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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같은 날 오후, 학생회실 앞. 한서린은 학생회실 앞 게시판에 축제 퀸 투표 안내문을 붙이고 있었는데, 압정을 하나씩 눌러 고정할 때마다 손끝에 힘을 주는 그 동작조차도 흐트러짐이 없어서, 지나가던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훔쳐보다가도 정작 시선이 마주치면 황급히 눈을 피하곤 했다. 서린은 청담고등학교 학생회장이었고, 곧게 뻗은 자세와 흐트러짐 없는 교복 깃, 서늘한 눈매로 유명한 아이였는데, 그 차가운 인상 때문에 남학생들은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고 여학생들은 은근한 동경과 경쟁심을 동시에 품었다. 교복 재킷 아래로 드러난 손목이 유난히 하얗다는 것도, 걸을 때마다 치마 밑단이 규칙적으로 흔들린다는 것도,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곤 했으나 서린 본인은 그런 시선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게시판 앞에서의 마지막 압정을 눌러 고정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SNS 팔로워는 이서윤에 근접한 십만 명대였고, 두 사람의 계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은근한 비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누가 먼저 십만을 넘길지, 누구의 릴스 조회수가 더 빨리 오르는지, 그런 숫자 하나하나가 학교 안에서는 은밀한 화젯거리였고, 그 중심에 서린과 서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축제 퀸이라니, 유치하지 않아?" 옆에 서 있던 부회장이 팔짱을 낀 채 안내문을 훑어보며 물었다. 서린은 마지막 압정을 꾹 눌러 고정한 뒤 손을 떼고서야 부회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 눈빛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유치해도 이겨야 재밌지." 서린의 목소리는 짧고 건조했지만, 그 말 속에는 억누르지 못한 승부욕이 선명하게 배어 있었고, 부회장은 그 대답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진짜 뭐든 이겨야 되는 성격이구나." "그게 이상해?" 서린이 되물었지만,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게시판에서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걸음걸이에는 이미 승부의 결과를 예감한 사람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 같은 시각, 급식실로 향하는 복도. 서윤은 급식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벽에 붙은 투표 안내문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안내문 옆에 붙은 서린의 프로필 사진 속 시선이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었는데, 사진 속에서도 서린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린 채 어딘가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 표정만으로도 서윤의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서윤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서린의 눈매가 어쩐지 자신을 향해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손끝으로 안내문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스스로도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왜 이렇게 오래 보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뒤에서 다가온 하은의 목소리에 놀라 어깨를 떨었다. "뭘 그렇게 봐?" 하은이 서윤의 시선을 따라가며 웃었다. 하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가볍고 명랑했지만, 서윤은 그 순간 자신의 표정이 어떻게 변해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괜히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별거 아냐." 서윤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지만, 방금 자신이 그 사진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하은은 서윤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안내문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는 짧게 중얼거렸다. "근데 한서린이랑 너, 요즘 SNS에서도 계속 붙던데. 무슨 대결 같긴 하다." "그냥 우연히 비슷한 거지." 서윤이 대답했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하은은 알아채지 못한 채 앞서 걸어갔고, 서윤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심장이 아직도 이상하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같은 시각, 급식실. 급식실 안은 점심시간의 소음으로 가득했고, 식판을 든 학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채워가는 사이, 수아는 서윤의 맞은편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서린이 오늘 올린 릴스 조회수가 벌써 오만 넘었어. 너보다 빠른데?" 수아는 화면을 서윤에게 들이밀며 말했고, 화면 속에는 서린이 교정 어딘가에서 찍은 짧은 영상이 떠 있었는데, 카메라를 향한 그 눈빛조차도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해서 서윤은 순간 시선을 피하고 싶어졌다. "빠르면 뭐, 결국 내가 이길 텐데." 서윤이 무심한 척 대답했지만, 그 순간 가슴 한쪽에서 이상한 조바심이 일렁였는데, 그것이 단순한 승부욕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서윤 자신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숟가락을 든 손끝이 살짝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서윤은 애써 국그릇으로 시선을 돌리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밥이나 먹어, 다 식겠다." "넌 왜 자꾸 서린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방어적이야?" 수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지만, 서윤은 대답 대신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고, 그 뜨거운 온도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만이 지금 이 순간 유일하게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수아는 더 캐묻지 않고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서윤의 머릿속에는 이미 서린의 릴스 속 표정이 오래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 방과 후, 청담고등학교 교문 앞. 서윤이 교문을 나서며 휴대폰을 확인하던 순간, 낯선 알림 하나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노을이 교문 너머로 낮게 깔리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서윤은 가방끈을 고쳐 메며 무심코 화면을 켰다가 그 이름을 발견하고서 걸음을 멈췄다. [한서린 : 이번 투표, 자신 있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도발적인 여유가 배어 있었고, 서윤은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화가 나야 정상인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교문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멀게 들려왔고, 서윤은 그 소음 속에서도 오직 화면 위의 문장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답장을 쓰려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왜 떨리는 거야, 화가 나서 그런 거지.' 서윤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지만, 화면 속 서린의 이름을 보는 눈빛은 좀처럼 차가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손끝이 미세하게 저릿해지는 감각마저 느껴졌다.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다시 꺼내 들고, 서윤은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서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그냥 대결이야. 그것뿐이야.' 그렇게 되뇌면서도 서윤은 자신의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서윤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 [이서윤 : 당연하지, 넌 좀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서윤은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교문 앞 벤치에 걸터앉아 화면만 들여다보는 서윤의 모습을 지나가던 하은이 발견하고 부르려 했지만, 서윤이 너무 깊이 몰두해 있어서 결국 인사도 없이 그냥 지나쳐버렸다. 바람이 한 차례 불어와 교복 치마 끝을 흔들고 지나갔지만, 서윤은 그 서늘한 감각조차 느끼지 못한 채 오직 휴대폰 화면 하나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몇 초 뒤, 화면 위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진동이 울렸다. 그 진동은 짧고 미약했지만, 서윤의 손끝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선명하게 전해졌고, 심장은 이미 그 진동보다 앞서 요란하게 뛰고 있었다. 서윤의 손끝이 화면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는데, 그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심장은 감당하기 힘든 속도로 뛰고 있었다. '이 정도로 긴장할 일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서윤은 화면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노을빛이 화면 위로 비껴 들어와 아직 열리지 않은 메시지 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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