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밤, 그녀의 가정부

4화

그 주 내내 나는 매일 8시 정각에 도착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지만 이제는 노선도 외우고, 세제 라벨도 구분할 줄 알게 됐다. 처음엔 대리석과 원목을 구분하지 못해 아무 세정제나 뿌렸다가 윤지수의 눈치를 살피며 진땀을 뺐지만, 이제는 다용도실 선반에 붙여둔 작은 포스트잇들, '대리석 금지', '원목만', '스테인리스는 이걸로' 같은 내 나름의 표시가 하나둘 늘어갔다. 그 작은 종이 쪼가리들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뿌듯했다. 마치 이 집의 어딘가에 내 자리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요일 밤, 야근이 길어진다며 윤지수가 문자를 보냈다. 저녁 준비는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청소를 마치고도 집에 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시계는 아홉 시를 지나 열 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텔레비전도 켜지 않은 거실은 조용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냉장고가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채웠다. 나는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현관을 몇 번이나 돌아봤는지 모른다. 열 시가 넘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빅, 도어락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구두를 벗다가 휘청거렸다. 한쪽 신발이 반쯤 벗겨진 채로 몸이 기우는 걸 본 순간,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그녀가 짧게 대답했지만 술 냄새가 옅게 났고, 발걸음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또각또각 정확한 박자로 걷던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그 리듬이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소파까지 부축했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팔이 내 어깨에 걸쳐졌고, 겨울바람처럼 시린 향이 코끝을 스쳤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쿵, 쿵, 쿵. 부축이라는 명목으로 이렇게 가까이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숨을 조심스럽게 골라야 했다. 소파에 그녀를 앉히고 나서야 나는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었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셔츠 목 단추가 두 개나 풀려 있었고, 평소엔 단정하게 넘긴 앞머리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그 흐트러진 모습이 낯설어서,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물 가져다드릴까요?"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소파에 몸을 묻은 채 눈을 감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컵을 꺼내고 정수기 물을 받았다. 물이 컵에 차오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손끝이 떨려서 물을 조금 흘렸는지, 컵 밖으로 물방울이 몇 개 흘러내렸다. 나는 그걸 옷소매로 닦아내고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반쯤 마시다가 나를 올려다봤다. 눈동자가 평소보다 조금 풀려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시선은 여전히 나를 꼼꼼히 살피는 것 같았다. "왜 아직 안 갔어요." "기다리라고 하셨잖아요." 나는 대답하며 시선을 피했다. 괜히 바닥의 카펫 무늬를 세는 척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뗐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방 안을 채웠고, 나는 괜히 손끝이 떨려 컵을 만지작거렸다. 시계 초침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적이 없었다. "들어가서 자요."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손님방에서." 나는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집에 갈게요." "이 시간에 버스도 없어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됐어. 그냥 자고 가요." 그 말투가 명령 같았지만, 그 안에 다정함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채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차갑고 무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짧게 끊어 말하는 문장들 사이사이에 배려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이었다.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방은 내 방보다 몇 배나 넓었고, 침대는 그날 밤 그녀와 함께 있었던 그 방처럼 부드러웠다. 이불에서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은은하게 났고, 창문 커튼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와 방 안을 어슴푸레하게 밝혔다. 잠들기 전, 나는 벽 너머 그녀의 방에서 나는 작은 기침 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 소리가 마치 이 집이 아주 조용하지만은 않다는 걸, 나 혼자만 이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손님방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갔다. 식탁 위에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다. 안에는 새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흰 바탕에 깔끔한 로고가 박힌, 보기만 해도 튼튼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내가 신던 신발이 밑창이 다 닳아 빗물이 새는 걸 언제 봤는지, 정확히 내 발 크기였다. 나는 신발을 손에 들고 몇 번이나 뒤집어 보며 사이즈 표를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이거……" 내가 놀라서 묻자 그녀는 서류를 챙기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출퇴근하는 데 필요하니까. 업무용이에요." 업무용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로 다정하게 들려서,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녀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관으로 향하면서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나는 그 뒷모습을 향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신발 상자를 끌어안고 서 있었다. 그날 오후, 서은이 예고 없이 집에 들렀다. 딸랑,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나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어머, 여기서 계속 자요?" "아, 아니에요. 어제만……" 나는 서둘러 해명했지만 서은은 재밌다는 듯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녀는 늘 그렇듯 향수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마치 이 집이 자기 안방인 것처럼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수 씨가 사람 집에 재우는 거 처음 봤는데."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조심해요, 하늘 씨." "……무슨 뜻이에요?" 나는 걸레를 쥔 손을 멈추고 물었다. 서은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 뒤에 뭔가 감춰진 경고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괜히 걸레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침묵이 이어질수록 방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무게를 견디려 애써 청소기 스위치를 켜고 소음 속으로 숨었다. 청소기 소리가 요란하게 방 안을 채웠지만, 서은의 시선은 여전히 내 뒷모습에 머물러 있는 게 느껴졌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 시선이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집요해서, 나는 괜히 청소기 헤드를 이미 깨끗한 자리에 몇 번이나 더 밀었다. 이 관계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나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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