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물장수 소년, 목숨을 걸다

1화

적야사막 한가운데, 지도에도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자그마한 오아시스에 월아객잔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 객잔의 유일한 주인이 나, 남소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 적었다. 나이는 열다섯이라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사실 정확히는 나도 몰랐다. 그냥 열다섯쯤이면 어른 취급도 안 받고 애 취급도 안 받는, 딱 애매한 나이라서 편하다는 이유로 골라둔 숫자였으니까. 이름이 소백이라 그런지 종종 손님들이 "북방의 그 소백산이랑 관련 있냐"고 묻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뇨, 저는 그냥 사막에서 소소하게 백은을 버는 사람입니다"라고 받아쳤고, 그 언어유희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었는데, 이게 다른 객잔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가진 유일하면서도 확실한 경쟁력이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물장사를 한다는 건, 요컨대 목숨줄을 쥐고 있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활용해서 여행객들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아왔다. 물론 그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우물이라고 해봤자 지름이 내 몸통 두 배쯤 되는 구멍에 밧줄 하나 걸어둔 수준이었고, 매일 두레박을 서른 번쯤 오르내려야 겨우 하루 장사할 물이 채워졌다. 팔뚝에 알이 배긴 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주인장, 물 한 병에 은전 세 개라니 이건 강도 아니오" 하고 매번 손님들이 항의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사막에서 죽는 것보다는 싼값이지 않습니까" 하고 웃으며 받아쳤고, 결국 대부분은 투덜대면서도 지갑을 열었다. 가끔 흥정이 격해지는 손님도 있어서, "옆 오아시스는 두 개던데" 하고 우기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럼 거기 가시죠, 여기서 삼십 리는 걸어야겠지만" 하고 지도를 그려주는 척하며 웃었다. 그러면 대부분 얼굴이 하얘져서는 은전을 셋 다 꺼내놓았다. 사막에서는 정직함보다 배짱이 밥값을 벌어준다는 걸, 나는 다섯 해 동안 몸으로 배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했다. 다섯 해 전 이 오아시스에 정착해서 손수 객잔을 세우고 우물을 판 이래로, 나는 매일 똑같은 하늘과 똑같은 모래언덕과 똑같은 손님들의 흥정을 상대해왔으니까. 아침엔 물을 긷고, 낮엔 흥정을 하고, 밤엔 모래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그 순환이, 처음 몇 달은 신선했지만 이제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 가끔은 하늘의 별자리 수를 세다가 잠들기도 했는데, 별자리는 매일 조금씩 위치가 바뀌었지만 내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좀 서글펐다면 서글펐다고 해야 할까. 가끔 붉은 갈기를 흩날리며 찾아오는 명마 한 마리, 그러니까 혈풍마 말왕이 우물가에 얼굴을 들이밀 때가 유일하게 반가운 변화였는데, 그놈은 다섯 해 전 죽을 만큼 갈증에 시달리던 걸 내가 물을 먹여 살려준 뒤로 은혜를 갚겠다는 듯 이렇게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오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던 놈이 지금은 사막을 통틀어 가장 빠르다는 명마로 소문이 났으니, 물 몇 바가지 값으로는 꽤 남는 장사였다. 콧김을 푸르릉 내뿜으며 내 어깨에 코를 부비는 그 감촉이, 사막 모래알처럼 거칠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짐승이 사람보다 의리 있다는 게 이 사막의 웃긴 진실이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계산대에 늘어져 낮잠이나 즐기고 있었는데, 뜨거운 오후의 열기가 나무 그늘 사이로 스며들면서 눈꺼풀이 저절로 무거워지던 참이었다. 파리 한 마리가 콧등에 앉았다가 도망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에 취해 있었는데, 갑자기 객잔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면서 붉은 망토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문짝이 경첩째로 흔들리는 소리에 나는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떴다. 검은 베일로 눈매를 가리고 입술만 드러낸 채, 화려한 붉은 망토를 두른 여인이 성큼성큼 들어섰는데, 그 걸음걸이만 봐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막의 도적단을 이끈다는 두목, 별명 화나비, 본명 홍아영이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허리에 찬 칼집이 짤그락 소리를 냈고, 부츠 굽이 나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경고음처럼 울렸다. "오랜만이네, 소백." 그녀가 베일 너머로도 웃음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나는 반가움보다는 귀찮음이 먼저 들었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오랜만이면 좀 조용히 오지, 문짝은 왜 부수고 들어와" 하고 투덜거렸지만, 아영은 개의치 않고 계산대 앞 의자에 털썩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저 여자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사막 어딜 가든 자기 집처럼 걸어 다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얻어내는, 딱 도적단 두목다운 성격.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도적질을 당할 뻔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물맛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확인하러 온 거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 후로 오 년째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 한 병 줘봐. 대신 이번엔 정보값으로 쳐줄 테니 공짜로."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이게 그냥 안부 인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아영이 정보를 들고 올 때는 항상 대가 없이 오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녀가 공짜라는 말을 꺼낼 때가 제일 무서웠다. 세상에 공짜만큼 비싼 게 없다는 걸 이 사막에서 오 년쯤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일단 물병을 하나 꺼내 그녀 앞에 놓으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경계심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정보값이라니, 이번엔 또 뭐야" 하고 물으며 팔짱을 꼈는데, 아영은 물병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신 뒤 입술을 훔치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평소와 다르게 무게가 있었다. "상고 보물이 각성했다는 소문, 들었어?" 그녀가 베일 사이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고, 나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놓칠 뻔했다. 상고 보물이라니. 그 이름은 사막을 떠도는 온갖 전설과 헛소문 속에서나 등장하던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실재한다는 걸 진지하게 믿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여행객들이 술에 취해 떠들던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던 존재였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취기에서 나온 허풍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아영의 표정, 아니 그녀의 눈빛만 보아도 이건 단순한 헛소문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들었으면 이런 표정으로 안 앉아 있겠지" 하고 대답하며,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여러 생각이 뒤엉키고 있었다. '상고 보물이라니, 그런 게 진짜로 존재했다는 거야?' 하는 의문과 함께, 왠지 모를 불길함이 목덜미를 스쳤다. 마치 오래전에 잊고 있던 빚을 갑자기 갚으라는 통지서를 받은 느낌이었다면 비슷할까. "사막 전역에 퍼지고 있어. 삼백 년 만에 봉인이 풀렸다더군." 아영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는데, 그 손짓 하나에도 도적단 두목다운 여유가 배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치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얄밉지 않고 신뢰가 갔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 특유의 확신 같은 거였을까. "그리고 하나 더. 이걸 손에 넣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저주 같은 전설이 함께 돌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웃으려다 말고 표정을 굳혔다. 저주라니, 그것도 목숨이 걸린 저주라니, 이건 그냥 흘려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손끝이 살짝 저릿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다시 물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야 그냥 사막에서 물이나 파는 애일 뿐이잖아." 목소리에서 애써 여유를 짜냈지만, 아영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하네." 그녀가 짧게 대답하며 베일 너머의 시선을 내게서 떼지 않았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곱씹을 새도 없이, 나는 시야 한켠에서 뭔가 낯선 빛이 깜빡이는 걸 느꼈다. 그건 마치 오래전에 잊고 있던 문이 다시 열리는 듯한 감각이었고,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걸 보니, 이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경고: 상고 보물의 각성이 감지되었습니다.] 그 문구가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나는 아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나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아영은 그런 내 반응을 보며 베일 너머로 눈썹을 슬쩍 올렸다. "뭐야, 왜 그래?" 그녀가 묻는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눈앞에 떠오른 저 문구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게 보이는 건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던져진 그 한 줄이 마치 예고편처럼 나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