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박쥐야, 넌 괴물이 아니지?

2화

[이현우 시점] 근무 나흘째부터, 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발소리를 세는 버릇이었다. 하나, 둘, 셋.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는 군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구간이 있었는데, 그곳이 정확히 B-31 앞이었다. 그 문 앞을 지날 때는 저절로 숨을 죽이게 되었고, 문을 지나친 뒤에야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마치 물속에서 잠수하듯, 그 몇 걸음을 건너는 동안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박강일은 그 문 안에 뭐가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을 피했다. "신경 꺼. 너나 나나, 아는 게 적을수록 오래 붙어 있는다." 그는 늘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할 때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그 시선 회피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두려움인지 침묵의 습관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B동 소속이라는 걸 알면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동정 같기도 하고, 안도 같기도 한 그 표정.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얼굴들. 나는 그 얼굴들을 하나씩 마주치며 밥을 삼켰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엿새째 되던 날, 나는 B동 입구 근처에서 미화원 아주머니를 만났다.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대걸레를 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사람 목소리를, 그것도 이렇게 무심하고 태평한 목소리를 들은 게 얼마 만인지 몰라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오래 일하셨어요?" "한 오 년 됐지." 그녀가 대걸레를 세우며 나를 훑어봤다. 위아래로, 마치 물건을 감정하듯. "신입이지? B동?" "네." "그럼 알아둬. 여기 B동 담당은 오래 못 버텨."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 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여자, 저번에 있던 사람 말이야. 갑자기 그만뒀거든. 한마디도 없이." 위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요? 왜요?" "몰라, 나야. 어느 날 출근했더니 안 보이더라고. 사물함도 싹 비워져 있고."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몸짓이었지만, 그 눈빛만은 별일 아니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인수인계도 없이?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지. 근데 여기 사람들 다 그래. 뭐 하나 물어보면 입 꾹 다물고." 그녀가 대걸레 자루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도 처음엔 궁금했는데,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해. 오래 살려면 그래야 하거든." "오래 살려면요?" 내 질문에, 그녀는 잠깐 멈칫했다. 방금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오래 일하려면. 여긴 원래 그런 데니까."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대걸레를 밀며 멀어졌다. 콧노래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전임자가 있었다는 것도, 그 전임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도,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급하게 채용된 사람이었던 셈이다. 채용 절차가 이상하리만치 빨랐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서류 합격이 삼십 분 만에 나고,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고, 그날 오후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던 그 속도.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몇 가지 질문만 던졌다. 야간 근무 가능한가. 폐쇄된 공간에서 장시간 근무 가능한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 그 질문을 할 때 그의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웠던 것을, 나는 그제야 다시 떠올렸다. 혼자 사는 사람인지, 나를 찾을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던 눈빛이었다. 회사가 급했던 것이다. B동 자리를, 비어 있는 그 자리를, 하루라도 빨리 채워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무나가 아니라, 없어져도 소란이 크게 나지 않을 사람으로. 왜? 그 질문이 목 뒤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찔렀다. 삼키려 해도 삼켜지지 않고, 뱉으려 해도 뱉어지지 않는 가시. 그날 밤 순찰을 도는 내내, 나는 B-31 문 앞에서 평소보다 오래 서 있었다. 발소리를 세던 습관마저 잊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 — 숨소리 같기도 하고,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소리 같기도 한 그것 — 을 들으며, 나는 전임자를 떠올렸다. 이 문 너머의 무언가와 몇 달, 혹은 몇 년을 마주했을 그녀를.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복도를 걸었고, 나와 같은 문 앞에서 숨을 죽였으며, 나와 같은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는 걸까, 아니면 사라지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걸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고개를 젓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더 나아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며칠이 몇 달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해를 보지 못하는 근무였다. 퇴근할 때는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고, 눈을 붙이면 오후였다. 나는 규칙을 지켰다. 문을 열지 않았고, 안에서 나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두 시간마다 한 번, 복도를 왕복했다. 그것이 내 일이었고, 그 이상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가끔은 근무일지에 이상한 항목을 채워야 했다. '이상 무.' 그 세 글자를 매번 적으면서, 나는 정말 이상이 없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벽 너머에서 나는 소리는, 정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걸까. 박강일과 나는 교대 시간마다 짧게 마주쳤다. 그는 항상 눈 밑이 거뭇했고,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별일 없었지?" "네. 별일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짧은 문답만 주고받고 헤어졌다. 서로에게 더 캐물으면 안 된다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열이틀째 되던 밤, 나는 그 규칙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순찰 시간이었다. 새벽 세 시,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대였다. 형광등이 깜빡이는 지하 삼층 복도를 걸으며, 나는 여느 때처럼 B-31 앞을 지나치려 했다. 발소리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소리가, 평소보다 또렷했다. 긁는 소리가 아니었다. 두드리는 소리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마치 신호를 보내듯. 톡. 톡톡. 톡. 마치 모스 부호를 아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것 같은 리듬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규칙 두 번째, 안에서 나는 소리에 반응하지 말 것.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근무 첫날 받은 지침서에 굵은 글씨로 박혀 있던 그 문장을, 나는 몇 번이고 읽어 외우고 있었다. 알면서도, 발이 저절로 문 쪽으로 향했다.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웠다. 하나는 규칙을 지키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지금 걸어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속삭였다. 전임자의 얼굴 없는 그림자가, 그 두 번째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격리구역 문에는 작은 관찰창이 있었다. 두꺼운 강화유리로 된, 손바닥만 한 창. 그동안 나는 그 창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들여다보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매번 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창의 존재를 애써 외면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날 밤은, 두드리는 소리가 나를 창 앞으로 이끌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나는 관찰창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몇 초였을까, 몇 분이었을까.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다가올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그 리듬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갖다 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방, 텅 빈 공간. 형광등 불빛 한 줄기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가 바닥에 희미한 선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푸른 피부. 인간의 반도 안 되는 체구. 그리고 그것의 얼굴 한가운데, 붉게 빛나는 두 개의 눈. 그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세상이 순간적으로 멈춘 것 같았다. 시간이 늘어지고, 공기가 무거워지고, 내 숨소리만이 귓가에 크게 울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기 시작했다. 나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붉은 눈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것이 아닌, 그 무언가가. 박쥐를 닮은 귀가 쫑긋 섰다. 그 존재는 유리창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특이했다. 관절이 인간과는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것 같았다. 몸에 비해 긴 꼬리가 바닥을 스치며 따라왔다. 그리고 그것이, 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가락 끝에 있는 것은, 손톱이 아니라 얇고 날카로운 발톱이었다. 그 발톱이 유리에 닿는 순간, 미세하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내가 며칠 동안 들었던 그 소리와 똑같은 소리였다. 마치,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붉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그 눈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지능 같은 것을 읽었다. 짐승의 본능적인 시선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고 계산하는 시선이었다. 그것이 나를 더 소름 끼치게 했다. 그것의 입술 — 입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이 달싹거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무언가를 발음하고 있었다. 살, 려, 줘. 내가 그렇게 읽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 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나는 그것이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순간이었다. 복도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귀청을 찢을 듯한 경보음이 지하 삼층을 가득 채웠다. 나는 관찰창에서 튕겨 나가듯 물러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붉은 경광등이 복도를 왕복하며 벽을 물들였고, 사이렌 소리는 뇌를 뒤흔들 만큼 크게 울렸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몸이 그 명령조차 듣지 않았다.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며 울렸다. "전 근무자, 즉시 대기 위치로. 반복한다, 전 근무자, 즉시 대기 위치로." 내가 창을 들여다본 것을, 저들이 알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복도 저편에서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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