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어머니, 제가 이깁니다

2화

군인양로원(軍人養老院)—국가에 몸을 바친 늙은 병사들이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곳이라 했지만, 실상은 낡은 기와와 삐걱대는 마루로 가득한 초라한 건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곳으로 출근했다. 정확히는 '출근'이라기보다 '노예 노동'에 가까웠지만, 한 달에 은자 세 냥을 받으니 그럭저럭 이름값은 했다. "도현아! 이 밥 또 탔잖으냐!" 부엌에서 정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졌다. '오늘도 시작이네...' 나는 익숙하게 국자를 뺏어 들었다. 이곳 노병들은 하나같이 성질이 불같았다. 한때는 선천 경계니 초절정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별호를 달고 살았다던데, 지금은 밥 좀 태웠다고 소리를 지르는 노인네들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다시 짓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태운 게 아니라 어르신이 불 세기를 잘못 알려준 거잖아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잘리면 어머니 약값이 날아간다. 솥을 다시 씻고 물을 받는 사이, 옆에서 또 다른 노인이 훈수를 두었다. "거, 물을 그렇게 많이 부으면 죽이 되는 게야." "방금 어르신은 적게 부으라 하셨는데요." "내가 언제!" 이런 식이었다. 열 명 남짓한 노병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얹으면 밥 짓는 일이 무슨 전략 회의라도 되는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나는 그냥 다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불을 조절했다. 어차피 이 사람들 입맛에 딱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어머니 이명주는 지금 마화공심증(魔化攻心症)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남편, 즉 내 아버지가 유배를 떠난 뒤 받은 충격이 병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신의 유설아라는 명의가 진맥을 봐준 뒤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치료약인 청심단(靑心丹) 값이 자그마치 삼백 금이었다. 내가 일 년에 버는 돈의 팔십 배쯤인가 하는 액수를,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양로원 알바 백 년을 해도 못 모으겠다, 진짜.' 나는 그런 계산을 하며 밥솥을 다시 씻었다. 손가락이 물에 불어 허옇게 되어가는 게 보였다. 매일 이 짓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손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불어터질 것 같았다. 그때 마루 끝에서 낡은 죽장(竹杖)을 짚은 노인 하나가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이름은 남천호. 이곳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그야말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늙은이였다. 다른 노인들은 남천호를 그냥 '그 영감탱이'라 불렀다. 밥때가 되어도 나오지 않고, 시끄러운 무용담 자리에도 끼지 않고, 그냥 방 안에 처박혀 있다가 가끔 이렇게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게 전부였다. "도현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 어르신." "오늘 밥은 태우지 마라. 내가 배가 고프다." 그게 전부였다. 특별할 것 없는 노인의 잔소리. 나는 대충 "예예" 하고 넘겼다. 저 영감탱이는 밥 먹을 때 말고는 입도 잘 안 열었으니까, 저 정도 잔소리는 오히려 반가운 축이었다. 나는 그때는 몰랐다. 저 시시한 영감탱이가 앞으로 내 인생을 통째로 뒤엎어놓을 존재라는 걸. 그날 오후, 밥 짓기와 청소, 노인들 잔심부름을 대충 끝낸 나는 마당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여기는 노병들이 가끔 나와서 옛날 무예를 시늉만 내며 몸을 푸는 자리였다. 나는 나무 봉을 들고 그 시범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관학원에서 배우는 정식 검술은 딱딱하고 격식만 차린 껍데기 같았다. 초식 이름은 거창한데, 정작 실전에서 쓸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반면 이 늙은이들의 몸에서 나오는 건 다 달랐다. 다리를 반쯤 접었다가 확 펴는 힘, 손목을 비트는 각도 하나까지, 전부 실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져진 것들이었다. 나는 그걸 몰래 훔쳐 따라 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짜맞추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봉을 휙 내려치고, 발을 끌며 반보 물러서고, 다시 찔러 넣는—그런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하루의 짜증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누군가 내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기척이 없었다. 숨소리도, 발소리도.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는 봉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뭐지, 이 느낌은.' 돌아보기도 전에 알았다. 이건 그냥 노인네가 산책 나온 게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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