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낯선 대지에서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 아래로 느껴지던 흙바닥의 축축한 냉기가 서서히 체온으로 데워질 무렵,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풀숲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낙엽 밟히는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나는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관절 곳곳에서 통증이 스쳤다. 팔뚝의 금속 표면이 아침 공기에 닿아 서늘했고, 그 서늘함이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저기 뭔가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나?"
거친 목소리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무릎이 후들거렸다. 옆을 보니 최도현은 이미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어찌나 창백한지 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사람 같았다.
숲 사이로 등장한 건 청년 하나였다. 귀족적인 얼굴선에 어울리지 않게 거칠게 그은 옷차림,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고,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절도가 배어 있어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팔이... 저게 뭐요?"
그는 내 금속 팔뚝을 가리키며 한 걸음 다가섰다가, 다시 반걸음 물러섰다. 경계와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강태오." 나는 후드를 완전히 벗고 그를 마주 봤다. "내 이름은 강태오다. 당신은?"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 몸을 감추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진 저 매끈한 금속 광택을, 대체 무슨 수로 가리겠는가.
"남궁준." 그가 짧게 답했다. "풍수문 내문제자요. 태오, 라 했나. 그 팔은 대체 무슨 조법(造法)이오? 강기(强氣)를 두른 것 같지도 않은데 저런 광택이 나다니."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조법이 뭔지도, 강기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미확인 개념: 조법(造法)] [미확인 개념: 강기(强氣)]
시야 한쪽에서 낯선 문자가 스쳐 지나갔다가 사라졌다. 씨발, 이 시스템은 이럴 때만 눈치 빠르게 굴지.
"설명은 나중에."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죠?"
"풍수문의 산문 아래요. 여긴 무림이라 불리는 땅이지." 남궁준이 답했다.
무림. 그 단어가 낯설게 귀에 감겼다. 병원 천장의 형광등 불빛만 기억하던 내게 무림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전개인지, 나조차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산 위쪽에서 늙은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이놈, 거기서 뭐 하는 게냐!"
백발을 산발한 노인이 성큼성큼 내려왔다. 걸음걸이만 보면 여든은 족히 넘어 보였는데, 그 속도는 마치 이십 대 청년처럼 빨랐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내 앞까지 다가와 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갑자기 눈을 번뜩였다.
"이 몸뚱이, 이거 물건이구나!"
손가락으로 팔뚝 표면을 튕겨보고, 손톱으로 긁어보고, 급기야는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까지 맡았다. 나는 그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었지만 뿌리칠 수도 없었다.
"마 장로님." 남궁준이 그를 불렀다.
노인, 마호산이었다. 풍수문의 장로이며, 스스로 창안한 무공 철갑결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남궁준이 짤막하게 설명해줬다.
"네놈, 이름이 뭐냐." 마호산이 물었다.
"강태오입니다."
"강태오. 좋다, 오늘부터 내 제자로 삼겠다."
"예?"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조건도 절차도 없이 말입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라." 마호산이 손을 휘저으며 코웃음을 쳤다. "저 팔뚝 하나만 봐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체다. 내가 안 거두면 다른 놈이 거둔다. 다른 문파 놈들이 이 소문을 듣고 몰려오기 전에 얼른 도장 찍는 게 서로 이롭지 않겠느냐."
그의 눈빛에는 어떤 계산이 서려 있었다. 늙은 여우 같은 눈빛이었다.
최도현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마호산이 그를 힐끗 보고는 코웃음 쳤다. "넌 그냥 곱상하게 생겼구나. 객원제자로나 붙어 있어라."
최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뭐라도 항변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 낯선 땅에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그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그렇게 나는 풍수문의 문하에 들었다.
*
첫 검증은 다음 날 새벽에 이루어졌다.
동이 트기도 전, 마호산은 나를 연무장으로 끌고 갔다. 연무장 한복판에는 사람 몸통보다 두 배는 큰 바위가 놓여 있었는데, 표면에 오래된 이끼가 잔뜩 껴 있어 족히 몇십 년은 그 자리를 지킨 듯 보였다.
"쳐봐라." 마호산이 짧게 명령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손등의 금속 관절이 서서히 조여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정말 통할까, 하는 의문과 통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쿵.
바위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마호산의 눈이 커졌다.
"다시."
나는 두 번, 세 번 반복했고, 바위는 결국 산산조각 났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마호산의 옷자락을 스쳤지만, 그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앞으로 내밀며 그 광경을 눈에 담으려 했다.
[출력 정상화] [관절 최적화 진행률 34%]
시야 한쪽에서 문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세계에서도 그 낯선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봤던 그 문자들과 똑같은 형식, 똑같은 서체. 대체 이게 뭔지, 누가 만든 건지 나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철갑결의 기초 초식조차 안 가르쳤는데 이 위력이라니." 마호산이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가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강태오, 넌 백 년 만에 나온 물건이야."
*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풍수문의 산문 안에서는 하루도 안 돼 온갖 소문이 돌았다. 팔이 쇠로 된 괴물이 들어왔다더라, 마 장로가 직접 제자로 거뒀다더라, 바위를 맨주먹으로 부쉈다더라. 소문은 부풀려지고 또 부풀려져 어느 순간엔 내가 산 하나를 무너뜨렸다는 말까지 돌았다.
며칠 뒤, 최도현은 다른 제자들 앞에서 나를 걸고넘어졌다.
"철갑결이니 뭐니 해도, 저건 정상적인 무공이 아니잖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열등감이 그대로 묻어났다. "진짜 무공으로 붙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죠."
그가 나를 향해 검을 뽑아 겨눴다. 검신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어때, 강태오. 정정당당하게 한판?"
연무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제자들이 순식간에 삼십여 명은 됐고, 그들 사이로 남궁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봤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았다.
최도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쳤다. 나는 그 궤적을 눈으로 정확히 좇으며 옆으로 반보 물러섰다가 그의 손목을 그대로 붙잡았다.
우드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나며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연무장에 정적이 흘렀다.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최도현이 나를 올려다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이... 괴물 같은 놈."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시야 한 귀퉁이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성 유지율 98.9%]
병원을 떠날 때 99.6퍼센트였던 그 숫자가, 어느새 0.7퍼센트나 더 줄어 있었다. 나는 그 숫자가 정확히 무엇을 대가로 줄어드는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최도현을 제압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분명히 무언가가 빠져나갔다는 감각만은 선명했다. 손끝이 저릿저릿했고, 가슴 한복판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이게 뭐지. 왜 자꾸 줄어드는 거지.
물음표만 머릿속을 맴돌 뿐, 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연무장 한쪽 구석, 낡은 나무기둥에 기대선 마호산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게 가늘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 눈빛 속에 서린 것이 순수한 감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조차, 나는 그날 이후로도 한참을 알지 못한 채 지나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