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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날 밤, 서지안이 다니는 회사 근처 지하 주차장에서 사건이 터졌다. 원래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리였다. 현우한테 문자 하나 온 게 전부였다. '오늘 대상자 야근한대. 늦게까지 그 근처 있어야 할 것 같아.' 딱 그 한 줄이었다. 용건도 없고, 부탁도 아니고, 그냥 상황 보고 같은 문자였다. 그런데 그 문자를 보고 뭔가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움직였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별생각 없이 그냥, 근처에 있고 싶었다. 딱히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하나 먹고, 현우 얼굴 한번 멀리서 보고, 별일 없으면 집에 가려고 했다. 그게 계획이었다면 계획이었다. ..친구가 위험한데 그냥 집에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스스로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탔다. 대학생 이도윤이, 아무 상관도 없는 회사 앞 지하 주차장까지 굳이 찾아온 이유를 누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안 정해놓은 채로. 지하 주차장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컵라면을 하나 골랐다. 뜨거운 물 붓고 3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회사 건물 입구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나무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으면서 계속 그쪽만 쳐다봤다. ..뭐 별일 없겠지. 그냥 야근하고 끝나겠지. 그때 창밖으로 검은 세단 한 대가 지하 주차장 입구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보였다. 뭔가 이상했다. 속도가 너무 조용했다. 보통 차가 그렇게 조용하게, 그렇게 부드럽게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소리를 삼키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건 좀 이상한데. 컵라면 뚜껑을 다시 덮었다. 손끝이 저절로 라면을 놓고 있었다. 지익- 건물 안쪽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여자의 짧은 비명 소리. 몸이 반응하는 데 생각은 필요 없었다. 컵라면을 그대로 내려놓고 뛰었다. 편의점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에서는 '아니야, 별거 아닐 거야' 하는 목소리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는데, 다리는 이미 지하 주차장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보다 훨씬 심했다. ..잘도 들어갔다, 나. 서지안으로 짐작되는 여자가 벽에 몰려 있었고, 앞쪽에 현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둘. 여자 하나, 남자 하나. 주차장 안은 형광등 몇 개가 깜빡거리는 정도로만 밝았고, 콘크리트 벽에 그림자들이 이상하게 길게 늘어져 있었다. 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중 한 대의 사이드미러가 이미 박살나 있는 게 보였다. 저게 방금 그 부딪히는 소리였구나. 여자는 몸을 잔뜩 낮춘 채로 발끝만 살짝 대고 서 있었는데, 자세가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았다. 무게 중심이 낮고,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빛도 이상했다. 사람 눈이 저렇게 반짝일 수가 있나. 남자는 오른팔 전체가 기계로 덮여 있었다. 팔에서 전선 같은 게 은은하게 빛났다. 저게 팔인지 무기인지 구분이 안 됐다. 관절 부분마다 파란빛이 미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낮게 웅-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현우 씨, 저 사람들이.." 서지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 이미 겁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현우가 짧게 대답했다. "물러나 있어요." "강현우, 오늘은 순순히 비켜라." 여자 쪽 목소리였다. 낮고 서늘했다. 웃음기 하나 없이 딱 잘라 말하는 투였는데, 그게 더 무서웠다. "설표.. 독랑." 현우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저것들이 바로 그건가. 반년 동안 현우한테 어깨너머로 들은 이름들이었다. 늘 '조심해야 할 것들' 목록에 항상 상단에 올라와 있던 이름. 실제로 마주할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그냥 뒤에서 문자만 받는 역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이렇게 빨리 깨질 줄은 몰랐지. 설표라는 여자가 먼저 움직였다. 휘익-!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눈으로 쫓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현우가 초고속 이동으로 겨우 맞받아쳤지만, 몸이 살짝 밀려났다. 발바닥이 바닥을 긁으면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독랑이라는 남자도 기계 팔을 뻗어 현우 옆구리를 가격했다. 퍼어억-! 현우 몸이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쿠웅-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지하 주차장 안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현우야!"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가려는데, 발이 안 움직였다.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면 안 되는데. 두 개의 마음이 동시에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대학생 이도윤이어야 했다. 여기서 나서면 반년 동안 숨겨온 게 다 끝난다. 근데 저기 있는 사람은 스물몇 해를 같이 자란 친구였다. ..이럴 때 계산이 왜 이렇게 빨리 되냐.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여기서 나서면 정체가 드러난다. 정체가 드러나면 지금까지 숨긴 게 다 헛수고가 된다. 근데 나서지 않으면, 저 벽에 부딪혀서 몸을 못 가누는 게 현우다. 스물몇 해를 같이 놀고 싸우고 라면 나눠 먹은 그 현우다. ..저울질할 시간에 이미 저울 부러졌다, 나. 설표가 벽에 부딪힌 현우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서지안이 뒤로 넘어졌다. 발이 걸려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놀란 눈으로 뒤로 손을 짚으며 물러나려 했다. 독랑의 기계 팔이 서지안을 향해 뻗어나가는 게 보였다. 팔 관절에서 파란빛이 순간적으로 확 밝아졌다. ..생각이란 걸 할 시간이 없었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서지안과 독랑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팔이 뻗어오는 순간, 손목을 비틀어 그 팔을 잡아챘다. 쾅-! 손바닥에서 뭔가 뜨거운 게 확 터져나갔다. 억지로 억지로 눌러 놨던 그 뜨거운 무언가. 반년 동안 참고 참았던 그게, 딱 그 순간에 한꺼번에 튀어나온 것 같았다. 독랑의 기계 팔이 순간 파직- 소리를 내며 튕겨나갔다. 그 힘에 밀려 독랑 자신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뒤로 밀려나면서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차장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확 퍼졌다. 쩌적- 발밑에서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느낌이 그대로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뭘 한 건지 감이 안 왔다. 숨이 턱 막혔다. ..아. 나 지금 뭘 한 거지. 주변 공기가 순간 진공처럼 느껴졌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형광등 깜빡이는 소리도, 차들 사이로 울리던 발소리도, 전부 다 사라진 것처럼 조용했다. 서지안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벽에 기대 앉아 있던 현우도, 얼굴이 하얗게 굳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놀람도 있고, 걱정도 있고, 그리고.. 뭔가 다른 것도 섞여 있었다. 설표와 독랑, 둘 다 동작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독랑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건 예상에 없던데." 목소리에 경계심이 실려 있었다. 방금까지 여유롭던 태도가 확 사라지고, 나를 다시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주차장 안에 있는 모든 시선이, 딱 나한테, 그것도 한꺼번에 꽂혔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이게 뭐 좋은 상황도 아닌데 다들 왜 이렇게 집중하고 계신지. 반년 동안 숨겨온 게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는구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발밑에 퍼진 균열을 내려다보면서, 손바닥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 뜨거운 감각을 느끼면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설표가 천천히 자세를 바꿨다. 발끝으로 서 있던 몸을 조금 세우면서, 나를 향해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너는 뭐지." 그 한마디가 지하 주차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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