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 비무의 결과는 사흘도 지나지 않아 청풍진 전역에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근기가 무너졌던 종주가 정기종 역사상 최초로 연체9중이라는 경지를 잠깐이나마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마을의 이 집 저 집을 거치면서 점점 부풀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기종 종주가 연체9중을 보였다더라"였던 게, 사흘 만에 "정기종 종주가 흑풍문 장로급을 일격에 눕혔다더라"까지 부풀려졌다는 걸 나중에 전해 듣고,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다.
그 시각, 흑풍문의 한 분원에서는 이 소문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기종의 그 백가 놈이 연체9중을 보였다는 게 정말입니까" 하고 흑풍문의 한 간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정기종 같은 소문파에서 그런 경지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소문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라고 다른 간부가 신중하게 답했다. "목격자들이 워낙 많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만."
"목격자가 많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처음 물었던 간부가 다시 반박했다. "군중이라는 게 원래 하나가 부풀리면 열이 따라 부풀리는 법입니다. 저는 이 소문의 8할은 허풍이라 봅니다."
"허풍이든 아니든, 청풍진에서 정기종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오르내린 건 근래 없던 일입니다" 라고 다른 간부가 짧게 반박했다. "무시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습니까."
이들의 중론은 결국 하나로 모였다. 소문 자체는 믿을 수 없지만, 정기종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청풍진 전역에 오르내리게 된 이상, 최소한의 확인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확인의 방법을 두고는 간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는데, 직접 사람을 보내 정탐하자는 쪽과, 소규모 문파의 자중지란이니 굳이 흑풍문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결론은 미봉책으로 났다. 정탐꾼 몇을 몰래 보내되, 그 이상의 개입은 문주의 허락이 있을 때까지 보류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론이 나기 전, 이미 정상호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청풍진에서 나름 유력한 인사로 통하던 정상호는, 아들 정재원이 강호진을 지지했다가 완전히 체면을 잃은 사건 이후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 서재에 앉아, 아들에게서 전해들은 비무 소식을 곱씹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서재 안의 촛불이 그의 그림자를 벽에 길게 늘어뜨렸고, 그는 그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끝으로 서안을 두드리고 있었다.
"...백운비라는 자가, 정말로 연체9중을 보였다면" 하고 그가 낮게 되뇌었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히 종주 자리 하나의 문제가 아니지."
정상호의 계산은 빠르게 돌아갔다. 정기종이라는 작은 문파가 갑자기 청풍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존재로 떠올랐지만, 동시에 그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만약 그 힘이 정말로 지속적인 것이라면 정기종에 계속 줄을 대는 게 이득일 것이었고, 만약 그것이 일시적인 요행에 불과했다면 오히려 정기종은 조만간 몰락할 후보에 불과했다. 그는 그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어느 쪽으로 기울지 가늠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나중에 그의 하인 하나가 뒷말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강호진이 패배했다는 걸, 그대로 흑풍문에 알려도 되는 걸까" 하고 정상호가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강호진이 정기종에서 완전히 밀려나기 전에, 그를 흑풍문 쪽으로 옮겨 심어두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계산이 그의 머릿속에서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그는 서안 위에 놓인 붓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편지를 쓰려던 참이었으나,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던 탓이었다. 물론 이 계산에는 아들 정재원의 앞날도 함께 걸려 있었다. 정재원이 강호진 쪽에 섰다가 이미 한 번 체면을 잃은 이상, 이번에는 확실한 쪽에 서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정父情이, 정상호의 냉정한 계산 아래 은근히 깔려 있었다.
한편, 나는 그런 외부의 계산들을 전혀 모르는 채로, 그저 눈앞의 현실과 씨름하고 있었다.
비무 이후 나흘째, 정기종의 곳간을 확인하러 간 나는 그 텅텅 빈 상태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곳간 문을 열었을 때 훅 끼쳐오는 냄새는 곡식 냄새가 아니라 먼지와 습기가 뒤섞인 냄새였고, 안쪽 선반에는 겨우 몇 자루의 잡곡과 소금 항아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종주라는 자리에 앉았다는 게 무슨 대단한 부와 권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순간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곡식이... 이게 전부입니까" 하고 내가 곳간 관리를 맡은 노제자에게 물었는데,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종주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재정이 그리 넉넉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비무 소동으로 몇몇 후원 가문이 지원을 줄이겠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후원을 줄이겠다는 게, 정확히 어느 가문입니까" 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노제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이름을 나열했다.
"장씨 가문과 두씨 가문이 우선 눈에 띄고, 나머지 몇 곳도 관망하는 분위기입니다. 강호진 공자가 지지를 얻지 못한 게 알려지면서, 그쪽 계열 후원가들이 손을 뗄 채비를 하는 듯합니다."
'...세계 최초 경지에 도달한 종주 취급이, 밥값도 안 되네' 하는 자조가 절로 들었다. 몸은 여전히 근기 붕괴의 후유증으로 아침마다 손끝이 저리고, 조금만 무리해도 어지러움이 몰려오는 상태였는데, 그 와중에 정기종 살림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게 새삼 억울했다. 종주 자리에 앉으면 적어도 밥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던 건지 어리석었던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근기 붕괴 진행률: 19% → 21%]
[자연 진행 속도: 하루 평균 0.3%]
시스템이 알려주는 이 숫자를 두고, 나는 매일 아침 계산을 하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되어 있었다. 사도위엄을 쓰지 않아도 근기는 자연스럽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그 속도라면 대략 100일 안팎에 완전 붕괴에 도달한다는 최초 경고가 여전히 유효했다. 다만 비무에서 한 번 사도위엄을 쓴 대가로 그 진행률이 이미 15퍼센트 가까이 앞당겨졌다는 게, 나에게는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간단한 계산식이었다. 하루 0.3퍼센트씩 자연 진행되는 상태에서, 사도위엄 한 번의 대가가 15퍼센트라면, 그건 무려 오십 일 치의 자연 진행분을 단번에 소모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건, 이 힘을 함부로 썼다가는 100일이 아니라 50일도 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컨대 나는 목숨을 아껴 써야 하는 처지였는데, 그 목숨을 아끼는 방법이 결국 사도위엄을 최대한 쓰지 않는 것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정기종의 상황이 그런 여유를 허락해줄지는 알 수 없었다. 곳간이 이렇게 비어 있는 이상, 나는 조만간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였다. 후원가들이 손을 떼기 시작하면, 정기종은 아무리 종주가 연체9중을 보였다는 소문이 돌아도, 결국 굶어서 무너질 판이었다.
강장로가 곳간 앞으로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그의 발소리는 유독 무겁게 들렸는데, 그게 단순히 나이 탓인지 마음의 무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호진은 어찌 되었습니까" 하고 내가 먼저 물었다. 비무 이후로 그를 직접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기 처소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조카가... 많이 흔들린 모양이다" 하고 강장로가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강호진이 그의 조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하는 강장로의 표정에서 복잡한 감정이 읽혔다. 조카에 대한 걱정과, 종주인 나에 대한 어려운 처신 사이에서 그가 얼마나 갈팡질팡하고 있을지가 짐작이 갔다.
"식사는 하고 있습니까" 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제자 하나가 매끼 문 앞에 상을 놓고 온다는데, 손도 대지 않는 날이 더 많다더군."
"내가 만나봐야 할까요" 하고 물었는데, 강장로는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다.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게다. 자네가 지금 찾아가면, 그 아이는 오히려 더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 게다."
그 대답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호진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비무 사건 전체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만들어낼지가 더 걱정이었다. 청풍진 마을 전체가 이 소식으로 들썩였다는 건, 결국 더 먼 곳까지 소문이 퍼질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 소문이 만약 흑풍문 같은 더 큰 세력의 귀에까지 닿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흑풍문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건, 그들이 청풍진 인근에서 손꼽히는 세력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장로님, 혹시 흑풍문과 관련해서 최근에 들은 소식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강장로가 나를 힐끗 보더니, 미간을 살짝 좁혔다.
"왜 그런 걸 묻나."
"그냥... 이번 비무 소문이 너무 빨리 퍼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마을 안에서만 도는 소문이 아니라, 어쩌면 더 멀리까지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강장로는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짓다가, 짧게 답했다.
"흑풍문 쪽 움직임은 아직 들은 게 없다. 하지만 자네 말대로,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 정기종이 갑자기 주목받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
곳간을 나서며, 나는 저 멀리 청풍진으로 통하는 길목을 바라봤다. 오후의 햇살이 흙길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그림자 사이로 마을 어귀에서 낯선 옷차림의 사람 몇이 정기종 쪽을 살피다가, 내 시선을 느끼자 서둘러 몸을 돌려 사라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걸친 옷차림은 청풍진 사람들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는데, 옷의 재질이며 색감이 이곳 방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정탐꾼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확신할 근거는 없었다.
그들이 누구를 위해 이곳을 살피고 있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곳간 문을 다시 닫는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근기 붕괴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그저 불안함 때문인지는, 나조차도 분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