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침향의 향이 방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연기는 가늘게 피어올라 천장 가까이에서 뭉그러지듯 흩어지고 있었다.
백현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숨소리만이 짧고 얕게 흔들리며 방 안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한도현은 무릎을 꿇은 채 스승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정갈하던 그 얼굴에, 이제는 깊은 주름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눈가의 살은 움푹 꺼져 마치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입술은 핏기 없이 하얗게 말라 있었고,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결마저 위태로웠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한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의 변화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불과 반 시진 전, 이 방에 들어설 때만 해도 사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책을 펼쳐 놓고 그를 맞아주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듯했다.
"사부님."
한도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백현도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그 동작조차도 힘겨워 보였다.
목뒤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괜찮지 않다."
노도사가 낮게 말했다.
"허나 그것이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도현은 스승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깊고 형형하던 눈빛에는, 이제 어떤 종류의 회한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오래도록 미뤄왔던 자가, 마침내 그것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한도현은 그 눈빛을 십오 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한 사부의 눈은 엄정하거나, 혹은 드물게 자애로웠다.
회한이라는 것은, 적어도 한도현이 아는 백현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다.
"도현아."
백현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삼 일 후에 문서 승격 시험(文書陞格試)이 있지."
한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부님. 오랜 시간 준비해온 시험입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지난 몇 달간의 밤들을 떠올렸다.
등잔불 아래 붉어진 눈으로 경전을 되짚고, 예법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하며 무릎이 부어오르던 나날이었다.
그 모든 것이 오늘, 이 순간을 향해 쌓여온 것이라 여겼었다.
"그 시험에서."
백현도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너는 떨어져야 한다."
한도현은 잠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떨어져야 한다니……'
그것은 지금까지 들어온 어떤 가르침과도 어긋나는 말이었다.
백현도는 늘 그에게 문리(文理)와 예법(禮法)과 술수(術數)를 세심히 가르쳤다.
문리란 경전의 뜻을 깨우쳐 세상의 이치를 읽어내는 학문이었다.
스승은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문리를 깨우친 자는 하늘과 땅의 결을 읽어, 말 한마디에도 천 갈래의 뜻을 담을 수 있다."
예법이란 조정의 격식을 몸으로 익혀 위계와 질서를 체현하는 것이었다.
절을 올리는 각도, 손을 모으는 순서, 걸음의 폭까지도 예법의 영역이었다.
"예를 잃은 자는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조정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술수란 하늘의 뜻을 짚어 다가올 일을 미리 살피는 재주였다.
별의 자리와 바람의 방향, 짐승의 움직임 하나까지도 술수를 익힌 자의 눈에는 예언이 되었다.
이 셋 중 둘 이상에서 상등을 받아야 관직 품계를 얻어 제천궁을 벗어나 황도 관서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십오 년 동안 한도현이 걸어온 길의 종착점이었다.
그 종착점을 눈앞에 두고, 사부는 지금 그것을 스스로 짓밟으라 말하고 있었다.
"사부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한도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부족하다는 뜻이십니까."
"아니다."
백현도가 단호하게 답했다.
"너는 이 궁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문리는 이미 상등을 넘어섰고, 예법 또한 결코 부족하지 않다. 술수는 아직 서투르나, 그것은 세월이 채워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떨어지라 하십니까."
한도현은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대한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저는 이 시험을 위해 삼 년을 준비했습니다. 다른 동문들이 잠든 시간에도 서책을 펼쳤고, 예법 동작 하나를 위해 무릎이 상하도록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리라 하십니까."
백현도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숨을 고르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한도현은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방 안의 침향 연기는 한 줄기도 흔들리지 않고 곧게 뻗어 오르고 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소리와 흐름이 이 순간을 위해 멈춰 선 것 같았다.
창밖에서도 새 우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정적이 오히려 한도현의 귓속을 울리게 했다.
"시험에서 상등을 받으면."
백현도가 다시 눈을 뜨며 말했다.
"너는 이름이 조정의 명부에 오르게 된다. 그 순간부터 너를 찾는 눈이 늘어날 것이다."
"그것이 어찌 나쁜 일이 되겠습니까."
한도현이 되물었다.
"관직에 오르는 것은 제자로서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었습니까. 사부님께서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의 아이라면 그렇다."
백현도의 눈빛이 깊어졌다.
"하지만 너는 보통의 아이가 아니다, 도현아."
그 말이 방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도현은 자신의 가슴팍을 무의식중에 손으로 짚었다.
그 옷깃 아래, 자주색 불꽃 모양의 표식이 새겨져 있는 자리였다.
어릴 적부터 사부의 지시로 늘 가려두었던, 남에게 보인 적 없는 흉터 같은 표식이었다.
목욕을 할 때조차 사부는 반드시 홀로 하도록 했었고, 동문들과 함께 지내는 처소에서도 그는 늘 옷을 겹겹이 껴입어 그 자리를 감췄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그저 사부의 유별난 결벽인 줄로만 알았다.
'자염인……'
방금 전 사부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재난의 별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날 때 나타난다는 그 문양.
그 표식을 지닌 자는 세상에 크나큰 재앙을 가져오거나, 혹은 그 재앙을 끝내는 자가 된다고 했다.
한도현은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자신의 몸속 어딘가에 무언가 낯선 것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명부에 이름이 오르면."
백현도가 말을 이었다.
"네 출신과 내력이 조사될 것이다. 조정의 관서는 그런 곳이다. 관직에 오르는 자는 그 뿌리까지 낱낱이 밝혀지게 마련이니라. 삼대의 호적과 태생지, 심지어는 태어난 날의 하늘까지도 살핀다."
한도현은 숨을 삼켰다.
"제 뿌리를 아는 것이 어찌 그토록 위험합니까."
"그것을 아는 자가 늘어날수록……"
백현도가 말을 멈췄다.
잠시 그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눈을 맞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아는 자가 늘어날수록, 너를 노리는 자도 늘어난다."
백현도는 대답을 마무리하지 않고, 대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걸음이 예전과 달리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발끝이 문지방에 걸릴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한도현은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스승의 손짓이 그를 멈춰 세웠다.
창밖으로는 한도성의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노도사는 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멀리 궁의 지붕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가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도현아."
그가 뒤돌지 않은 채 말했다.
"세상에는 알아서 좋은 것보다, 몰라서 편한 것이 더 많다."
"사부님."
"네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그 표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 이 순간 네가 그것을 완전히 알게 된다면, 너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한도현의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한다니……'
그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백현도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과장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 말을 뱉는 순간에도 노도사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라 할 만한 것이 스며 있었다.
한도현은 십오 년 동안 그 눈에서 두려움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심장을 더 세게 뛰게 만들었다.
"그러니 시험에서 낙방하여라."
백현도가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낙방한 자는 명부에 오르지 않는다. 오르지 않으면 조사되지 않는다. 조사되지 않으면 너는 그저 평범한 제천궁의 제자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노도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시험이 끝나는 날, 너는 이 한도성을 떠나야 한다."
한도현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십오 년을 살아온 이 궁을, 십오 년을 모셔온 스승을, 십오 년을 함께 자란 벗들을 떠나라는 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지난 세월의 조각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이 궁의 문턱을 넘던 다섯 살의 자신, 사부의 손에 이끌려 처소로 향하던 그 겨울밤의 냄새, 함께 자라며 서책을 다투듯 읽던 동문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나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한도현이 겨우 물었다.
"떠날 방향과 방법은 내가 정해 줄 것이다. 지금은 그것까지 알 필요가 없다."
"사부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까."
백현도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어떤 대답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방 안의 침향 연기가 그 순간만큼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 듯했다.
"나는……"
노도사가 말을 시작하다 멈췄다.
다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격렬했다.
그의 몸이 앞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기침 소리는 마치 오래된 문짝이 뜯겨 나가는 소리처럼 거칠고 습했다.
한도현이 황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사부님!"
백현도의 손이 한도현의 팔을 붙잡았다.
그 손은 이제 뼈만 남은 것처럼 가늘고 차가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나,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듯한 감촉이었다.
"들어라, 도현아."
그가 헐떡이며 말했다.
숨소리 사이사이로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협(俠)도, 의(義)도, 도(道)도…… 살아남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사부님, 무슨 말씀이신지……"
한도현은 스승의 몸을 부축한 채로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평생 그에게 협과 의와 도를 가르쳐온 사람이, 지금은 그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노도사의 눈이 한도현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눈빛 속에 슬픔과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한도현은 그 눈을 마주하며, 자신이 지금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느꼈다.
"네 어머니가."
백현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운무산 협곡에서……."
말이 거기서 멈췄다.
갑자기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 발소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규칙적으로 마루를 밟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백현도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굳었다.
방금까지의 노쇠하고 힘겨운 기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등이 곧게 펴지고, 손끝의 떨림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직 형형한 눈빛만이 문을 향해 있었다.
한도현은 그 변화의 속도에 놀라 숨을 삼켰다.
불과 숨 한 번 쉴 사이에, 사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아가 있었다.
"물러가라."
백현도가 짧게 명했다.
한도현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스승의 목소리에 담긴 단호함이 그를 막아 세웠다.
그는 절을 올리고 물러섰다.
문을 나서는 순간,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백현도는 다시 창밖의 붉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등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리고 문밖의 발소리는, 어느새 방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