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정신이 든 순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청림교도소 3동 독방, 늘 그렇듯 곰팡내 나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는데, 문제는 몸이었다. 손끝이 저릿하다 못해 아렸고,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는데 그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뭔가 안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라서였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몸속에서 초침이 돌아가는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숨을 죽였고, 갈비뼈 안쪽에서 뭔가가 재배열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착각인지 아닌지 구분할 여유조차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에서 뭔가 낯선 게 부풀었다 꺼졌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내 폐가 이렇게 크기가 변했나, 아니면 내가 이상해진 건가. 판단이 안 됐다. 매트리스에 손바닥을 짚었는데 그 감촉조차 이상했다. 늘 만지던 얇은 스펀지의 감촉이 아니라 뭔가 겹겹이 쌓인 이물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손을 확인하기도 전에 옆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하린, 너도 이래?" 옆 침상에서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으면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시했을 텐데, 지금은 그 목소리조차 어딘가 떨리고 있어서 나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뭐가." 짧게 되물었지만 속으로는 씨발, 얘도 이상하구나, 라는 확신이 먼저 들었다. 선우는 나보다 이틀 먼저 이 방에 배정된 놈이었고, 죄목이 특수폭행이라던가 뭐라던가, 정확히는 몰랐지만 낮에는 조용하고 밤에는 이상하게 예민해지는 인간이었다. 지금 그 예민함이 최고조로 올라 있는 것 같았다.
"등 쪽이 뜨거워. 불이 붙은 것처럼." 선우가 셔츠를 걷어 올리며 말했는데, 나는 그 등을 볼 새도 없이 내 손을 내려다봐야 했다. 손톱 밑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뭔가, 곰팡이인가, 아니면 그냥 조명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가. 손끝을 문질러 보니 그 검은 기운이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손톱 뿌리 쪽으로 스며드는 게 보였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몸에 문신도 안 새긴 놈이 갑자기 몸이 잉크에 절었나. 확인하려고 손을 눈앞으로 가져가는데 그 순간 방 전체가 흔들렸다. 지진이라고 하기엔 소리가 없었고, 정전이라고 하기엔 빛이 오히려 늘어났다. 벽에서, 바닥에서, 천장에서 동시에 은백색 빛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색이 어째서인지 낯설지 않았다. 방금 전 내 손톱 밑에서 봤던 그 검은빛과 대비되는 색이라서 그런 걸까.
"뭐야, 이거." 선우가 벌떡 일어나며 뒷걸음질을 쳤고, 나는 그 반응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 하는 게 맞으니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몸이 굳어서 움직이질 못했다. 이게 위기 상황에서 뻔뻔해지는 성격 탓인지, 그냥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그런데 도망칠 곳이 없었다. 독방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고, 빛은 벌써 우리 발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발목을 감싸는 그 빛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통증이 있으면 최소한 뭔가 반응할 텐데, 이건 그냥 존재감만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하린, 잡아, 뭐라도 잡아!" 선우가 소리쳤지만 잡을 게 없었다. 독방에 뭐가 있겠나, 매트리스 하나, 철제 변기 하나, 그게 다였다. 나는 그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좁은 방에서 뭘 붙잡으라는 건지. 이런 게 무섭다는 감정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분석할 틈도 없이 시야가 하얗게 지워졌다.
그다음은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만 남아 있다. 떨어지는 느낌, 아니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러다 뭔가에 부딪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물속에 잠기듯 부드럽게 가라앉는 느낌. 그 와중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계속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거 사형수한테 주는 마지막 환각제 같은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죽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느끼는 건가. 결론은 안 났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랐다. 시간이라는 감각 자체가 사라진 것 같았으니까.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축축한 흙과 이끼, 그리고 뭔가 단내가 섞인 낯선 향이 코를 찔렀는데, 코, 라고 생각한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콧구멍이 아니라 얼굴 전체로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게 무슨 감각인가, 후각이 확장됐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건 청림교도소 3동 독방의 냄새가 아니었다.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는데 그 색이 이상했다. 새벽빛도 아니고 낮빛도 아닌, 옅은 청록색과 주황색이 뒤섞인 하늘이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조각조각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저게 무슨 나무인가 싶을 만큼 굵고 높았는데 껍질에서 은은한 인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청림교도소는 이런 데가 없었다. 아니, 지구 어디에도 이런 데가 있을 리 없었다. 창문 밖으로도 못 본 하늘색이었고, 텔레비전에서도 못 본 나무였다. 여긴 대체 어디냐고 누구한테든 물어보고 싶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팔에 힘을 줬는데, 그 순간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니었다. 아니, 다섯 개는 맞는데 그 끝이 사람 손톱이 아니라 매끄럽고 단단한 갈고리처럼 휘어 있었고, 손등을 뒤덮은 피부가 살색이 아니라 은백색과 재빛이 섞인 갑각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이 이런 걸 뜻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는데, 내 몸이, 이 몸이, 도대체 뭐가 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였다.
손을 뒤집어봤다. 손바닥 쪽은 그나마 사람과 비슷했지만, 손목 위쪽부터는 완전히 다른 재질이었다. 손가락을 구부려봤다. 관절이 움직이는 방식이 이상했다. 사람 손이라면 이렇게 부드럽게 꺾이지 않을 텐데, 이건 마치 관절 자체가 여러 겹으로 나뉜 것처럼 유연하게 접혔다. 이게 개연성이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개연성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그냥 생각을 접었다.
숨을 몰아쉬려는데 가슴 쪽에서 낯선 진동이 느껴졌다. 등 뒤로 뭔가 접혀 있는 감각, 마치 배낭을 메고 있는 것 같은 무게감이 있었다. 설마. 나는 억지로 목을 꺾어 등 쪽을 확인하려 했지만 시야가 닿지 않았다. 목을 이렇게 꺾어도 안 보이면 도대체 얼마나 큰 게 붙어 있는 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상상이 자꾸 됐다. 날개인가. 아니면 다른 팔인가. 둘 다 끔찍한 선택지였다.
그때,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선우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돌렸는데, 반사적으로 안심이 됐다. 아, 이게 나만 겪는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이상한 위안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낸 존재는 선우가 아니었다. 백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사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길게 뻗은 귀를 가진 낯선 형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얬고, 이목구비는 선우와 닮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더 날카롭게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저게 선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믿기지 않았다.
"선우야?" 나는 내 목소리조차 낯설게 들리는 걸 느끼며 조심스레 불러봤다. 그 형체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 색이 원래 선우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원래 진갈색이었던 눈이 지금은 옅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너, 목소리가... 하린이야?" 그 형체가, 아니 선우가 되물었는데, 그 순간 우리 둘 다 서로를 마주 보며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뭔가로 변했고, 그게 뭔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게 선우라고? 나는 그 순간까지도 내 손을 내려다보던 눈을 떼지 못한 채, 이 모든 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숨만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