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매가 등을 가르는 소리는 짧고 둔탁했으나, 그 여운은 오래도록 도윤의 몸 안에 남았다. 채찍 끝이 살가죽을 찢을 때마다 뼈마디까지 진동이 퍼졌고, 그 진동은 소리보다 늦게 도착해 몸속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울렸다.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그만둔 지 오래였다. 처음 이 저택에 왔을 무렵에는 매 한 번을 맞을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세었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프다는 사실만 남고 횟수는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었다.
태준의 손이 지쳐 멈출 때까지 도윤은 그저 흙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그 침묵은 굴복이 아니라 견뎌내는 자의 침묵이었다. 흙 알갱이가 입술 사이로 들어와 씹혔지만 뱉어낼 기운조차 아까웠다. 태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다가 마침내 헐떡임으로 바뀌었을 때, 도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지친다는 것은, 언젠가는 이 매질도 끝난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디서 그런 눈으로 사람을 봐." 태준이 매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내뱉었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번들거렸다. "네놈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종놈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낯짝만 봐도 짜증이 나."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태준은 발끝으로 도윤의 옆구리를 툭 건드린 뒤, 흥, 하는 콧소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도윤은 비로소 어깨를 조금 늘어뜨렸다.
아버지가 도박으로 진 빚 때문에 이 집에 팔려 온 것이 열두 살 때의 일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소리보다 냄새로 먼저 떠올랐다. 아버지의 몸에서 났던 싸구려 술 냄새와, 저택 문 앞에서 맡았던 낯선 향유 냄새. 그 두 냄새가 뒤섞이는 순간 도윤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꺾여버렸다. 그날 이후로 도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얼굴도 흐릿한 원망의 대상으로만 남았고, 어머니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리워할 겨를도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 해도 늘 흐릿한 윤곽만 남았는데, 그것이 슬픈 일인지조차 이제는 잘 알지 못했다.
여섯 해 동안 도윤은 이 저택에서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다뤄졌다. 밥그릇을 나르고 말을 씻기고, 때로는 태준의 화풀이를 받아내는 것—그것이 그의 하루였다. 아침이면 마구간의 말들에게 물을 먹이고, 낮이면 부엌에서 나오는 그릇들을 씻고, 밤이면 태준이 부르는 소리에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그 사이사이 남는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몸이 자라는 동안에도 마음이 함께 자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도윤은 그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여섯 해를 흘려보냈다.
태준이 자리를 뜨자 도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 뒤편으로 향했다. 등에서 흐르는 피가 옷자락에 스며들어 축축한 감각이 걸음마다 따라붙었지만, 그는 그 감각에 이미 익숙했다. 부엌 뒤편에는 오래전 깨진 손거울 하나가 나무 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얹혀 있었는데, 반쪼가리만 남은 유리는 얼굴의 절반만을 비출 뿐이었다. 그 거울은 원래 안채에서 쓰던 것이었으나 언젠가 금이 가 버려진 뒤로, 도윤이 몰래 주워다 이곳에 숨겨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도윤은 그 앞에 쭈그려 앉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은 광대뼈가 도드라진 야윈 얼굴이었고, 눈 밑에는 그늘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으며, 입술 가장자리에는 방금 맞은 상처에서 흐른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된 양피지처럼 색이 죽어 있어서, 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손끝에 닿는 살갗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뜨거운 것보다는, 이미 식어버린 것이 견디기 쉬웠으니까.
*이게 나야.*
짧고 건조한 자각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도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슬퍼하지도 않았다. 슬픔이라는 감정도 반복되면 무뎌지는 법이었고, 도윤은 이미 그 무뎌짐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 사이 그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손끝에서 미세하게 맴도는 열기, 몸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낯선 충동—그것이 무엇인지 도윤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백작 부인의 방 근처를 서성이던 그 밤, 그녀의 눈빛이 자신을 향해 머무르던 순간을 떠올리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밤, 그녀는 복도 끝에서 뒤를 돌아보았고, 그 시선이 스쳐 지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숨 한 번 들이쉴 정도였을 뿐인데도, 도윤은 그 짧은 순간이 마치 오래도록 자신을 붙잡아 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도윤은 아직 구분하지 못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도윤은 낮게 중얼거렸다.
*저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몰라.*
그러나 알고 싶다는 마음이 이미 생겨나 있었다. 그것이 위험한 마음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도윤아."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하은이었다. 여종 미경의 딸로, 도윤과 같은 나이에 같은 처지로 자라온 소녀였다. 어릴 적부터 함께 부엌 바닥을 닦고 함께 매를 피해 숨던 사이였으므로, 하은은 도윤의 유일한 동무이자 이 집에서 유일하게 그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존재였다. 그녀는 물동이를 옆에 내려놓고 도윤의 등에 난 상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 맞았구나." 하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소매 끝으로 도윤의 등을 살짝 눌러보려다, 그의 몸이 움찔하는 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 "이러다 죽겠어. 우리, 정말 여기서 도망쳐야 해."
도윤은 아무 말 없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망친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도망쳐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산 너머 마을에는 이미 이 저택의 손길이 뻗어 있었고, 도망친 종을 잡아 오는 자에게는 후한 삯이 걸려 있었다. 갈 곳도, 지켜줄 이도 없는 세상에서 두 사람의 목숨은 개보다도 값이 없었다.
"어디로." 도윤이 짧게 되물었다. 하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그 질문의 답을 알지 못했으므로.
"도망치지 않을 거야." 도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낮았으나 이상하게도 흔들림이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여기를 바꿀 거야."
하은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걱정과 의아함이 뒤섞여 있었는데, 도윤의 얼굴에 스친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평소의 도윤이라면 그저 침묵으로 답했을 것을, 오늘의 도윤은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려는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바꾼다니, 무슨 소리야." 하은이 다시 물었으나, 도윤은 대답 대신 손끝으로 거울의 갈라진 틈을 매만졌다.
그때 부엌 안쪽에서 미경이 다급하게 들어오며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다급하게 펄럭였고, 숨소리에는 평소보다 다급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큰일 났어. 오늘 밤 성에서 무도회가 열린다는구나. 왕실에서 백작가에도 초청장이 왔대. 마님이 채비하시느라 온 저택이 뒤집혔어." 미경은 손에 든 헝겊을 정신없이 접었다 펴며 말을 이었다. "너희 둘도 얼른 손 씻고 안채로 가. 오늘 밤은 손이 모자란다니까."
하은은 놀란 얼굴로 물동이를 다시 집어 들었으나, 도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백작 부인의 눈빛과 무도회라는 낱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겹쳐 떠올랐던 것이다. 오늘 밤, 저택 전체가 그녀를 위해 움직인다면—
도윤의 손끝이 거울의 갈라진 틈을 천천히 훑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나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떤 결심이, 조용히 그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윤아, 안 가?" 하은이 부르는 소리에 도윤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등의 상처가 옷자락에 닿으며 다시 한번 뜨거운 통증을 일으켰지만, 그는 그 통증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 저택에서의 자신의 자리가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이유도 알 수 없이 그의 가슴 한복판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엌 문을 나서는 도윤의 뒷모습을 하은이 잠시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야윈 어깨였으나, 그 걸음걸이에는 이전에 없던 무언가가 실려 있었다. 하은은 그것이 무엇인지 미처 알지 못한 채, 그저 물동이를 고쳐 쥐고 그 뒤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