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삼 주가 지나고, 나는 태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처음엔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십 년 넘게 붙어 다닌 사이였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까지 다 외우고 있는 사이였으니, 작은 변화 정도는 당연히 예민하게 잡힐 수밖에 없었다.
'십 년이면 그럴 만하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정리했다. 사람은 오래 본 상대의 미세한 균열까지 잡아내는 법이니까. 그게 특별한 감정 때문은 아닐 거라고, 나는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데 그날, 실습 강의실에서 나는 확실히 봤다.
서아가 흉작 시나리오 대응 계획을 발표하는 중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논리가 명확했고, 데이터 근거도 나름 촘촘했다. 강의실 안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자료 화면을 넘길 때마다 손끝이 살짝 떨렸는데, 그 떨림조차 성실함으로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 발표 내용을 들으며 몇 가지 허점을 찾고 있었다. 세율 계산 방식이 조금 낡았고, 흉작 등급 분류에 오류가 있었다. 발표가 끝나면 지적할 생각이었다. 손에 든 필기구로 오류가 있는 부분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옆줄에 앉은 태윤을 무심코 봤다.
그는 서아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말을 더듬거나 자료를 놓칠 때마다 대신 긴장하는 사람처럼 미간을 좁혔다. 서아가 슬라이드를 넘기다 순서를 헷갈려 잠시 멈추자, 태윤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조용히 까딱거렸다. 발표가 순조롭게 이어지면 안심하는 듯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그건 내가 아는 태윤의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그 표정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해봤다. 없었다.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가 나를 향해 그런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나를 볼 때는 늘 다른 얼굴이었다. 신뢰, 편안함, 가끔은 무관심에 가까운 안정감. 걱정이나 조바심 같은 건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저 표정은 뭘까.' 나는 속으로 물었다.
결론은 하나로 좁혀졌다. 그리고 그 결론이 너무 뻔해서, 나는 오히려 스스로 그걸 부정하려고 애썼다. '보호욕이겠지. 사람은 약한 존재를 보면 본능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법이니까. 그건 감정이 아니라 반사작용이야.'
스스로 그렇게 정리해놓고도, 마음 한쪽이 계속 불편했다. 손에 쥔 필기구 끝을 몇 번이나 딸깍거렸다.
'반사작용이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야.' 나는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발표 자료로 시선을 돌렸다. 일에 집중하는 게 익숙했다. 감정은 나중에 정리해도 늦지 않았다.
발표가 끝나고, 나는 예정대로 손을 들었다.
"세율 계산 방식에 오류가 있습니다." 나는 짧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근거가 되는 항목을 두 개 짚었고, 흉작 등급 분류표의 기준 연도가 잘못 인용됐다는 것도 덧붙였다.
서아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나를 봤다. "아, 그, 그 부분은…"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손에 쥔 레이저 포인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때 태윤이 끼어들었다. "하은, 좀 봐줘. 처음 하는 발표잖아."
나는 그를 쳐다봤다. "봐주는 게 아니라 정확한 걸 말하는 거야."
"그래도."
"그래도 뭐."
그가 말을 삼켰다. 서아가 조용히 자료를 정리하며 자리에 앉았다. 강의실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누군가 헛기침을 했고, 강사가 다음 발표자를 부르며 상황을 넘겼다.
강의가 끝난 뒤, 태윤이 나를 따로 붙잡았다. 복도 끝, 사람이 없는 창가 쪽이었다.
"아까 좀 심했던 거 같아."
"뭐가."
"서아 아직 적응 중이잖아."
"그래서 틀린 걸 맞다고 해줘야 해?"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아니라,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각을 세워."
"나답지 않다니." 나는 그 말을 몇 번 속으로 되풀이했다. 나답다는 게 뭔데. 늘 옆에서 지켜만 보고, 필요할 때 방패가 되어주고, 아무것도 티 내지 않는 것. 그게 나다운 거라면, 나는 그 역할이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가 한 손으로 목덜미를 문지르며 나를 봤다. 곤란해하는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곤란함이 나를 향한 게 아니라 서아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은아, 나는 그냥…" 그가 말을 흐렸다.
"그냥 뭐."
"아니다. 됐어."
그가 그렇게 말을 접는 것도 낯설었다. 예전의 태윤이었다면 끝까지 자기 할 말을 다 했을 텐데.
하지만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짧게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야."
"뭐가 그런 거 아닌데?"
"네가 방금 생각한 그거." 나는 정확히 뭘 생각했는지 모르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대답 대신 그냥 웃었는데, 그 웃음이 평소보다 조금 어색했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까지 그 강의실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렸다. 그의 좁혀진 미간, 안심하며 내려간 어깨. 그리고 그가 나를 볼 때는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는 사실.
천장을 보며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별거 아니야.' 그렇게 결론을 내려놓고도, 이상하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서아가 태윤에게 도시락을 건네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