능합니다." 대화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니, 벽이 아니라 콘크리트 벙커였다. 아무리 두드려도 흠집조차 안 나는. "과장님, 이거 노동청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내가 던진 말에 최영식이 처음으로 미묘하게 표정을 바꿨다. "탐색자 협회는 특수 고용 형태라 일반 노동법 적용이 애매합니다. 소송하셔도 승소 가능성은 낮습니다." 즉답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준비해둔 답변 같았다. 얼마나 많은 탐색자들이 이 질문을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최영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다른 지부 브리핑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가 나가고 나서, 회의실에는 정적만 남았다. 에어컨 소리만 웅웅거렸다. 한지연 팀장님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거... 나도 몰랐어." "팀장님도 진짜 모르셨어요?" "내가 알았으면 진작 막았지." 팀장님의 표정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 표정이 진짜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지금 내 상황을 바꿔주진 못했다. "어제 뭔가 아시는 거 있는 눈치였잖아요." "...짐작만 했어. 확신은 못 했고." 짐작. 확신하지 못한 짐작. 그게 지금 나를 보름 동안 세 배로 굴리는 근거가 되었다. "팀장님, 이거 협회 상대로 뭐 할 수 있는 거 없어요?" "진정서 넣을 수는 있어. 근데..." "근데요?" "본부 정책이라 시간 오래 걸려. 그동안은 그냥 이대로 가야 해." 그동안은. 보름 동안, 그동안은. 숫자만 들으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그 보름을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건 나였다. 회사원들의 야근이랑은 다르다. 몬스터 앞에서 실수하면 야근이 아니라 응급실행이니까. "...알겠습니다. 일단 해볼게요."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은 이미 지쳐 있었다. 버틴다는 말이, 이제는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게 스스로도 무서웠다. 회의실을 나서니 노노냥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케줄이 있는데도 일부러 시간 내서 온 것 같았다. "서준님,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걱정하는 목소리에 오히려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래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힘든 얘기가 있어서요." "혹시 그 세 개 조 배정 얘기예요?" "들으셨어요?" "네, 캠프 사람들이 다 수근거리던데요." 다들 알고 있었구나. 나만 몰랐거나, 나만 마지막에 안 것이었다.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정작 당사자만 뒷북치는 이 상황이 웃기지도 않았다. 노노냥이 내 팔을 살짝 잡았다. 손이 작고 따뜻했다. "저기, 이거 너무 부당한 거 같아요. 제가 방송에서 이슈 만들어볼까요?" 순수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오히려 걱정됐다. "아, 아니에요. 그러면 노노냥 씨가 협회 눈치 볼 일 생길 텐데요." "저는 괜찮아요. 팬을 이렇게 부당하게 굴리는 거 못 참아요." 팬이라는 말에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 단어가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 몰랐다.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협회는 힘 있는 곳이라..." "알아요. 그래도 하고 싶어요." 그 결단력 있는 눈빛이 예뻤다. 방송 이미지와는 다른, 진짜 노노냥의 모습 같았다. 카메라 앞에서 웃는 얼굴과는 또 다른, 날 것 그대로의 얼굴. "일단은... 조금 더 지켜봐 주세요. 저도 방법을 찾아볼게요." "네, 알겠어요. 대신 정말 힘들면 꼭 저한테 말해줘요. 저 이런 거 진짜 못 참는 성격이에요." 노노냥이 손을 흔들며 스케줄 장소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까와는 다른, 조금은 진짜인 웃음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또 다른 조에 지원을 나갔다. 제천 지부 조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창밖만 봤다.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보름이라는 숫자로 가득했다. 박정호 조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텃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진천 대타 왔네." 대타. 그 단어가 유독 아프게 박혔다. 용병도 아니고 대타라니. 축구 경기에서 후반 90분에 잠깐 뛰는 그런 존재. 딱 그거였다. 조원들 중 하나가 낄낄거리며 옆 사람에게 뭐라고 속닥거렸다.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감은 왔다. 어차피 곧 나갈 사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뉘앙스. 나는 그냥 웃으며 인사했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얼굴 근육이 억지로 움직이는 게 느껴질 정도로.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몇몇의 시선과, 그마저도 금방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무관심뿐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보름을 어떻게든 버텨내겠다고.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며칠 뒤 팬미팅 현장에서 알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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