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카메라가 나를 비추기 시작한 순간, 나는 이미 망했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카메라 렌즈가 빨간 불을 켜고 나를 정조준한 순간부터. 스튜디오 조명이 유독 뜨겁게 느껴졌다. 땀은 안 났는데 등줄기는 서늘했다. 이 느낌 뭔지 안다. 시험 답안지 제출하고 나서 문제지 다시 봤을 때 그 느낌.
대기실 스크린에 내 얼굴이 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얼굴이 아니라 삼 년 전 영상 속의 내 얼굴이었다. 흙투성이 갑옷, 찢어진 배낭, 그리고 그 뒤에서 나를 손가락질하는 최강혁의 얼굴. 화질도 좋다.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해온 건지. 방송국 자료팀 능력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이딴 놈을 왜 데리고 다녔는지 나도 모르겠네요."
영상 속 최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방청석에서 실제로 웃음이 터졌다. 와. 삼 년 전 웃음이 지금도 유효하구나. 유통기한도 없나 보다.
자막이 화면 아래 큼지막하게 떴다. '전 S급 파티 최약 짐꾼, 공개 추방 전력.'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하나 더. '싱크로율 측정 역대 최저 기록 보유자(예상).'
예상이라는 단어까지 붙여줘서 참 고맙다. 아직 측정도 안 했는데 미리 순위표를 짜놓은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옆자리에 앉은 선우진이 힐끗 나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동정도 아니고 무시도 아닌, 그냥 없는 사람 취급. 이게 제일 편한 반응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히려 편했다. 위로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제일 피곤하니까.
"한도윤 씨."
PD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이 영상 보시니까."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럴 것도 없죠."
"그래도 전국에 방송되는 건 처음이잖아요."
"그러네요. 축하할 일인가요?"
PD가 웃었다. 나는 안 웃었다. 이게 우리 사이의 유일한 합이었다. 카메라 감독이 내 표정을 클로즈업하려고 조금 더 다가온 게 느껴졌다. 그래, 찍어라. 요즘 이 정도 굴욕은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면 잊혀지는 수준이다. 편의점 든든한 든든씨 하나 먹으면서 다 소화시킬 수 있다.
삼 년 전, 나는 S급 파티 '여명'의 짐꾼이었다. 정확히는 그 파티에서 유일하게 전투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다. 무기 정비, 물자 관리, 지도 해독, 잡일 전부. 전투 중엔 뒤에서 숨거나 도망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다들 나를 '짐꾼'이라고 불렀다. 이름 대신. 삼 년을 같이 다녔는데 이름 대신 직함으로 불렸다는 거, 이게 뭘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최강혁은 그 파티의 리더였다. 그리고 마지막 던전에서, 전멸 직전의 상황에서 그는 나를 버리고 나머지를 데리고 탈출했다. 카메라도 없었고 증인도 없었지만, 그날 이후 최강혁은 어디서든 그 얘기를 했다. 짐꾼 하나 버린 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투로. 인터뷰마다, 방송마다, 술자리마다. 마치 그게 무슨 전략적 판단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제 그 얘기가 전국 방송에 재활용되고 있었다. 삼 년 전 소스를 재탕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새로 요리해서 내놓는 수준이다. 원가 절감이라는 말이 이런 데 쓰이는 건가.
이 쇼의 제목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뭐 대충 '최강자들의 짝짓기' 같은 거였는데, 제작진이 붙인 정식 명칭은 훨씬 근사했다. 요는 최상위 헌터 열 명을 모아놓고 서로 짝을 지어 던전을 탐색하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싱크로율'이라는 지표로 시청자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겠다는 거였다. 마법으로 측정한다는 그 지표가 정확히 뭘 재는 건지는 아무도 제대로 설명 안 해줬다. 대충 감정선, 호흡, 전투 합, 그런 걸 다 섞어서 숫자로 뽑는다고 했다. 연애 예능에 게임 스탯을 갖다 붙인 느낌이었다.
나는 최상위 헌터가 아니었다. 나는 최하위, 그것도 압도적인 최하위였다. 그런데 왜 여기 앉아 있느냐고?
제작진 말로는 '대비 효과'를 위해서였다. 극단적인 하위 참가자 하나를 넣어서 시청자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재미 요소로 쓰겠다는 거였다. 방청객 앞에서 실컷 조롱당하고 아마 첫 방송에서 탈락할 예정인 소품. 계약서에 사인할 때부터 그 의도를 명확히 느낌적으로 알려주셨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눈빛으로 다 말해줬다.
나쁘지 않은 대우였다. 최소한 삼 년 전보다는. 그때는 조롱당하고 버려지기까지 했는데 이번엔 조롱만 당하면 되니까. 발전이다, 이게.
"자, 이제 첫 매칭 공개 시간입니다!"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조명이 무대 중앙으로 몰렸다. 아홉 명의 참가자가 나란히 섰다. 나는 맨 끝에 서 있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옆에 선 참가자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들 표정 관리는 하고 있는데 눈빛은 못 숨겼다. 저마다 계산기를 돌리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이번 매칭에서 누굴 얻어야 다음 라운드에 유리한지.
나는 계산할 게 없었다. 나한테 유리한 매칭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무대 반대쪽에서 문이 열렸다. 백은서가 걸어 들어왔다.
이 리얼리티 쇼의 유일한 최강 검사. 랭킹 1위. 별명이 '무결점'이라던가. 얼굴에도, 검술에도, 표정에도 흠 하나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얀 검복을 입은 그녀가 걸음마다 카메라 플래시를 튕겨내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왔다. 걸음걸이마저 각이 잡혀 있었다. 마치 걷는 법을 따로 훈련받은 사람처럼.
방청석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나를 보고 웃던 사람들이 이번엔 숨소리도 죽였다. 이 낙차가 참 재밌다. 나 하나로는 웃음이 터지고, 저 사람 하나로는 정적이 흐른다.
"백은서 님이 오늘, 첫 파트너를 직접 선택하십니다."
사회자의 말에 방청석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다들 답은 정해져 있다는 표정이었다. 선우진이 은근히 어깨를 펴는 게 보였다. 상큼한 왕자계, 밝은 웃음, 완벽한 조건. 백은서와의 페어링이 예상되는 유일한 인물. 방청석에서도 벌써 두 사람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팬픽 제목 같은 걸 벌써 지어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구경꾼이었다.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백은서가 참가자들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이 선우진을 지나쳤다. 도강준을 지나쳤다. 이유성을 지나쳤다. 한 명씩 지나칠 때마다 그 참가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풀리는 게 보였다. 다들 자기가 선택될 거라고 반쯤은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 앞에서 멈췄다.
뭐지.
방청석이 완전히 침묵했다. 나도 침묵했다. 백은서의 눈은 표정이 없었다. 그냥 나를 관찰하는, 어떤 사물을 감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값어치를 매기는 감정사의 눈. 근데 그 감정사가 지금 뭘 감정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최강혁한테 버려진 짐꾼이다. 싱크로율 최저 기록 예상 보유자다. 방금 전국 방송에서 웃음거리로 소비된 인간이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뭘로 보고 있는 거지.
"저 사람으로 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조용하던 방청석이 일순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