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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9388년, 인류는 하늘에 도시를 짓고 바다 밑에 정원을 가꾸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궤도 엘리베이터가 매일 수십만 명을 실어 올렸고, 심해 도시의 야경이 지상의 오로라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며, 인공지능이 감정노동까지 대신하는 시대였다. 그런 초고도 문명의 정점에서도, 나 강태오는 여전히 지상 37층 임대주택에서 어머니 한미경과 단둘이 살았다. 매달 말이면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 삶. 초고도 문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난은 여전히 인간을 가장 정교하게 옭아매는 시스템이었다. 인공지능이 우주선 궤도를 계산하는 시대에도, 나는 편의점 폐기 도시락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일에 더 능숙했다. 그날은 서은채의 스무 번째 생일이었다. 서은채. 부동산 재벌 서명호의 외동딸이자, 열 살 무렵 유괴범들에게 붙잡혀 있던 걸 내가 우연히, 아니 정확히는 무모하게 뛰어들어 구해낸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 그날 이후 그녀는 나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처럼 대했고, 나는 그 신뢰를 십 년 동안 부담과 애정이 뒤섞인 채로 짊어지고 살아왔다. 초대장은 홀로그램으로 날아왔다. 서명호 타워 옥상 정원, 저녁 일곱 시. 나는 정장 대신 그나마 각 잡힌 셔츠 하나를 입고 그 자리에 섰는데, 옷장을 세 번이나 뒤집어놓고 고른 셔츠였다.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부터 이미 위화감이 온몸을 조여왔다. 반중력 샹들리에가 허공에 떠 있었다. 서빙 로봇들이 살아 있는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명품 브랜드의 최신 나노섬유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옷감 자체가 조명에 따라 색을 바꾸는 종류였다. 그 화려함의 한복판에서 나는 딱 하나, 가난이라는 얼룩처럼 존재했다. "어이, 강태오." 최도현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서명호와 사업적으로 얽힌 최씨 그룹의 장남이었고, 서은채 주변을 맴돌며 나를 볼 때마다 비웃음을 감추지 않는 인간이었다. "오늘도 그 셔츠냐? 몇 번째 입는 거야, 그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는 게 더 정확했다. "은채가 왜 너 같은 애를 아직도 곁에 두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가 술잔을 흔들며 웃었다. 얼음이 잔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동정이겠지, 뭐. 아니면 무슨 애완동물 같은 거거나." 씨발, 진짜. 속으로 욕이 터졌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 발끈해봤자 손해 보는 건 나였고, 그 계산은 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손가락 끝이 조금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주먹을 쥐어 감췄다. "할 말 없냐?" 최도현이 한 발 더 다가섰다. "역시 없구나. 그냥 조용히 있다가 축의금 봉투 하나 놓고 가라. 그게 니 역할이잖아." 나는 그저 서은채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최도현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태오야!"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흰 드레스 자락이 인공 바람에 흔들렸고, 그 미소만큼은 이 화려한 옥상정원 전체보다 더 빛나 보였다. "늦은 줄 알았어." "일 끝나고 바로 왔어."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생일 축하해." "뭐 사왔어?"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올 때 편의점에서 산 초콜릿."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건넸다. "비싼 거는 아니지만."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그녀가 상자를 품에 안았다. 진심인지 예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나는 그 미소를 십 년째 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심장이 조금 이상하게 뛰었다. 그때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레이디 서은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손님으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중앙, 은빛 상자 하나를 비췄다. 크기는 성인 남자 상반신만 했고, 표면에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동아시아 연합 특별대표 명의로 전달된 축하 선물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몇몇은 휴대용 홀로캠으로 그 순간을 촬영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화려한 사람들의 화려한 놀이의 일부라고 생각했을 뿐. 최도현이 옆에서 "역시 국가급 인맥이네" 하고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은채가 무대로 걸어 올라갔다. 하이힐 굽이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녀가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끝이 상자 표면에 닿는 순간, 내 시야 한쪽에서 뭔가 미친 듯이 빠르게 반짝였다. 상자 내부의 회로가 과열되는 듯한 붉은 빛.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거, 이상한데. 그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음은 설명할 수 없는 속도로 벌어졌다. 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서은채를 향해 뛰었고, 무대 위를 가로질러 그녀를 밀쳐내며 내 몸으로 상자를 덮었다. 폭발음은 소리가 아니라 압력으로 먼저 왔다. 고막이 찢어지는 감각, 뒤이어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열기가 몰려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죽지 않았다. 의식이 끊겼다가 다시 붙는 그 짧은 틈 사이, 내 오른손이 보였다. 살이 아니었다. 은백색의 매끈한 금속 표면이 손가락 마디를 따라 흐르고 있었고, 그 위로 붉은 액체 같은 빛이 실핏줄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소리를 내려 했지만 목에서 나온 건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음이 뒤섞인, 낯선 진동이었다. 시야 가장자리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경고: 생체 조직 붕괴율 41%] [비정형 재구성 프로토콜 가동] [숙주 생존 확률 재계산 중... 12% → 34% → 58%] 숫자가 올라갈수록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 뜯기고 다시 이어붙는 듣기 싫은 소음이 났다. 뼈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재구성되는 소리였다. 나는 그 글자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겨를도 없이,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날, 옥상정원의 폭발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서명호 회장 자택에서 폭발, 배후는 해외 극단주의 단체로 추정」 「생존자 있으나 의식불명」 「범인 신원 미확인, 국제 수사 공조 요청」 「폭발 당시 촬영된 홀로캠 영상, 한 남성이 피해자를 감싸는 모습 포착」 커뮤니티 반응도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익명1] 저 남자 누구야? 몸으로 막았대 [익명2] 대박이다 진짜 영웅이네 [익명3] 근데 저 정도 폭발이면 생존 불가능인데? [익명4] 시신 안 나왔다는데 실종 처리된 거 아냐? 나는 그 뉴스 속의 '생존자'였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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