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샹들리에 불빛이 눈을 찔렀다.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무대 위쪽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나는 스태프 명찰을 목에 건 채 무대 옆 통로에 서 있었다.
한빛게임즈 운영팀 GM 도현우, 그게 나였다.
정확히는 3년 차 대리, 연봉 3천 8백, 야근수당은 언제나 다음 달로 미뤄지는 그런 직급이었다.
오늘 시상식은 우리 회사가 만든 대작 MMORPG 〈영원의 균열〉이 대상을 받는 날이었고, 나는 그 뒤편에서 조명 케이블이나 정리하는 처지였다.
기획팀은 정장을 빼입고 무대 위에서 트로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검은 티셔츠에 무전기를 차고 바닥에 늘어진 선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억울하긴 한데, 그래도 밥값은 벌어야지.
객석에서는 이미 시상식 사회자가 다음 순서를 소개하고 있었다. 조명이 무대 중앙으로 몰리자 통로 쪽은 상대적으로 어두워졌다.
"저기, 저 케이블 좀 빼주실 수 있나요?"
무대감독이 헤드셋을 낀 채 소리쳤다.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벌써 삼십 분째 같은 통로를 오가며 케이블을 정리하고 있었으니 나도 슬슬 지쳐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바닥에 늘어진 검은 선을 잡아당겼다.
손끝에 닿은 선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굵기도 일반 전선치고는 지나치게 두꺼웠다.
그게 조명 타워를 지지하던 와이어였다는 건, 타워가 기울어지는 순간에야 알았다.
머리 위에서 삐이익, 금속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든 순간,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천천히, 그러다가 순식간에 각도를 꺾으며 내려오는 게 보였다.
콰앙.
귀가 먹먹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
몸이 뭔가 아주 무거운 것에 짓눌리는 감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구분이 안 됐다.
···이건 좀 너무 소설 같은 죽음이잖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그거였다. 이런 죽음은 시나리오 기획서에도 안 넣을 텐데. 심의에서 바로 반려당할 만큼 작위적이잖아.
* * *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방의 낡은 나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목조 구조였고, 벽에는 곰팡이가 얼룩덜룩 피어 있었다. 나무 타는 냄새와 오래된 천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원이 아니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전에 먼저 위화감이 왔다.
손을 들어 보니 내 손이 아니었다.
가늘고, 여리고, 손톱 밑에 흙이 낀 열다섯 살짜리 소년의 손.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것만으로도 낯설었다. 마디마디가 내가 알던 감각보다 훨씬 작았다.
"뭐야 이거."
목소리도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얇고 앳된, 변성기가 채 끝나지 않은 소년의 음성이었다.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자 침대가 삐걱거렸다. 낡은 나무가 체중에 눌려 내는 소리조차 낯설었다.
문밖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낮은 탄식, 그리고 향냄새가 문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장례식이잖아, 이거.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좁은 복도 끝, 사람들이 상복을 입고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관이 하나 놓여 있었고, 관 옆에는 검은 상복을 걸친 중년 여인이 무너지듯 앉아 울고 있었다.
복도의 나무 바닥이 발밑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신발도 안 신은 맨발이었다.
"도련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늙은 집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주름이 깊게 팬 얼굴에, 눈은 밤을 새운 듯 붉게 부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죠?"
존댓말이 튀어나온 건 습관이었다. 서비스업 짬바가 어디 안 가는구나.
세 시간짜리 컴플레인 전화도 존댓말로 받아넘긴 몸인데, 이 정도 위기 상황에서 반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주인어른께서··· 몬스터 토벌 도중 돌아가셨습니다."
집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몬스터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귀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음처럼 딱딱한,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톤.
"뭐, 뭐야 방금 그 소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목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다.
집사도, 울고 있는 여인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만 들은 소리였다.
···설마 이거, 시스템 메시지인가?
게임 운영팀에서 3년 굴러먹은 감각이 즉각 반응했다. 저 딱딱한 어투, 저 괄호 표기법, 저건 딱 우리 회사 게임 로그창 폰트다.
심지어 폰트 크기까지 익숙했다. 12포인트, 고딕체, 자간 넓게.
하지만 여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게임은 아니었다.
로그아웃 버튼이 없었고, GM 계정으로 접속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몸에 갇혀 있었다.
집사가 나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주인어른께서 가시고, 이제 이 집안을 이끌 분은 도련님뿐입니다."
이 집안이라니, 무슨 집안?
집사의 손이 내 어깨를 짚는 힘이 은근히 무거웠다. 기대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뭘 끄덕인 건지도 몰랐지만,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끄덕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 달이 두 개 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붉었고, 하나는 푸르렀다.
두 달이 서로 반대편 하늘에 걸려서 마치 눈처럼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 이거 완전 판타지 세계관 클리셰네.
죽어서까지 판타지를 봐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 감상에 젖을 틈도 없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집사가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택 안이 분주했다. 하녀들이 검은 상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부산을 떨었고, 마당에는 낡은 마차 한 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도련님, 성인식 마력 측정을 받으셔야 합니다. 남작가의 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소 3등급 이상은 나와야···"
"마력 측정이요?"
되묻는 목소리가 떨렸다. 마력이라니, 이건 또 뭔 개념이야.
"예. 오늘 오후, 영지 신전에서."
집사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다가, 결국 다 말하지 못하고 삼키는 눈치였다.
마치 내가 그 시험에서 떨어질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뭐야,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거야.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죽은 아버지의 이름은 도인철. 몰락해가는 남작가의 마지막 가주였고, 몬스터 토벌 원정을 떠난 게 가문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집사가 짧게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도씨 남작가는 삼대 전만 해도 영지 세 곳을 거느린 명문이었으나, 대마전쟁 이후로 영지가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작은 촌락 하나만 겨우 남은 처지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도인철의 아들이자 이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도현우였다.
그래, 내 원래 이름도 도현우였는데.
이름까지 똑같은 걸 보면 이게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이런 설정을 짰다면 클리셰 남발이라고 반려했을 텐데.
어쨌든, 나는 이제 이 소년의 인생을 대신 살아야 했다.
오후가 되자 마차가 나를 영지 신전으로 데려갔다.
마차 바퀴가 자갈길을 지날 때마다 온몸이 덜컹거렸다. 창밖으로 낡은 초가집들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들이 지나갔다.
신전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들 성인식을 보러 온 구경꾼들인 모양이었다.
신전 안, 커다란 수정구 앞에 늙은 신관이 서 있었다.
수정구는 사람 머리통 두 개는 들어갈 만큼 크고, 안쪽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
"손을 얹어보십시오."
신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수백 번은 반복했을 대사처럼 들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유리 같은 표면이 손바닥에 닿았다.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수정구가 옅은 빛을 냈다.
주변에서 낮은 탄성이 들렸다.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곧, 그 빛이 사그라들었다.
너무 빨리 꺼졌다. 다른 사람들 순서 때보다 확실히 짧았다.
신관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삼켰다. 그 뒷말이 뭔지 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쏟아졌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관이 수정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집사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설마, 0등급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 어느 것도 신관의 저 표정을 설명해주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