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촛불이 다 타서 짧아진 자정 무렵, 나는 여전히 셋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심지는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게 줄어 있었고, 불빛은 힘없이 흔들렸다.
바깥에서는 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이웃집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가 그칠 때마다 방 안은 더 조용해졌다.
묵룡은 내 무릎 위에 몸을 말고 있었다.
따뜻한 무게가 다리 위에 고르게 퍼져 있었다.
가끔 꼬리 끝이 움찔거리며 내 손등을 스쳤다.
"그래서 그 얘기를 왜 지금 꺼낸 거야." 묵룡이 물었다.
"오늘 낮에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대답했다.
"그 원숭이 얘기 말이지." 묵룡이 말했다.
"그래." 내가 짧게 대답했다.
방 안은 좁았다.
다섯 평이 채 안 되는 방에, 낡은 나무 궤짝 하나와 이불 한 채가 살림살이 전부였다.
궤짝 모서리는 오래 써서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고, 그 위에는 이가 빠진 놋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곰팡이가 얼룩덜룩 피어 있었고, 창호지는 군데군데 찢겨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이 들어오는 자리마다 촛불이 흔들려서, 나는 몇 번이고 손으로 바람막이를 만들어야 했다.
천상계의 대전과 비교하면 초라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공간이었다.
대전의 기둥 하나만 해도 이 방 열 채는 들어갈 만큼 컸었다.
하지만 나는 그 초라함이 오히려 편했다.
좁은 만큼 숨을 곳이 없었고, 숨을 곳이 없는 만큼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거기서는 아무도 나를 몰라봤다."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여긴 인간계잖아." 묵룡이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몰라봐서 오히려 서러웠다는 거다." 내가 말했다.
묵룡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은 인간의 눈보다 조금 더 길게 째져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의 눈처럼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천상계에서는 다들 너를 두려워하며 알아봤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몰라보니까 서럽다는 거야?" 묵룡이 물었다.
"그런 것 같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무릎 위 묵룡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비늘 없는 매끈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인간의 몸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묵룡의 몸도 조금씩 인간의 살결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등뼈를 따라 이어진 미세한 돌기만은 여전히 용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170만 년을 수행했다." 내가 말했다.
"알아." 묵룡이 대답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가 말했다.
"뭐가 부족했는데." 묵룡이 물었다.
"모르겠다, 권력도 있었고, 불멸도 얻었는데." 내가 대답했다.
'명부의 판관들도 내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고, 사대천왕도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속으로 그 시절을 되짚었다.
'그런데도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었다.'
촛불이 다시 흔들렸다.
"그런데 아무도 나한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말을 이었다.
"신하들은 명령을 기다렸고, 다른 신선들은 눈치를 봤고." 내가 말했다.
"나는 물었잖아." 묵룡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췄다.
목구멍 안쪽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그래, 너는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왜 인간계까지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묵룡이 물었다.
"여기 와서야 알았다, 내가 채우고 싶었던 게 뭐였는지." 내가 대답했다.
"뭔데." 묵룡이 물었다.
"누군가 나를 신이 아니라 그냥 나로 봐주는 거였다." 내가 말했다.
묵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손바닥에 몸을 더 바짝 붙였다.
몸이 따뜻해서, 나는 그 온기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 원숭이 얘기가 웃긴 게 아니라 아팠던 이유도 그거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뭔데." 묵룡이 물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가 아니라, 얼마나 웃긴 존재로 남았는지만 기억되니까." 내가 말했다.
"그게 진짜 너는 아니잖아." 묵룡이 말했다.
"근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게 그거라면, 그게 진짜가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되물었다.
'낮에 장터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꾼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복숭아를 훔쳐 먹다 걸린 어리석은 원숭이 신선이라니.'
'그게 지금 사람들이 아는 나였다.'
묵룡은 그 말에 한참 침묵했다.
꼬리 끝이 내 손목을 감았다가 다시 풀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아는 너는 그날 밤 신력 칠 할을 걸고 나를 구한 신이야." 묵룡이 말했다.
"그건 너만 아는 거잖아." 내가 말했다.
"그럼 나 하나라도 기억하면 되잖아." 묵룡이 대답했다.
나는 그 말에 웃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웃은 것 같았다.
웃음이 터지면서 눈가가 시큰해졌지만, 그것이 슬퍼서 나온 것인지 반가워서 나온 것인지 나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고맙다." 내가 낮게 말했다.
"뭐가 고마운데." 묵룡이 물었다.
"그냥, 다." 내가 대답했다.
묵룡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몸을 한 번 크게 웅크렸다가 다시 폈다.
나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안심이 됐다.
'170만 년 동안 이런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제야 이상하게 느껴졌다.'
'권력을 가졌을 때는 몰랐던 것을, 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된 셈이었다.'
촛불이 마침내 꺼졌다.
심지가 타들어가는 마지막 냄새가 잠깐 방 안에 퍼졌다가 사라졌다.
방 안은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나는 어둠이 낯설지 않았다.
묵룡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묵룡의 숨소리는 일정하게 이어졌고,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날 밤, 오랜만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이불은 얇았고 방바닥은 찼지만, 그 어떤 대전의 침상보다도 깊이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온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며칠 뒤, 마을 전체가 들썩이는 큰 잔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잔치가 무엇을 몰고 올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