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정략혼 상대는 용의 기사였다

2화

남부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 열흘을 꼬박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북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그 거리 자체가 낯선 세상으로의 이주처럼 느껴졌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덜컹거렸고, 그 진동은 고스란히 서연의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서연은 그 시간 동안 대부분을 마차 안에서 검을 손질하며 보냈다. 기름 먹인 천으로 검신을 문지르고, 날의 각도를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문지르는 일을 반복했다. 딱히 검이 무뎌질 이유가 없는데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곽태산이 마부석에서 종종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 아직도 그 검을 손에서 놓지 않는군요. 벌써 사흘째 같은 검을 닦고 계십니다." "손에서 놓으면 무뎌지니까요." 서연이 답했다. 시선은 검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미 반짝반짝합니다. 그 이상 닦으면 날이 상할 것 같은데요." "습관이에요." 서연이 짧게 답하고는 천을 접었다. "웅도에서 배운 게 그거였습니까? 손에서 놓지 않기?" 서연은 잠시 손을 멈췄다. 웅도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선 나무들, 처음 보는 색의 흙, 그 모든 것이 순간 사라지고 사 년 전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듯했다. *** 네 해 전, 서연은 열두 살의 나이로 웅도에 보내졌다. 북부의 검술 명가들이 자식을 단련시키는 섬이었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 바다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서연은 그 바다가 왜 얼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얼 틈도 없이 바람이 쉬지 않고 물살을 헤집기 때문이었다. 그 섬은 쉬는 법을 몰랐고, 그곳에 갇힌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북두 가문은 위태로운 처지였다. 인접한 영지들이 국경을 잠식하려 들었고, 곳곳에서 소규모 충돌이 벌어졌다. 아버지 태형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을 쥘 수 있는 손이 하나 더 필요하다." 그 말은 명령이었지 부탁이 아니었다. 서연은 열두 살의 나이로 그 말을 이해했다. 가문을 지킬 힘이 없으면, 지켜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그때는 그 말이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아버지가 딸에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애정의 형태였는지도 몰랐다. 웅도의 수련은 혹독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검을 휘둘렀고, 겨울에는 얼음물 속에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뼈까지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럴 때마다 스승은 태연하게 옆에서 자세를 지적했다. "허리가 굽었다. 다시." 통증이야 알아서 견디라는 뜻이었다. 동기들 중 절반은 첫해를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어느 날 아침엔 침상 하나가 비어 있고, 다음 날엔 두 개가 비어 있었다. 아무도 작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사라졌다. 서연은 남았다. 이유는 단순했다—돌아갈 곳이 사라지는 것이 검을 놓는 것보다 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검을 놓으면 통증은 사라지겠지만, 대신 북두라는 이름을 지킬 자격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이 얼음물보다 더 차가웠다. 사 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서연은 섬을 떠날 자격을 얻었다. 마지막 시험은 스승과의 대검이었고, 서연은 세 번 베였고 한 번 이겼다. 그 한 번이 통과의 조건이었다. 스승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는 강해졌다. 하지만 그 힘을 어디에 쓸지는 아직 모르는구나." 서연은 그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는 그저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남부로 가는 길 위에서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사 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그 질문의 무게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점이었다. *** "아가씨?" 곽태산이 다시 불렀다. 서연이 생각에서 깨어났다. "미안해요. 잠시 딴생각을 했어요." "안색이 어두워지시던데요. 좋지 않은 기억입니까?" "딱히 나쁜 기억은 아니에요. 그냥… 오래된 기억이죠." 곽태산이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물었다. "그 왕자에 대한 생각입니까?"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자신도 자신의 대답이 우스웠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요. 소문이 워낙 나쁘니까." "어떤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방탕하다, 성격이 괴팍하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한다… 뭐 그런 것들요." 서연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열거했다. "듣기로는 시종을 여럿 내쳤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룡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를 두고 말이 많더군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를요?" 서연이 물었다. 검을 닦던 손이 완전히 멈췄다. "이름이 하린 왕자비였죠. 몇 해 전 병으로 돌아가셨다는데, 그 후로 왕자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밝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고들 합디다. 지금과는 정반대로." "완전히 딴사람이라니, 어느 정도로요?" "거기까진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 무렵부터 궁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어졌고, 나올 때마다 사건이 하나씩 붙어 다녔다는 소문뿐입니다." 서연은 그 말에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방탕한 왕자라는 소문 뒤에 그런 사연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소문이란 원래 앞뒤 없이 굴러다니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번만은 그 뒤에 뭔가가 눌려 있는 느낌이었다. '가문을 위해 가는 길이다.' 서연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되풀이했다. '누구를 만나든, 그저 임무일 뿐이다.' 그렇게 되뇌면서도 손끝은 검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임무일 뿐이라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서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목표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단순히 가문을 지키기 위한 혼인이 아니라, 그 왕자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인물인지—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승의 마지막 질문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그 힘을 어디에 쓸지는 아직 모르는구나. 어쩌면 이 여정이 그 답의 일부가 될지도 몰랐다. 마차는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퀴 밑에서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곽태산이 말을 몰아세우며 낮게 중얼거렸다. "저 앞이 국경 초소일 겁니다. 이제 정말 남부군요." 서연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국경을 알리는 돌기둥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부의 국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너머에, 소문으로만 들어온 그 왕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