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억만장자 복수극

2화

새벽 두 시, 나는 원룸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에는 예전에 붙여놓은 야광 별 스티커가 몇 개 남아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이미 빛을 잃어서 그냥 회색 점처럼 보였다. 서지아가 장난처럼 붙여준 것들이었다. 삼 년 전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녀는 천장이 너무 밋밋하다며 편의점에서 야광 스티커를 사 왔고, 나는 그때 그게 얼마짜리인지도 모른 채로 그냥 웃기만 했다. 지금은 그 별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걸 보면서, 나는 그것이 우리 관계의 정확한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했다. 창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두 번 울렸고, 나는 그 소리가 김도윤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서 다시 누웠다. 삼 년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밤이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습관이 있는 나였기에, 그 순간에도 삼 년을 삼백육십오 곱하기 삼, 대략 천구십오일이라는 숫자로 바꿔버렸는데, 그 계산이 나를 조금도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천구십오일. 하루에 커피 한 잔, 밥 세 끼, 통화 몇 번을 곱하면 얼마가 나올지도 계산할 수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멈췄다. 어떤 숫자는 계산이 끝나는 순간 오히려 더 아파진다는 걸, 나는 그 밤에 배웠다. 서지아가 처음 내 대리점에 왔던 날, 나는 그녀가 요금제를 따지며 던지던 질문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앞서 말했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와 선택 약정 할인 중 어느 게 더 유리하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삼 분 만에 계산기를 두드려 답을 내놓았다. 그녀는 그 계산을 듣고 웃었다. 그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고, 나는 그때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 마음에 든다는 감정은, 사실 내가 그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착각에서 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계산이 안 맞으면 떠난다는 걸, 나는 삼 년이 지나서야 배웠다. 대리점 일은 원래 그런 일이었다. 매달 실적표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본사에서 내려오는 판매 목표에 숫자로 쫓기고, 손님 앞에서는 웃어야 하고 뒤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 월말이 다가오면 팀장은 실적표를 벽에 붙여놓고 하위권 이름에 빨간 줄을 그었다. 나는 삼 년째 그 줄을 피해 다녔다. 나는 그 일에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순간에 지갑을 여는지, 어떤 말투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삼 년 동안 매장 바닥에 서서 배웠다. 노인에게는 큰 글씨로 된 요금표를 보여주고, 젊은 손님에게는 최신 기기 이야기부터 꺼내는 식으로, 나는 사람을 종류별로 나누고 그에 맞는 언어를 골라 썼다. 그 재능이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남의 지갑은 열 줄 알아도, 내 여자의 마음은 붙잡지 못했다는 아이러니가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서지아였다. 나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액정 불빛이 어두운 방 안에서 유독 하얗게 빛났고, 그 빛 속에 뜬 이름 세 글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받을까, 말까. 삼 년 동안 그녀의 전화는 받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받는 게 이상한 일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위치란 그렇게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받지 않았다. 벨이 다섯 번 울리고 끊겼다. 다시 울리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잊은 물건이 있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술에 취해 다시 생각해봤다는 말이었을까. 어쩌면 그냥 잘못 눌린 통화였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차분해지는 걸 느꼈는데, 그 차분함이 어디서 왔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억울함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다는 걸, 그날 처음 배웠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검색창에 '롤스로이스 렌트'를 쳤다. 왜 그런 단어를 쳤는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서지아와 김도윤이 있는 자리에, 내가 롤스로이스에서 내리는 그림. 그 그림 속에서 나는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고, 문을 열어주는 기사가 있었고, 서지아의 눈이 커지는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재생됐다. 그 그림이 얼마나 유치한지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그리는 만화 같은 상상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그 유치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사람은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 가장 유치한 상상에 매달리게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검색 결과는 예상보다 구체적이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슈퍼카 렌트 업체 세 곳이 상위에 떠 있었고, 롤스로이스 팬텀 일일 렌트비는 대략 백오십만 원에서 이백만 원 사이였다. 여기에 기사를 붙이면 추가로 삼십만 원, 보험료를 얹으면 또 얼마가 붙었다. 업체마다 조건이 조금씩 달랐는데, 한 곳은 24시간 기준이었고 다른 곳은 12시간 기준으로 계산해서 단가가 달라졌다. 나는 이 숫자들을 노트에 받아 적으며, 세 업체의 단가를 시간당으로 환산해 비교표를 만들었다. 삼 년 동안 요금제 비교표를 만들던 손이, 이번엔 슈퍼카 렌트비 비교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으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그 표를 다 만들고 나서, 이번엔 통장 잔고를 열었다. 칠백이십만 원. 삼 년간 조금씩 모아온 돈이었다. 결혼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둔 적금이 만기됐던 게 지난달이었고, 그 돈으로 서지아와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은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과 함께 왔다. 적금 만기 문자를 받았던 날, 나는 그녀에게 청첩장 문구까지 미리 생각해뒀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그때 웃으며 아직 프러포즈도 안 했으면서 청첩장 타령이냐고 했다. 그 웃음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지금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계획은 단순했다. 롤스로이스를 하루 빌리고, 기사를 붙이고, 비서 역할을 할 사람을 하나 고용해서, 억만장자 행세를 하며 서지아와 김도윤 앞에 나타나는 것. 그들이 나를 무시했던 만큼, 그 무시가 얼마나 값싼 판단이었는지를 눈앞에서 보여주고 사라지는 것. 그게 전부였다. 허무하다는 걸 알았다. 이 계획이 끝나도 서지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내 통장은 텅 비어 있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대리점에서 요금제를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허무함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미래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정산이었다. 계산은 늘 그런 식이었다. 장기적으로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손실을 막기 위해 무리한 지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매장에서도 가끔 그런 손님들을 봤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필요도 없는 최고가 요금제를 결제하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 내가 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노트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 렌트업체 세 곳의 연락처, 배우 캐스팅 사이트 링크, 그리고 예산표. 지출 항목마다 숫자를 적어넣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계산하는 법을 배워온 것처럼, 손끝이 오히려 차분했다. 렌트비 백팔십만 원, 기사 비용 삼십만 원, 보험료 이십만 원, 비서 역할 배우 섭외비는 넉넉잡아 오십만 원으로 잡았다. 여기에 의상비와 예비비를 더하면 대략 삼백만 원 안팎이 나왔다. 칠백이십만 원 중 절반도 안 되는 돈이었다. 나는 그 계산이 끝나자마자, 남는 돈으로 뭘 할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들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노트를 덮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대리점에 출근하지 않고 반차를 냈다. 팀장에게는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 거짓말이 그날 이후 내가 계속 반복하게 될 거짓말의 첫 번째였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노트에 적어둔 렌트업체 세 곳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심장이 뛰지 않았다. 오히려 매장에서 첫 손님을 맞이할 때보다 더 차분했다. "팬텀 하루 대여 문의드리려고요." 내 목소리는 놀랄 만큼 태연했다. 상담원은 대여 날짜와 사용 목적을 물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행사용'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는, 이것도 하나의 행사였으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노트를 다시 펼쳤다. 예산표 옆에 새로운 항목을 하나 추가했다. 날짜. 아직 비어 있는 그 칸을 나는 오래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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