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며칠 뒤, 정가 내부의 긴장은 다시 한번 표면 위로 떠올랐다.
가을 햇살이 정가의 기와지붕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던 아침이었다. 문수련생들의 연무장 쪽에서 이미 심상치 않은 소란이 일고 있었다. 발단은 사소했다. 문수련생들이 매년 치르는 학문 시험에서, 무수련생 몇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뒷말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답안이 이상하다더라, 누구와 누구의 글씨체가 닮았다더라. 하지만 그 뒷말은 삽시간에 몸집을 불려 정도욱과 정문석, 두 소년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불씨가 되었다.
정헌은 그 소식을 정운을 통해 전해 들었다.
"큰형님!"
정운이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얼굴이었다. 소맷자락이 펄럭였다.
"큰형님, 지금 대청에서 두 분이 서로 언성을 높이고 계세요! 도욱 형님이랑 문석이가요!"
"천천히 말해봐."
"자세히는 저도 몰라요.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다들 검집에 손을 올리고 있었어요."
정헌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검집에 손을 올렸다는 말 한마디가 그의 걸음을 재촉했다.
대청에 도착했을 때, 정도욱과 정문석은 이미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각자를 따르는 청년들이 팔짱을 낀 채 늘어서 있었다. 좌측에는 무수련생 출신의 청년들이, 우측에는 문수련생 출신의 청년들이 마치 두 개의 진영처럼 갈라져 서 있었다. 그 사이의 공기는 살얼음판이었다.
"부정행위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정도욱이 언성을 높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어깨가 들썩였고, 주먹은 이미 하얗게 쥐어져 있었다.
정문석은 냉소를 지으며 받아쳤다. 그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그 여유 속에 서늘한 날이 숨어 있었다.
"증거가 있으니 하는 말이다. 힘밖에 모르는 자들이 머리는 못 써서, 남의 것을 훔쳐 쓰나."
"뭐라고?"
정도욱의 손이 검집으로 향했다. 대청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좌측에 늘어선 무수련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검집으로 쏠렸다. 우측의 문수련생들 역시 은근히 몸을 낮추며 대비하는 기색이었다. 촛불조차 흔들리지 않는 정적, 그 정적이 오히려 폭풍 전야처럼 무거웠다.
"그만."
정헌의 목소리가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대청을 울렸다. 두 소년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쏠렸다. 그 순간 대청 안의 시간이 마치 정지한 듯했다.
"헌 형님···"
정도욱이 검집에서 손을 뗐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문석도 냉소를 거두며 예를 갖췄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각자 사정을 말해봐. 도욱, 먼저."
정도욱은 억울함을 담아 답했다.
"부정행위라는 증거 자체가 조작된 것입니다. 문석이 저희 쪽 사람 하나를 미리 매수해 함정을 판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답안이 그렇게까지 똑같을 리가 없습니다!"
"근거는."
정도욱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를 따르는 청년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해 있었다. 물러설 수 없다는 압박이 그를 짓눌렀다.
"···확실한 물증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정황상, 문석이 평소에도 저희 쪽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걸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정황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정헌은 고개를 돌려 정문석을 바라보았다. "네 말도 들어보자."
정문석은 침착하게 답했다. 그의 태도에는 이미 확신에 찬 자가 가지는 여유가 배어 있었다.
"시험지에서 부정행위의 흔적이 명백히 발견되었습니다. 무수련생 셋의 답안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했습니다. 이건 조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나 정교합니다."
"물증은 가져왔나."
정문석이 소매에서 답안지 사본을 꺼내 내밀었다. 종이가 서걱, 소리를 내며 펼쳐졌다. 정헌은 그것을 받아 천천히 살폈다.
세 장의 답안지,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하나의 손에서 나온 듯 겹쳤다. 오답조차 똑같았다. 심지어 글씨체에서 드러나는 필체의 습관 하나까지 흡사했다.
'확실히 동일하군.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답안지 위를 다시 한번 훑었다. 그리고 한 대목에서 멈췄다.
"이 답안지, 누가 채점하고 발견했지."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너 혼자."
정문석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헌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예."
정헌은 그 미묘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너 혼자 발견했다는 건, 조작의 여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지.' 그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대청 안의 모두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좌측도, 우측도, 숨소리조차 죽인 채였다.
"제삼자를 세워 다시 확인한다. 이만호 대집사에게 부탁드리지."
정도욱과 정문석 모두 예상치 못한 답에 잠시 멈칫했다. 정도욱은 안도의 빛을, 정문석은 미묘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만약 부정행위가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된 무수련생 셋은 반년간 훈련장 출입을 금한다. 반대로 조작이 드러나면, 문석 네가 같은 벌을 받는다."
정문석의 낯빛이 굳었다. 그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정도욱은 안도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어깨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정헌은 그런 그를 향해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도욱, 설령 조작이 밝혀지더라도 네 쪽 아이들이 정말 결백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도 직접 살필 것이다."
정도욱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안도감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었다.
"공정하게 처리하겠다. 양쪽 다 물러가라."
두 소년은 서로를 흘긋 노려보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을 따르던 청년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대청 안에는 발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이 남았다.
대청에 남은 정헌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는 판정을 받아들이지만, 속으로는 둘 다 승복하지 않았어.'
그는 손에 쥔 답안지 사본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종이 위의 글씨들이 마치 서로를 향해 조소를 던지는 듯했다. '정가의 뿌리는 이렇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구나. 이 작은 저택 하나조차 하나로 묶기 힘든데.'
***
그날 밤, 이만호가 정헌을 찾아왔다.
방 안의 촛불이 낮게 흔들렸다. 이만호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루 종일 답안지의 필적과 시험 당일의 좌석 배치, 감독관의 증언까지 낱낱이 조사한 흔적이었다.
"조사를 마쳤습니다. 답안지는··· 조작된 정황이 있습니다."
정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문석 쪽에서 꾸민 건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정황이 그렇습니다. 시험 당일 감독을 맡았던 자 중 하나가 문석 공자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자가 자리 배치를 슬쩍 바꾸었다는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진술한 자는 믿을 만한가."
"믿을 만합니다. 다만 문석 공자 본인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까지는 아직···"
정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촛불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이대로 발표하면 문석은 완전히 신뢰를 잃겠지. 문수련생들 사이에서의 입지도 무너질 테고. 하지만 도욱 쪽도 완전히 결백한 건 아니야. 정황상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어.'
"발표는 며칠 미룬다. 도욱 쪽 아이들도 조금 더 조사해."
"예."
이만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공자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어느 쪽이 진실이든, 정가의 젊은이들 사이에 이런 알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걱정스럽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이 뿌리가 얼마나 깊다고 보십니까."
정헌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뿌리가 깊다기보다는, 오래도록 방치되어 온 것이겠지. 지금이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균열이 될 거야."
이만호는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만호가 물러가고, 정헌은 홀로 창가에 섰다. 밤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들어 촛불을 가늘게 흔들었다.
'이 저택 안의 알력조차 이렇게 복잡한데, 삼 개월 뒤 영운문의 시험장에서는 대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가슴께의 문양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문양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 잠든 무언가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짐승처럼, 미세한 떨림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준비를 게을리해서도 안 돼.'
그는 오래도록 창가에 서서 어두운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연무장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정가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
다음 날 아침, 정명석이 다급한 얼굴로 그를 찾아왔다. 아직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시각이었다.
"공자님."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이 서려 있었다. 정헌은 그 기색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소식임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지."
"어젯밤 그 감시자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정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손끝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누구지."
정명석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신중함과 긴장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
"영운문에서 파견한 자입니다. 이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신성 소속의 무인으로 추정됩니다."
정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신성 소속이라니. 단순한 감시자가 아니라는 뜻이군.'
신성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서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것은 영운문 내에서도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단순한 문파의 파견자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감시와 견제의 손길이 뻗쳐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한가."
"복장과 움직임의 특징으로 미루어 볼 때, 거의 확실합니다. 다만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리고 어째서 정가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정헌은 창밖,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안개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 등줄기를 스쳤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이제는 결코 넉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조급하게 다가왔다.
정명석은 그런 정헌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물었다.
"공자님, 어찌하시겠습니까. 저희 쪽에서 먼저 접촉해볼까요."
정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섣불리 움직이면 오히려 저쪽의 의도를 자극할 뿐이야. 당분간은 지켜본다. 다만···"
그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자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해. 만약 위해를 가할 조짐이 보이면 즉시 알려."
"알겠습니다."
정명석이 물러간 뒤, 정헌은 홀로 방 안에 남았다. 새벽안개는 여전히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안개 너머 어딘가에서 신성 소속의 무인이 그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가슴의 문양을 매만졌다. 이번에는 손끝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조금 더 선명했다.
'대체 무엇을 보러 온 것일까. 나를··· 아니면 이 문양을.'
정가 안의 알력도, 영운문의 시험도, 그리고 정체 모를 감시자의 존재도, 모든 것이 하나로 얽혀들고 있었다. 정헌은 그 실타래의 끝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끝에서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새벽안개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