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백색 파동이라니 그게 뭔데요."
내가 물었다. 구체는 대답 없이 몇 초간 우리 둘 사이를 오가며 빛을 깜빡였다. 무슨 고민을 하는 건지, 인공지능도 뜸을 들일 줄 아는구나 싶었다. 던전 안은 조용했다. 방금까지 우리를 잡아먹으려던 미확인 개체의 흔적도, 비명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이 둥둥 떠 있는 구체 하나와, 백은서와 나, 그리고 알 수 없는 정적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었다. 기계음이 아니라 훨씬 부드러운, 사람 같은 톤이었다.
"실례합니다. 저는 이 시설의 관리 보조 인격체입니다. 편의상 '가디'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가디요."
"네, 가디. 다시 말씀드리면 방금 두 분의 싱크로 측정치에서 표준 범주를 벗어난 패턴이 검출됐습니다."
백은서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수치로 말해줄 수 있나요."
"공개된 수치로는 12퍼센트입니다."
방청석 없는 던전 안이었는데도 나는 그 침묵의 무게를 느꼈다. 숫자 하나가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12퍼센트요?"
"네. 역대 최저 기록에 근접합니다."
와. 진짜 최강혁 말이 맞았네. 그 인간 입에서 나온 예언이 이렇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다. 차라리 로또 번호를 맞혀줬으면 좋았을 텐데.
"근데 그거랑 별개로, 비공개 데이터에서 특이한 신호가 잡혔습니다. 백색 파동이라고 임시 명명한 패턴인데, 이건 기존 싱크로율 계산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값입니다."
"그러니까 12퍼센트인데, 뭔가 이상한 게 또 있다는 거네요."
"정확합니다."
가디의 대답이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신뢰가 갔다. 이 구체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아니, 인공지능이 성격이 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어쨌든 그런 인상을 받았다.
"원인은 뭔데요."
"현재로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도윤 씨 측에서 특정 시점에 스킬 및 물리 구조의 '단절 구간'을 인지하는 이례적 반응이 관측됐고, 백은서 씨 측에서는 그 신호와 동조하는 파형이 감지됐습니다."
어려운 말을 쉽게 못 해주는 인공지능이었다. 나는 이럴 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쉽게 말해서요."
"쉽게 말해, 두 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백은서가 나를 쳐다봤다. 나도 그녀를 쳐다봤다. 뭘 보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시스템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싶었다. 백은서의 눈빛은 평소처럼 담담했지만, 그 안에 뭔가 계산하는 듯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 여자는 항상 저런 식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먼저 상황을 파악한다.
"이 데이터는 방송에 활용될 수 있나요."
백은서가 물었다. 예상 못 한 질문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당연한 질문이었다. 여긴 리얼리티 쇼니까. 우리는 던전 안에서도 카메라 없는 촬영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12퍼센트 수치는 이미 공개 예정입니다. 백색 파동 관련 데이터는 비공개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가디가 잠시 멈췄다. 나는 그 멈춤이 뭔가 안 좋은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제작진 측에서 이 이례적 데이터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뭔가의 실험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내가 물었다. 가디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라는 걸 나는 이 방송을 하면서 배웠다.
귀환석이 빛나며 우리를 스튜디오로 다시 데려갔다.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는 느낌, 그리고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는 감각. 게임에서 로딩 화면 볼 때 그 잠깐의 텅 빈 시간이 떠올랐다. 나가는 문이 열리기 직전, 가디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참고로, 12퍼센트라는 수치는 낮은 게 아닙니다. 시작점이 낮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 모르겠다. 시작점이 낮다는 거랑 수치가 낮다는 게 뭐가 다른데. 그런데도 그 문장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스튜디오로 복귀하자마자 우리는 결과 발표 무대에 세워졌다. 조명이 뜨거웠다. 던전 안의 차가운 공기와는 완전히 다른, 인공적인 열기였다. 스크린에 커다랗게 12%라는 숫자가 떴다. 방청석에서 낮은 신음 같은 웃음이 흘렀다.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가렸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 반응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이거 편집하면 밈 되겠는데.
"역대 최저에 가까운 수치네요."
사회자가 확인하듯 말했다. 목소리에 살짝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저 사람도 이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최강혁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오늘 계속 웃고 있는 걸 보니, 이 인간은 아마 이 방송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웃음이 안 사라진다.
"제가 뭐랬습니까. 저 인간이랑 뭘 해도 시너지가 안 나요. 여명에서도 그랬고요."
방청석에서 웃음이 다시 번졌다. 몇몇은 박수까지 쳤다. 나는 그냥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이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최강혁 저 인간, 여명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를 깎아내려야만 자기가 올라가는 줄 아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백은서가 입을 열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 순간 방청석의 웃음소리가 서서히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이번 던전에서, 미확인 개체를 상대할 때 저를 살린 건 저 사람이었습니다."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정적이었다.
"수치는 낮았지만, 그가 본 걸 저는 못 봤습니다."
최강혁의 웃음이 살짝 굳었다. 나는 백은서를 바라봤다. 그녀는 카메라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뜨거웠다. 아니, 뜨거운 건 조명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낮은 수치가 전부는 아닐 겁니다."
담백한 문장이었는데, 그날 방송 내 어떤 대사보다 시청자 게시판을 뜨겁게 만들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는 그저 백은서의 옆얼굴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12퍼센트짜리 싱크로율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 장면이, 방청석 카메라에 어떻게 담겼을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던전 밖으로 나온 지 채 십 분도 안 됐는데, 가디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백색 파동. 기존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값. 그 말은, 우리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사이, 나는 백은서의 어깨를 슬쩍 스쳤다. 아주 짧은 접촉이었는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앞을 보고 서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참고 있는 얼굴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무대 뒤편 스태프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는데, 화면에는 방금 우리가 봤던 12%라는 숫자 옆에 붉은 글씨로 뭔가가 새로 떠 있었다.
"저기, 잠시만요."
스태프가 사회자에게 다가가 뭔가를 속삭였다. 사회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는 그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방송 십 년 차 사회자가 저런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봤다.
백은서도 그 소란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나도 그녀를 쳐다봤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