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박헌수의 저택은 이미 곡소리로 가득했다. 대문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향냄새와 곡소리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고, 마루 한복판에는 흰 천을 덮은 그의 시신이 눕혀져 있었는데, 그 곁에는 조카인 조인선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금박이 둘러진 화려한 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옷차림만 보면 상갓집이 아니라 잔칫집에 온 사람 같았으나, 그 눈물만큼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정교했다.
"탐정님, 숙부님께서 요즘 이상한 방울 소리를 들으신다 하시며 불안해하셨습니다. 이건 분명 저주입니다,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고서는……" 조인선은 손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한서령의 소맷자락에 매달리듯 말했고, 그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어딘가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마치 몇 번이고 연습한 대사를 읊는 것처럼 들렸다.
한서령은 그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시신 곁에 놓인 찻잔을 유심히 살폈는데, 그 초록빛 눈동자가 찻잔 밑바닥을 훑는 속도가 어딘가 사냥감을 노려보는 짐승의 그것과 닮아 있어서, 소연은 그 옆에서 잠시 숨을 죽였다. 소연은 방 안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으며 조용히 움직였고, 병풍 뒤에 놓인 화로며 벽에 걸린 부적 몇 장까지도 그저 지나치지 않고 눈에 담아두었다. 방 안 어디에도 진짜 저주의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 * *
한서령이 저녁 무렵 관아에 들를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소연은 홀로 저택 뒤편의 약방을 뒤졌다. 좁은 방 안에는 말린 약초 다발이 천장에서 늘어져 있었고, 그 아래 놓인 목함 안에는 최근에 지어간 약재의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소연은 그 종이를 하나씩 넘겨보다가, 유독 심장에 부담을 주는 약초 하나가 눈에 익숙한 조합으로 반복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손끝이 절로 멈췄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소연은 그 약재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며, 자신이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조합이라는 확신을 굳혔다. 게다가 박헌수의 찻잔 밑바닥에 남은 미세한 가루의 색과, 그 약재가 타는 냄새가 묘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소연은 코끝의 감각과 눈으로 하나씩 맞춰나갔다. 화로 근처에 남은 재를 손끝으로 살짝 문질러보니 그 냄새가 코를 찌르듯 올라왔는데, 그것은 향냄새도 아니었고 부적을 태우는 냄새도 아니었다. 종교적 저주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산된 독살이라는 확신이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다.
'조인선 아씨…… 당신이었군요.'
소연은 목함을 조심스레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으며,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범을 밝혀냈다는 뿌듯함보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한서령에게 전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한서령은 늘 자신에게 묻지 않은 것은 입 밖에 내지 말라 일러왔으니, 이번에도 그 말을 어긴 셈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것이다.
* * *
해가 저물고 한서령이 돌아왔을 때, 소연은 마당 한구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조심스레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저, 저는 아마도, 이 사건이 저주가 아니라 조인선 아씨가 벌인 독살인 듯합니다. 약재의 조합과 찻잔의……" 소연이 목함에서 확인한 약재의 이름과 화로에서 맡은 냄새, 그리고 찻잔 밑바닥의 가루 색까지 조목조목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한서령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것은 진범을 알게 된 안도가 아니라, 자신보다 먼저 답을 찾아낸 하인에 대한 불쾌함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세필로 그려낸 듯 단정한 그 얼굴에 서서히 그늘이 지는 것을, 소연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관아에서 알아본 것과 똑같군." 한서령이 낮게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소연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이미 말은 다 뱉어진 뒤였다.
"네가 먼저 짚어냈다고, 뭐가 달라지지." 한서령은 갑자기 소연의 팔을 세게 붙잡으며 다그쳤고, 소연은 그 힘에 놀라 숨을 삼켰다. 손끝이 파고드는 힘이 예사롭지 않아서, 소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지만 붙잡힌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네가 혼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는 건가." "저, 저는 그저……" 소연은 뭔가 해명하려 했으나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목구멍이 조여드는 것 같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온몸으로 번졌다.
"묻지 않은 건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라 했을 텐데." 한서령의 초록빛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시선은 처음 만난 날의 냉랭함보다 더 서늘하게 소연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팔목을 붙잡은 손끝에서 아릿한 통증이 번졌지만, 소연은 그보다도 지금 이 순간 무너지고 있는 무언가가 더 아프게 느껴졌다. 며칠 사이 조금씩 가까워졌다고 믿었던 거리가, 이 한마디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판단하지 마라." 한서령은 그렇게 말하며 소연의 팔을 놓았지만, 그 자리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소연은 그 손자국을 내려다보며, 며칠 동안 조금씩 쌓아왔던 온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을 느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방 밖에서는 여전히 조인선의 거짓 눈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소연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방금 전 한서령이 내던진, 얼음처럼 차가운 그 한마디였다. 소연은 고개를 숙인 채로 저택의 담장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노을이 붉게 번지는 하늘과, 자신의 손목에 남은 손자국의 붉음이 어딘가 닮아 있어서, 소연은 씁쓸한 웃음조차 지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소연은 붉게 남은 손목의 자국을 내려다보며, 처음으로 이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등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홀로 앉아, 그 자국이 사라질 때까지 잠들지 못한 채 뒤척였고, 창밖으로 스며드는 달빛만이 그 침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