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천 원짜리 퇴역 용사

4화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이상한 소음을 들었다. 부르릉- 부르릉- 부르르릉- 차 엔진 소리가 한 대도 아니고 연달아 세 대나 들려왔다. '이 시간에 웬 엔진 소리...'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창가로 기어갔다. 창밖을 내다보니 마당에 자동차 세 대가 이미 나란히 주차돼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하게, 마치 제집 앞마당인 것처럼. '뭐지, 오늘 예약 없었는데.' 나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예약 문자도 없고, 캘린더에도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럼 저 차들은 뭐야.' 부스스한 머리로 대충 겉옷만 걸치고 밖에 나갔다가,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텐트 자리마다 사람들이 서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 명은 화로대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아예 삼각대까지 세워놓고 브이로그를 찍는 중이었다. '여기가 무슨 관광지야?' 내가 어리둥절해서 서 있는 사이, 한 청년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저기, 여기가 그 등심 맛집 맞죠?" 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 나는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등심 맛집이라니, 여긴 캠핑장인데.' "SNS에서 봤어요! 강원도 캠핑장 던전 고기!" 그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던전... 고기?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정체까지 새어나간 건 아니겠지.'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던전 고기라니,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어.'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아하하... 그, 그냥 저희 할아버지가 직접 잡으신 산짐승 고기라서요."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얼버무렸다.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이미 다른 텐트 쪽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얼른 상황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캠핑 동호회 게시판. 제목: [강원도 인제 후기] 여기 진짜 미쳤어요 ㄷㄷ (사진 5장) 작성자: 은정맘 "오랜만에 남편이랑 여름휴가로 인제 캠핑장 다녀왔는데요, 저녁에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등심구이가 인생 최고였습니다. 재료가 뭔지 물어봤는데 산에서 잡은 특산 사슴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블링 보세요 진짜 예술입니다." 댓글 132개. "이거 진짜 소인가요? 색이 이상한데" "사장님 인상 순박하시네 ㅋㅋ" "저기 예약 어떻게 하나요??" "저도 다녀왔는데 진짜 인생고기 맞아요 강추합니다" "이거 혹시 몬스터 고기 아니에요? 색깔 보니까 좀 그런데 ㅋㅋㅋ 농담입니다" 그 댓글 하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음으로 넘어갔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니었다. 같은 글이 다른 커뮤니티에도 옮겨졌고, 몇 시간 만에 조회 수가 십만을 넘겼다. 캡처, 재업로드, 짤방화까지 되며 글은 순식간에 몸집을 불렸다. 한 지역 방송국 기자가 이 글을 캡처해 취재 문의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은, 이때는 아무도 몰랐다. * 헌터협회 강원지부, 지역 이슈 모니터링 부서. 담당자가 커뮤니티 캡처본을 인쇄해 팀장 책상에 올려놓았다. "팀장님, 이거 좀 봐주세요." "뭔데." 팀장이 무심하게 서류를 넘기다 멈췄다. "인제 쪽 캠핑장 사진인데, 이 고기 색깔이 아무래도 좀..." 팀장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화면을 확대했다. 마블링 결이 이상하리만치 짙고, 육질 광택도 일반 소고기와는 결이 달랐다. "이건 몬스터 고기 아냐?" 팀장이 사진을 확대해 살펴보며 미간을 좁혔다. "등록 안 된 던전에서 나온 재료를 무허가로 유통하고 있단 얘기네." "조사 넣을까요?" "댓글 반응도 캡처해놔. 이거 퍼지는 속도 보니까 그냥 둘 일이 아니다." 담당자가 서둘러 메모를 남기는 동안, 팀장은 팔짱을 낀 채 모니터를 한참 노려봤다. "일단 담당 헌터 배정하고 지켜보자고. 괜히 건드렸다가 민원 터지면 골치 아파." 짧은 대화였지만, 그 서류 한 장이 나중에 어디로 흘러갈지는 이 시점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 나는 몰려든 손님들을 대충 수습하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예약 없이 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느라 텐트를 다시 배치하고, 급하게 장작을 더 사 오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중간에 화로대 하나가 부족해서 창고에서 낡은 것까지 꺼내 닦아 썼고, 아이스박스는 세 번이나 얼음을 채워 날랐다. 땀이 뻘뻘 흘렀지만 불평할 시간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헬스라도 좀 다닐걸.'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야, 이거 대박이다 대박!" 할아버지가 손을 비비며 좋아했다. "허허, 이러다 우리 캠핑장이 전국구 되는 거 아니냐!" "그러게요..."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답했다. 속으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러다 던전 사냥이 걸리면 어쩌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헌터협회 조사관이 들이닥치는 장면까지 그려졌다. '조사관: 이 고기 출처가 어디십니까? / 나: 아, 그게... 뒷산 던전에서요...'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등심 재고는 하루 만에 바닥났다. 손님들 중 절반은 실망한 채 돌아가야 했다. "내일은 진짜 없어요? 저 인천에서 왔는데!" 한 손님이 아쉬운 듯 물었다. "저... 재료 수급이 좀 불규칙해서요." 나는 얼버무렸다. '하루에 사냥 한 번이 한계라서요.' 이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졌다. B급 몬스터라고 매일 튀어나오는 게 아니었다. 던전이라고 해서 편의점처럼 24시간 재고가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강할수록 위험 부담도 커졌다. 어제 잡은 놈 말고 그 그림자 정체도 아직 확인 못 했는데, 손님 수요는 이미 내 예상을 훌쩍 넘어버렸다. '나더러 어쩌라고, 몬스터 목장이라도 차리라는 거야?'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마당 평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캠핑장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근처까지 올라와 있었다. 댓글창은 폭발 직전이었고, 누군가는 벌써 지도 앱에 위치까지 태그해놓았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손님이 늘면 캠핑장은 살아나겠지만, 그만큼 재료 수급도 급하게 늘려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눈에 띄면 언젠가 헌터협회 쪽에서 관심을 가질 게 뻔했다.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건 마치 뒷골목에서 혼자 몰래 게임 좀 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전국 방송 카메라가 들이닥친 기분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지만, 그 풍경을 감상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때, 마당 입구로 낯선 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예약 명단에 없는 차였다. '또 뭐야, 이번엔.'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젊은 여자였는데, 어딘가 낯이 익었다. 키가 크고 걸음걸이가 시원시원한, 어디선가 본 듯한 실루엣.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가까이서 보니 눈매가 유독 또렷했고,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기, 여기 사장님 손자분이시죠?" 그녀가 물었다. "네, 맞는데요."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누구지, 예약자 명단엔 없는데... 설마 협회에서 나온 건가?' 순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저 서지우예요. 어릴 때 여름마다 여기 왔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기억 하나가 훅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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