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막노동하는 옥황상제

1화

새벽 다섯 시, 나는 청하마을 변두리 목재소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이미 굳은살이 세 겹으로 박여 있었다. 도끼를 내려칠 때마다 통나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쪼개진 나무 조각이 마당 흙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주인장은 그 광경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임금을 깎지는 않았다. 하루 일당은 이백 문이었고, 나는 그 돈을 받으려 매일 이곳에 나왔다. 170만 년을 수행해 불멸에 이른 존재가 나무를 패며 하루를 버는 처지라니, 생각할수록 우스웠다. 하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웃을 이유가 없었다. 통나무 더미는 사람 키만큼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골라 도끼머리를 가늠하며 내려칠 각도를 잡았다. 힘을 주지 않아도 통나무는 갈라졌지만, 나는 늘 힘을 준 척 팔을 크게 휘저었다. 정체를 숨기려면 서투른 인간처럼 굴어야 했다. 땀이 나지도 않는 몸에서 땀을 흘리는 시늉을 하는 일도, 이제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부지런하네, 젊은이." 목재소 주인이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 "할 일이 있으니 하는 겁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말을 아끼는 습관은 인간계에 내려온 뒤로 더 심해졌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정체를 들킬 이유는 없었다. 주인은 별다른 대꾸 없이 곳간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다시 도끼를 들었다. 한 시간쯤 더 장작을 패고 나서야 주인은 오늘 몫의 돈을 셈해 건넸다. 동전을 세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그 돈을 소매 안쪽 주머니에 넣고, 목재소 마당을 나섰다. 동전 이백 문의 무게가, 170만 년의 수행보다 더 뚜렷하게 손끝에 느껴졌다. 일을 마치고 우물가를 지날 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동네 아낙들 다섯이 빨래를 하며 무언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방망이로 옷감을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 얘기 들었어? 다음 장날에 인형극단이 들어온대." 한 아낙이 말했다. "뭔 얘기 하는 건데?" 다른 아낙이 물었다. "그 원숭이 요괴 얘기 말이야, 옥황상제를 그렇게 골탕 먹였다는."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 그거! 나도 그 그림자극 봤는데 완전 웃겨." 다른 아낙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천상계 최고 권력자라는 게 원숭이한테 궁전을 뒤집어엎기고, 도망 다니고, 결국 부처님한테 빌빌대며 도움 청하는 거잖아." "맞아 맞아, 그 대목에서 다들 배꼽 잡고 웃었대." "신선이라는 것들도 별 수 없나 봐, 원숭이한테도 쩔쩔매고." "내가 그 대목을 볼 때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다 아팠다니까." 나는 빨랫돌 옆에 놓인 물동이를 내려다봤다. 물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물결이 일고 있었다. "거기 젊은이, 뭘 그렇게 서 있어?" 아낙 하나가 나를 향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다른 아낙이 물었다. "없습니다." 나는 짧게 잘라 말했다. "저 젊은이 원래 저래, 말이 없어." 처음 말을 걸었던 아낙이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그 속삭임마저 내 귀에 또렷이 박혔다. 아낙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그 이야기를 이어갔다. 옥황상제가 벌벌 떨며 도망 다녔다는 대목에서 또 한 번 폭소가 터졌다. 누군가는 그 원숭이 흉내를 내며 팔을 휘저었고, 다른 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채, 그저 지나가는 막일꾼으로만 취급됐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참기 힘들었다. 170만 년 수행으로 도달한 자리를, 이 마을 아낙들은 웃음거리로 씹고 있었다. 소매 속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묵룡이었다. 작은 검은 뱀처럼 몸을 말아 내 팔뚝을 타고 올라온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화가 나면 참지 말고 그냥 화를 내, 왜 그렇게 억누르고 사냐." "조용히 해."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저 아낙들이 뭘 알아서 하는 소리도 아니잖아, 그냥 무시하면 될 걸." 묵룡이 말했다. "안 참으면 어쩔 건데, 여기서 신력을 써서 저것들을 다 얼려버릴까?" 내가 낮게 되물었다. 묵룡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웃었다.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장난치지 마." 나는 소매를 살짝 눌러 그를 조용히 시켰다. 묵룡은 대답 대신 몸을 한 번 꿈틀거리고는 잠잠해졌다. 나는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그 원숭이가 옥황상제 침전까지 쳐들어가서 자기가 옥황상제 하겠다고 난리 쳤다잖아." "어머, 그럼 그때 옥황상제는 뭐 했대?" "글쎄, 부처님 뒤에 숨어서 벌벌 떨었다던데?" "세상에, 그 높은 자리에 앉아서 그러고 있었대?" 그 말이 내 귓속에 박히는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골목을 꺾어 들어갔다. 손끝이 저릿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지만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발밑의 흙길이 유난히 거칠게 느껴졌다. 골목 끝, 낡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담벼락의 낡은 흙벽에서 서늘한 기운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진정해." 묵룡이 내 목덜미쯤에서 몸을 슬쩍 움직이며 말했다. "170만 년을 수행해 도달한 자리다."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것들은 나를 벌벌 떠는 겁쟁이로 알아." "저것들이 아는 건 영상 매체가 만든 이야기지, 진짜 네가 아니잖아." 묵룡이 대답했다. "그래도 아프잖아." 내가 말했다. "진짜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저 사람들은 평생 모를 거잖아." 묵룡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담벼락에서 몸을 떼고 다시 걸었다. 셋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골목마다 저녁밥 짓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집에서는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고, 다른 집에서는 부부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그 평범한 소음들이, 나와는 아주 먼 세계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셋방 구석에 앉아 낡은 이불을 무릎에 덮은 채 촛불 하나를 켰다. 창밖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자기 집으로 흩어져 잠이 들었을 시각이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오래 묵혀둔 기억 하나를 꺼내 들었다. 묵룡을 처음 만났던 날, 천상계의 그 광활하고 차가운 궁전이 떠올랐다. 높은 기둥과 옥으로 된 계단,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던 존재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소매 속의 묵룡을 향해 말했다. 묵룡이 천천히 몸을 펴며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뭘 말하는데?" 묵룡이 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 내가 대답했다. 촛불이 흔들렸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 불꽃이 흔들리는 모양이, 그날 궁전 안을 밝히던 등불과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그 오래된 기억의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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