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살 방법을 계산하고 있었다. 낙하산은 없었다. 비행선 격추 직후 폭발한 갑판에서 튕겨나온 나는 지금 시속 몇 킬로로 떨어지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냥 빨랐다. 미친 듯이 빨랐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나는 알았다.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인다. 손을 뻗어 뭐라도 잡으려 했다. 잡히는 건 바람뿐이었다.
"연우야!"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바람 소리만 귓가를 찢었다. 시야 한쪽에는 불타는 비행선 잔해가, 반대쪽에는 점점 커지는 검은 구멍이 보였다. 저 아래로 검은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도에도 없는 균열, 토벌대가 조사하러 온 그 섬 한가운데 뚫려 있던 그 구멍이었다.
와, 이건 진짜 죽는구나.
이상하게 그 순간에 든 생각은 딱 그거였다. 죽기 직전에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더니 그런 것도 없었다. 그냥 '아 죽는구나' 하고 아주 심플한 결론만 하나 떨어졌다. 옆구리로 뭔가 스치는 감각이 났다. 갑판 파편이었는지 뭔지 알 수도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그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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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등이 배기는 감각이었다. 돌바닥이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돌바닥.
죽은 게 아니었다.
죽었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지. 죽은 사람이 등짐 진 것마냥 시큰거리는 통증을 느낄 리가 없잖아. 그 생각이 들자 오히려 안심이 됐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몸을 일으키려다 옆구리에서 뜨끈한 통증이 올라와서 다시 주저앉았다. 갈비뼈 몇 개는 확실히 나갔다. 팔도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부러지진 않은 것 같았다. 모험가로 몇 년을 굴러먹었더니 이 정도 낙상은 죽지만 않으면 몸이 알아서 버텨준다.
한참을 그렇게 숨을 몰아쉬었다. 폐 한쪽이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침을 삼키니 피 맛이 났다. 입술을 깨물었던 모양이었다. 손끝을 움직여봤다. 움직였다. 발가락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주위를 둘러봤다. 천장이 없었다. 아니, 있긴 한데 너무 높아서 안 보였다. 대신 그 자리에 은은한 청록빛 광석들이 별처럼 박혀 있었다. 지하다. 이건 확실히 지하였다. 광석 빛이 어찌나 은근한지, 마치 밤하늘을 실내에 옮겨놓은 것 같았다. 낭만적이라고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바닥은 매끄러운 돌이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있었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는 소리다.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만든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연우야! 박용재! 한미래!"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 돌아오는 건 내 목소리의 메아리뿐이었다. 메아리가 몇 번이나 되돌아왔다가 사라졌다. 그 소리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정적이었다. 이렇게 조용한 곳은 처음이었다. 게임 로딩 화면보다 더 정적이었다.
그때 어제, 아니 몇 시간 전인지도 모를 그 순간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토벌 임무 브리핑, 서연우의 웃는 얼굴, 박용재 특유의 무뚝뚝한 격려, 한미래의 실없는 농담.
브리핑 룸에서 연우는 지도를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균열 위치를 짚으며 웃었다. "이번엔 진짜 별거 없을 것 같아. 그냥 조사만 하고 오면 돼." 그 말을 하는 연우의 눈이 얼마나 편안했는지. 박용재는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라고 짧게 던졌다. 그놈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걱정을 걱정처럼 안 하는 척 하면서 던졌다. 한미래는 저 뒤에서 감자칩을 씹으며 "죽으면 내 캐릭터 아이템 다 나 줘"라는 헛소리를 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다 같이 웃었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저 섬 조사를 하러 갔을 뿐이었다.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비행선이 흔들렸고, 뭔가에 맞았고, 갑판이 갈라졌고, 연우가 내 손을 놓쳤다.
손을 놓친 게 아니라, 내가 놓친 거였나.
그 생각이 들자 속이 뒤집혔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나는 분명히 연우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 다섯 개가 확실하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갑판이 갈라지는 순간, 몸이 반대쪽으로 튕겨나가면서 그 손이 빠져나갔다. 아니, 내가 놓은 건지 연우가 놓친 건지도 구분이 안 됐다. 다 몇 초 사이의 일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원망할 대상도 못 찾겠다는 게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연우야."
이번엔 소리도 안 나왔다. 그냥 입만 벌렸다. 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를, 몇 시간 전까지 손을 잡고 있던 여자를 잃어버렸다.
주황색 수련자 딱지 하나 달고 다니는 나 강지훈이, 정작 위기에서 아무것도 못 했다.
수련자 등급이 뭐 대단한 벼슬도 아니지만, 그래도 몇 년을 던전에서 굴러먹은 놈이 여자친구 손 하나 못 지켰다는 게 스스로 용납이 안 됐다. 게임이었으면 리트라이라도 했을 텐데. 여긴 그런 거 없다. 세이브 포인트도, 되돌리기 버튼도 없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통증도 잊고, 시간도 잊고. 이 넓고 낯선 지하 공간 어딘가에 연우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반복해서 되뇌었다. 살아 있을 거야. 살아 있을 거야. 힐러니까, 강하니까, 살아 있을 거야.
연우는 우리 파티에서 제일 침착한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패닉하지 않았다. 몸이 다쳤어도 상황 판단은 정확하게 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처럼 정신을 차리고, 다친 몸을 살피며 주변을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믿어야만 했다.
박용재와 한미래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둘은 체력이 좋으니 이 정도 낙상쯤은 별거 아닐 거다. 다 같이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이 지하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뭔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돌기둥 뒤편에서, 붉은 눈동자 두 개가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인간의 눈은 저렇게 빛나지 않는다.
숨을 멈췄다. 그 눈동자는 미동도 없었다. 깜빡이지도 않았다. 그냥 나를 관찰하듯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짐작이 안 됐다. 어둠 속에 파묻혀서 몸통이 안 보였다. 눈동자 두 개만,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갈비뼈에서 다시 통증이 올라와 그 자세로 멈췄다. 이 상태로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저게 뭔지도 모르는데 도망칠 방향을 어떻게 정한단 말인가.
붉은 눈동자가 아주 조금, 앞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