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마흔 살, 무직, 자산은 통장에 처박아둔 은퇴자금이 전부.
이게 나, 강도현의 현재 상태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무직은 아니다.
성 베네딕토 성당에서 받은 사제 서품과 소속 기록은 아직 남아 있다.
다만 탐색자 현역에서도, 성당의 사목 일선에서도 물러났으니 내 기준으로는 무직이나 다름없었다.
[전도서 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누가 이 구절을 나 보라고 써놨나 싶을 정도로 정확하다.
성경도 가끔은 사람 뼈를 때린다.
한때는 S급 탐색자였다.
동시에 성 베네딕토 성당의 신부이기도 했다.
사목과 탐색 임무를 함께 맡은 채로 보낸 세월이 정확히 20년이었다.
“한때는”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지금은 강원도 산골 마을, 산내리에서 감자나 캐는 아저씨니까.
한때는, 이라는 말 뒤에 붙는 이야기는 대개 화려하다.
전설의 파티에 있었다든가, 대형 길드 마스터였다든가.
내 경우엔 좀 다르다.
S급이라는 등급은 받았는데, 정작 그 등급에 걸맞은 스킬은 딱 두 개뿐이었다.
동료들은 다 던전 깊은 곳에서 전설을 썼다.
누구는 시공을 접어서 보스 몹 뒤통수를 쳤고, 누구는 한 손으로 산사태를 일으켰다.
신부와 탐색자를 겸한 그 20년 동안, 나는 딱 두 가지만 팠다.
탄화(炭化)와 장벽.
말 그대로 태우는 거 하나, 막는 거 하나.
왜 그것만 팠냐고?
간단하다.
다른 걸 배울 재능이 없었으니까.
남들은 화려한 광역 마법에, 소환에, 시공 왜곡까지 익히는데 나는 불 붙이는 것 하나 제대로 하는 데도 3년이 걸렸다.
그다음엔 그 불을 좀 더 세게 붙이는 데 5년.
그다음엔 안 세게, 딱 필요한 만큼만 붙이는 데 또 5년.
그리고 남은 7년은 그 “딱 필요한 만큼”이라는 감각을 손끝, 아니 정확히는 머릿속에 완전히 새기는 데 썼다.
한번은 길드 훈련장에서 동기 놈이 나를 보고 웃었다.
“강도현, 너는 진짜 안 질리냐? 촛불 하나 갖고 몇 년째 그러고 있어.”
“질리긴 하는데 이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러다 늙어 죽겠다.”
그 자식은 지금 대형 길드 마스터가 됐고, 나는 감자밭에 있다.
누가 맞는 소리를 한 건지는 이제 와서 따지지 않기로 했다.
동기들이 던전 클리어 랭킹에 이름 올리는 동안 나는 촛불 하나 세밀하게 조절하는 연습을 했다.
누가 봐도 낙오자의 삶이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시편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나는 그 안에 20년을 태우는 것과 막는 것에만 썼다.
효율적인 인생이라고는 죽어도 못 하겠다.
누가 내 인생을 요약해달라고 하면 딱 두 단어면 충분하다.
불, 그리고 벽.
그래서 탐색자 현역에서 은퇴했고, 성당의 사목 일선에서도 물러났다.
재능 없는 놈이 계속 버티는 건 민폐니까.
길드에서 나올 때 마스터가 붙잡긴 했다.
“강도현 씨, 그 정밀 제어력은 어디 가서도 못 구합니다.”
“정밀 제어력으로 몬스터를 썰 수는 없잖습니까.”
그 말에 마스터도 더는 못 잡았다.
산내리로 내려와서 텃밭 일구고, 가끔 마을회관에서 장기 두고, 그렇게 살기로 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는 다들 나를 이상하게 봤다.
서울말 쓰는 마흔 살 남자가 갑자기 산골에 들어와서 감자를 캔다니, 도망 온 사람 취급을 받는 게 당연했다.
지금은 그냥 “강씨”다.
이름도 아니고 성으로만 불리는 삶, 이것도 나름 평화롭다.
“강씨! 오늘 감자 얼마나 캤어?”
이장님이 마당 너머로 소리쳤다.
강원도 사투리는 여전히 낯설다.
“많이 못 캤슈. 세 포기 정도?”
“엥이, 그거 갖고 어디 쓴대. 우리 집 강아지도 그보단 많이 먹는다잖소.”
“강아지가 감자를 먹슈?”
“먹드래! 얼마나 잘 먹는데. 삶아주면 아주 환장을 하지.”
“그럼 우리 개도 한번 들여야 하나 봅니다.”
“강씨는 개 키울 팔자가 아녀. 감자밭이나 잘 돌보슈.”
이런 대화가 내 하루의 전부다.
예전엔 몬스터 웨이브를 막느라 밤을 새웠는데, 지금은 강아지 식성을 놓고 논쟁하는 게 최대 이벤트다.
가끔은 마을회관에서 장기를 두다가 최씨 할아버지한테 완패당하는 것도 이벤트에 포함된다.
최씨 할아버지는 팔십 평생 장기만 두신 분이라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S급 탐색자였던 놈이 팔십 노인한테 장기로 진다.
이것도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 말씀이랑 뭔가 통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뭐가 통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 그렇지.
이게 내 그릇이지.
다만 남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촛불 하나 세밀하게 조절하는 연습을 20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오늘 밤, 나는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손짓 하나 없이, 주문 한 마디 없이, 그냥 생각만으로.
화르르륵.
불꽃이 정확히 장작 세 개만 감싸고 나머지엔 옮겨붙지 않았다.
불이 알아서 골라 붙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나하나 지정해서 붙인 거다.
남들이 보면 마법처럼 보이겠지만 나한테는 그냥 숨 쉬는 거나 마찬가지다.
무영창, 무동작, 초정밀 제어.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20년 동안 딱 그거 하나만 팠기 때문이다.
다른 스킬은 3티어에서 멈췄는데 이 두 개만 마스터 등급을 찍었다.
스킬창을 열어보면 아주 볼품이 없다.
탄화(炭化) - 마스터.
장벽 - 마스터.
그 밑으로는 전부 다 F등급이거나 아예 없다.
누가 보면 편식하는 어린애 스킬창인 줄 알 거다.
남들은 이걸 재능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그냥 미련이라고 부른다.
다른 거 배울 머리가 없어서 이거만 죽어라 판 결과물이니까.
[마태복음 6:22,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내 눈은 딱 촛불 하나 밝기만큼 밝다.
그거면 됐다, 이 산골에서는.
서울 한복판이었으면 이 정도 스펙으로는 배달 라이더도 못 했을 거다.
산내리는 조용한 마을이다.
가끔 저 산 너머 던전에서 몬스터가 흘러나온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것도 몇 년에 한 번꼴이고 대부분 F급, 잘해봐야 E급이다.
이장님 말로는 옛날엔 산신령이 지켜준다고 했다는데, 나는 그런 미신은 안 믿는다.
믿을 게 있으면 성경 구절이나 믿지, 산신령까지 챙길 여력은 없다.
그래도 이 동네에 정착한 이유 중 하나는 그거였다.
몬스터가 거의 안 나오는 조용한 곳.
20년 동안 태우고 막는 것만 하다가 이제는 그 두 스킬을 아궁이 불 조절하는 데나 쓰는 삶.
이 정도면 완벽한 은퇴 아닌가.
다만 오늘 밤, 마당에 앉아 감자를 다듬던 중 오래 잠잠하던 탐색자의 감각이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왜지?
바람이 이상하게 부는 것도 아닌데.
[욥기 4: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모든 골절이 흔들렸느니라]
뭐야, 오바하는 거 아니야.
감자 다듬다가 이런 생각 하는 거 좀 웃기지 않나.
20년 탐색자 생활 짬바가 어디 안 갔나 보다, 이런 식으로 넘기려고 했다.
칼질하던 손을 잠깐 멈추고 산 쪽을 바라봤다.
평소랑 다를 게 없었다.
어둠, 나무, 가끔 바스락거리는 소리.
평범한 강원도 산 밤 풍경이다.
그런데 산 쪽에서, 뭔가 짐승 소리 같은 게 들렸다.
크고, 낮고, 뭔가 화가 난 듯한.
으르르르릉…….
저게 뭔데.
그냥 개일 거야, 이 동네 개들 다 목소리가 좀 크잖아.
누구네 진돗개가 목줄 풀렸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진돗개 소리는 저렇게 낮지 않다.
저건 뭔가 더 크고, 더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배 속까지 진동이 오는 느낌이랄까.
스스로 그렇게 결론 내리고 다시 감자를 다듬었다.
손이 살짝 떨렸지만 그것도 그냥 밤바람이 차서 그런 거라고 치기로 했다.
감자 껍질이 도르르 말려 떨어지는 소리만 마당에 울렸다.
그날 밤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나니 어젯밤 일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
마당에 나와 밭을 둘러보는데 별다른 흔적도 없었다.
발자국도, 부서진 담장도, 아무것도.
역시 그냥 개였나 보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호미를 챙겨 밭으로 나섰다.
이장님이 마당 앞을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강씨, 얼굴이 왜 그려? 밤새 뭐 했슈?”
“아뇨, 잠을 좀 설쳤슈. 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이상한 소리? 뭔 소리?”
“개 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장님이 잠깐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 웃어넘겼다.
“에이, 요새 산짐승들 겨울 준비한다고 왔다 갔다 하는겨. 신경 쓰지 말드래.”
“그렇겠쥬.”
그렇게 대충 마무리하고 나는 다시 밭일로 돌아갔다.
호미로 흙을 뒤집으면서도 자꾸 산 쪽으로 눈이 갔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20년간 몸에 새겨진 탐색자의 감각이 이제 와서 발동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늙어서 예민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나는 몰랐다.
그 소리가 내가 겨우 얻은 조용한 은퇴 생활을 통째로 뒤흔들 신호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