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명작가, 여주는 다섯

3화

[이도윤 시점]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이상한 침묵과 마주쳤다. 원래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존재였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도, 급식실 줄에 서 있어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 그런 부류. 투명 인간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그 투명함에 익숙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편안하다고까지 느꼈다. 그런데 그날은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스무 개가 넘는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훑었다. 문 앞에서 나는 잠깐 몸이 굳었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혼란, 그다음엔 어색함, 그리고 곧 뒤따르는 수군거림. "저 애야?" "달빛조각가래." "진짜 그 소설 쓴 애가 우리 학교에 있었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필명을 누구에게도 밝힌 적이 없었다. 계정도 익명이었다. 이메일 주소도 본명과 무관한 문자열로만 만들었고, 프로필 사진 한 장 걸어둔 적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 사이에 그 정보가 학교 전체에 퍼져 있었다. 발끝부터 서서히 얼음물이 차오르는 듯한 감각이 올라왔다. 나는 그 감각을 억누르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웠는지는 나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짝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익명 게시판이었다. 누군가 내 웹소설의 설정과 어제 벌어진 소동을 나란히 비교해 올린 글이었다. 등장인물 이름 유사성, 다섯 여학생의 캐릭터 특징까지 세세하게 대조되어 있었다. 표까지 만들어서,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인물을 한 줄 한 줄 대응시켜 놓은 정성스러운 게시물이었다. 게시글 아래 달린 댓글은 삼백 개를 넘겼다. 댓글창을 스크롤하는 손가락이 떨렸다. '실화냐', '학교 어디임', '작가 얼굴 궁금하다'는 문장들이 화면을 지나갔다. 누군가는 내 문체를 두고 평가를 남겼고, 누군가는 다섯 명의 캐릭터 중 누가 제일 개연성 없는지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내 이야기가 이미 나와는 무관한 공공의 소유물이 된 것처럼. "이거, 어떻게 알았지..." 나는 그 화면을 보며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워지는 걸 느꼈다. 짝은 내 표정을 살피며 화면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미안하다는 말도,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봤다는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더 훑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제 하은비가 촬영한 영상이 방송부 서버에 그대로 올라갔고, 그 영상을 본 누군가가 내 아이디를 알아보고 웹소설 링크를 함께 퍼뜨렸다고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였는지는 그때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흘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중요한 건, 나는 이제 학교 전체가 주목하는 화제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십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열 번도 넘게 시선을 느꼈다. 등 뒤에서, 옆줄에서, 심지어 앞문으로 지나가던 다른 반 아이들까지 고개를 빼고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마치 내가 유리 상자에 갇힌 전시물이 된 것 같았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몰려와 나를 구경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대놓고 웹소설 내용을 물었다. "야, 다섯 명 중 누가 제일 마음에 들어?" "진짜 그 캐릭터들 실제로 있는 사람들 맞아?" "작가님, 사인 좀 해주세요." 마지막 말은 장난이었겠지만, 그 장난기 어린 어투가 오히려 더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필통을 괜히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어디에도 두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2교시가 끝나고 화장실에 갔을 때는 세면대 앞에서 낯선 얼굴 둘이 나를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걸 들었다. 나는 손을 씻는 척하며 최대한 빨리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점심시간, 나는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그곳이라면 조용할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도서관 구석 자리에는 이시율이 이미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 볕이 잘 드는 그 자리는 원래부터 그녀가 즐겨 앉는 곳이었다. 책을 펼쳐놓은 채,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고 내가 온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건넸다. "도망 온 거지." 그녀가 책을 내려놓지 않은 채 말했다. "...티 나?" "많이." 시율은 짧게 웃었다. 어릴 적부터 알던 그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눈은 웃지 않는,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정하게 느껴지는 웃음.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해. 금세 다른 걸로 관심이 옮겨갈 거야." "근데 왜 하필 이런 걸로..." 나는 책상에 팔을 얹고 그 위에 이마를 묻었다. 목덜미가 뜨거웠다. "글쓰기, 오래 했잖아." 시율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쓴 거, 나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나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고개를 들어 올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언제부터? 어떻게?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을까? "몰랐어?" 그녀가 살짝 미소 지었다. "필명 바꾸기 전, 옛날 계정 알아. 우리 초등학교 때 네가 쓰던 이야기, 기억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옛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시율과 함께 노트에 이야기를 쓰던 그 여름날들. 방과 후, 그녀의 집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서 각자 노트를 채워나가던 오후들. 그때 나는 서툰 글씨로 용과 마법사가 나오는 이야기를 썼고, 시율은 그 옆에서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써나갔다. 서로의 노트를 바꿔보며 킥킥거리던, 아무 걱정도 없던 그 시절.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기억나." 나는 겨우 그렇게 답했다. "그때 노트, 아직도 가지고 있어?" "어딘가에 있겠지." 시율은 대답을 흐리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입가에 남아 있던 옅은 미소는, 그녀가 그 기억을 나만큼이나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후로 별말 없이 각자 시간을 보냈다. 나는 책을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율의 존재만이, 그 조용한 온기만이 소란스러운 하루 속에서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도서관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소란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나는 다른 방향으로 끌려갔다. "도윤 선배!" 하은비였다. 캠코더를 든 채, 뒤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걸음걸이에는 망설임이 조금도 없었다. "선배 오늘 진짜 화제예요! 인터뷰 좀 해도 돼요?" "인터뷰라니..." 나는 뒤로 반걸음 물러났지만 이미 캠코더 렌즈는 내 얼굴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방송부 채널에 올릴 거예요. 학교 축제 특별 코너로!" "저기, 나는 그런 거..."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캠코더 렌즈 앞에 서게 되었다. 렌즈의 빨간 녹화 불빛이 유독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 다섯 명의 여자친구, 진짜 있는 거예요?"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그냥... 소설이고..." "에이, 너무 솔직하게 말 안 해줘도 돼요." 은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순수한 호기심 이상의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렌즈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럼, 그 다섯 명 중에 제일 애정 담아서 쓴 캐릭터는 누구예요?" "그건... 잠깐, 그게 왜 중요한데..." "다 궁금해하니까요!" 은비는 캠코더를 살짝 기울이며 내 표정을 클로즈업하려는 듯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조회수가 벌써 백 개 넘었어요. 다들 선배 얘기만 해요." 나는 그 말에 위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조회수, 백 개.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조용히 써왔던 이야기가, 이제는 얼굴과 이름이 달린 채로 학교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간신히 촬영에서 빠져나온 나는 정문 근처에서 또 다른 사람과 마주쳤다. 황보예령이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우아한 자세로 서 있다가, 나를 보자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걸음걸이마저 흐트러짐이 없었고, 교복 치마의 주름조차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많이 힘들었지." 그녀가 손에 든 상자를 건넸다. "우리 집에서 온 과자야. 먹으면서 좀 진정해요." 포장이 깔끔한 상자였다. 리본까지 매어져 있어서, 마치 미리 준비해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매번 이렇게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예령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온화한 미소에 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차분했고, 그 차분함이 지금처럼 정신없는 날에는 유독 고맙게 느껴졌다. "고마워." 나는 상자를 받아들며 겨우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하루, 많이 시달렸을 텐데." 예령이 내 얼굴을 살피며 덧붙였다. "표정이 안 좋아 보여." "괜찮아. 그냥... 좀 정신이 없어서." "천천히 해요. 사람들 관심이라는 게, 원래 오래 안 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이, 도윤!" 체육관 방향에서 유다인이 뛰어오고 있었다. 운동복을 입은 채였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오늘 배구부 훈련 있는데, 같이 뛸래? 스트레스 풀리는 데는 운동이 최고야." "난 운동 잘 못 하는데..." "그건 상관없어. 그냥 몸 움직이면 돼." 다인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머릿속 복잡한 거, 뛰다 보면 다 날아가." "지금은 좀..." "알았어, 알았어. 억지로 안 끌고 갈게." 다인이 씩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근데 진짜, 너무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마. 표정이 그게 뭐냐, 곧 무너질 것처럼 생겼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체육관 쪽으로 뛰어갔다. 뒷모습마저 시원시원했다. 나는 그 넷의 얼굴을 순서대로 떠올렸다. 시율의 조용한 이해, 은비의 순수한 호기심, 예령의 온화한 배려, 다인의 솔직한 다정함.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대하는 그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누구는 위로했고, 누구는 궁금해했고, 누구는 챙겨주었고, 누구는 함께 뛰자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감조차 없던 내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서린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갔다. 어제 그녀는 나중에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떠올리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른 넷과 달리, 서린의 말투에는 항상 어떤 무게가 실려 있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반드시 그 의미를 곱씹어야만 하는 그런 말들. 하루 종일 학교를 떠돌며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나는 그 말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방과 후, 나는 그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교문을 나서려는데, 생활지도부실 앞에서 서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하교하는 아이들의 무리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오직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도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어제와는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어제의 목소리에서는 담담한 통보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 아래 무언가 더 깊고 단단한 것이 깔려 있었다. "시간 좀 있어? 얘기 좀 하자." 나는 그 말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제 그것을 나에게 확인시켜주려는 사람처럼. 주변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교문 밖 자동차 소리, 그 모든 것이 뭉개진 배경음처럼 아득해지고,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귓가에 박혔다. 나는 대답 대신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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