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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저, 저기……." 문틈으로 조그만 얼굴이 나타났다. 동그란 눈, 짧게 자른 앞머리, 아직 앳된 볼살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올해 막 견습생으로 들어온 아이였다. 이름은 하윤, 아직 열다섯 살, 견습 배지도 삐뚜름하게 달고 있었다. 배지가 옷깃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는 걸 보니 오늘도 서둘러 뛰어온 모양이었다. "뭐 도와줄 일 있어?"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부드럽게 나왔다. 스스로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발걸음이 느렸다, 마치 혼날 걸 미리 각오한 사람처럼. 손에는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병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거, 제가 만든 연고인데요. 색이 이상하게 나와써요." 서투른 말투였지만 진지함이 느껴졌다. 나는 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옅은 갈색 연고가 담겨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투명한 흰색이 나와야 하는 배합이었다. '산화가 진행됐구나.' 한 번 킁, 냄새를 맡았다. 예상대로 살짝 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아주 은은하게 쓴 향이 뒤따라왔다. '재료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 열 조절만 실패한 거야.' 병 안쪽을 손끝으로 살짝 문질러 점도를 확인했다. 끈적임이 예상보다 심했다, 열을 너무 오래 가한 흔적이었다. "열을 너무 오래 가한 것 같은데. 몇 도로 얼마나 끓였어?" 하윤은 눈을 크게 뜨며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숫자를 세는 모습이 꼭 셈을 처음 배우는 아이 같았다. "팔십 도로 이십 분요." "거기서 이미 문제가 생긴 거야. 이 성분은 칠십 도 넘으면 색이 변해." 나는 병을 내려놓고 종이 한 장을 꺼내 온도와 시간을 표로 그려주었다. 펜 끝이 종이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하윤의 시선이 그대로 따라붙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오십 도에서는 색이 그대로 유지되고, 육십 도부터 미세하게 노란빛이 돌기 시작해. 칠십 도를 넘기면 이렇게 갈변이 생기지." 하윤의 눈이 표를 따라 움직였다. "아…… 그래써요? 아무도 안 알려줘써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학원 정규 과정에 없는 내용이구나.' 이건 내가 독학하면서 수없이 실패하고 나서야 알게 된 세부적인 지식이었다. 밤새 온도를 오 도씩 올려가며 몇 번이나 병을 태워봤는지 셀 수도 없었다. 왕립약학원의 교과서에는 이런 미세한 온도 차이까지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서는 결과만 알려줄 뿐, 실패의 과정은 알려주지 않으니까. 나는 표 아래에 몇 가지 온도별 결과를 더 적어주었다. 각 온도에서 나타나는 색의 변화, 냄새의 차이, 심지어 굳는 속도까지 짧게 적어 넣었다. "이렇게 정리해두면 다음엔 실수 안 할 거야." 하윤은 종이를 받아 들고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종이 끝이 아이의 손에 눌려 살짝 구겨졌다. "고마워요, 언니!" 언니라는 호칭이 낯설게 느껴졌다. 동시에 묘하게 따뜻했다. 가슴 한쪽이 살짝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언니는 학원도 못 가고 독학으로만 배워서 잘 모를 줄 알았는데." 하윤이 순진하게 덧붙인 말이었다. 나쁜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 가슴이 살짝 저릿했다. '이 아이도 그 구분을 이미 알고 있구나.' 독학과 학원 출신을 나누는 시선이 이렇게 어린 견습생에게까지 닿아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학원 안에서 그 구분이 얼마나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는지, 그 증거 하나를 방금 눈앞에서 본 셈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하윤이 한 말이 그 씁쓸함을 조금 지워주었다. "그런데 언니가 훨씬 자세히 알려주써요. 학원 선배들보다 더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자세히, 라고.' 그 한마디가 오늘 하루 동안 쌓인 무게를 아주 조금 덜어주었다. 한서아의 날카로운 눈빛, 정우진의 무심한 지시들, 그 사이에서 켜켜이 쌓였던 피로가 잠시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였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연습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물어봐."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나온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원래라면 사람과 얽히는 걸 최대한 피하려 했을 텐데.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했다, 최소한 이 저택 안에서는.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위험조차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윤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음에 또 실패하면 바로 올게요!" 실패를 예고하는 말인데도 이상하게 귀엽게 들렸다. 아이는 종이를 가슴에 품은 채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가 방을 나가고 나서, 나는 다시 홀로 작업대 앞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의 무거운 기분이 조금 가벼워진 걸 느꼈다. '내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었던 순간이 있었구나.' 한서아와 정우진에게는 내가 '손'이었을지 몰라도, 하윤에게는 조금 다른 존재였다. 적어도 지식을 나눠주고,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관계. 그 단순한 사실이 오늘 하루 나를 지탱해준 유일한 온기였다. 나는 다시 겨울용 화장수 배합에 몰두했다. 작업대 위에 늘어놓은 유리병들이 창문 너머 오후 햇살을 받아 옅게 빛났다. 작업이 손에 착착 붙었다. 온기 성분과 향료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캡사이신 대신 생강 추출물을 소량 섞으면 자극은 줄이고 온기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건 원래 계획엔 없던 방법인데.' 독학 시절에 우연히 발견한 조합법이었다. 그때는 실수로 재료를 잘못 섞었다가 얻은 결과였는데,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방법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작은 유리 대접에 생강 추출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조심스럽게 저어가며 향을 확인했다. 코끝을 스치는 매운 향이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이 정도면 자극 없이도 온기를 낼 수 있겠어.' 결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시도해볼 이유는 충분했다. 작업대 위 시계가 조용히 흘러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배합 비율을 바꿔가며 실험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시도가, 며칠 뒤 열릴 시연회에서 예상치 못한 파장을 일으킬 거라는 걸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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