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날 밤의 습격은 세가 안에서 조용히 덮였다. 강태산이 사냥개의 사체를 처리하고, 청랑의 소행임을 짐작하면서도 확실한 증좌가 없다는 이유로 가주 청현덕에게 정식으로 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강태산은 청랑을 따로 불러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을 뿐이었고, 그 이상의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목세가의 위계 속에서 병든 삼공자의 목숨은, 칠공자의 재능과 맞바꾸기에는 지나치게 가벼운 무게였다.
청도현은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억울함이나 분노보다도, 그의 마음을 채운 것은 다른 것이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눈뜬 낯선 기운, 그리고 그 기운이 실어온 방대한 기억들이었다.
소련만이 그날 밤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개와 맞서던 순간, 공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던 것을, 그 손끝이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의 것처럼 정확하게 움직였던 것을, 그녀는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공자님, 그날 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며칠이 지난 후, 소련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 담긴 물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청도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다만, 들어주겠느냐." 그는 그렇게 서두를 떼고, 자신이 겪은 것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전생의 기억, 묵혼문의 종사였던 백린이라는 존재, 그리고 옥천경이라는 심득이 폭주하듯 되살아난 순간까지.
소련은 놀란 눈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몇 번이나 숨을 삼켰다. 병약한 삼공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녀가 지금까지 알아온 세상의 이치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종사라니, 묵혼문이라니. 강호의 전설 속에서나 들어봤을 이름들이 공자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의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날 밤 자신이 두 눈으로 본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사냥개의 목을 정확히 꺾어버린 손, 흔들림 없던 눈빛,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침묵. 모든 것이 하나로 꿰어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소련은 이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이 어떤 분이셨든, 저는 지금의 공자님을 모실 것입니다." 소련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둔 답을 말하듯, 그녀의 어깨는 곧고 단단했다.
청도현은 그녀의 충심에 잠시 말을 잃었다. 전생, 묵혼문의 종사로 살았던 그의 곁에는 수많은 수하와 문도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충성은 대개 힘과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눈빛에는 그런 계산이 없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그를 향한 진심뿐이었다.
"고맙다." 청도현은 짧게 말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내가 하는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다오. 특히 이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청도현이 말했다. 소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날부터, 청도현은 자신의 몸을 다시 배우는 일에 몰두했다. 낮에는 여전히 병약한 삼공자의 모습으로 뜰을 거닐고, 시비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내며 살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별채의 문을 걸어 닫고 홀로 앉아 옥천경의 심득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낮의 청도현과 밤의 청도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낮에는 걸음걸이 하나에도 힘을 빼고, 숨을 몰아쉬며 창백한 안색을 유지해야 했다. 세가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그를 향해 있었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소문이 퍼질 것이었다. 그는 뜰을 거닐며 마주치는 시비들에게 힘없이 웃어 보이고, 가끔 기침 소리를 흘려가며 여전히 병들어 있음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 연기 밑에서, 그의 눈은 세가의 담과 지붕, 그리고 그 너머의 하늘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담을 넘어야 할 날이 올 것을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은 여전히 완전하지 않았다. 조각조각 흩어진 채, 어떤 상황이나 감각을 마주할 때마다 하나씩 떠오르는 식이었다. 손끝에 스치는 바람의 감촉에서 문득 암기의 궤적이 떠오르기도 했고, 약초의 향을 맡다가 갑자기 독의 배합법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만약 전생의 모든 무공을 한꺼번에 되찾았다면, 이 병약했던 몸이 그 격렬한 진기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옥천경의 첫 관문은 몸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는 되새겼다. 각성의 순간 몸속의 탁기가 밀려나갔다고는 해도, 완전한 정화까지는 아직 먼 길이었다. 그는 소련이 몰래 구해다 준 약초들을 이용해, 옥천경의 심득에 따라 매일 밤 자신의 기혈을 조율했다.
처음에는 미약한 흐름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몇 번이고 정신을 잃었다. 단전 어딘가에서 겨우 실낱같은 기운이 일어나는가 싶으면, 곧 통제를 벗어나 혈맥을 거슬러 오르며 뼈마디를 뒤흔들었고, 그때마다 청도현은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결국 정신을 놓아버리곤 했다. 눈을 뜨면 몸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지끈거리는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생의 그가 무수한 좌절 속에서도 결국 옥천경의 극의를 완성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흐름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기혈이 다스려지는 밤마다, 소련은 문밖에서 조용히 대기했다. 혹여 청도현이 정신을 잃으면 곧바로 들어가 몸을 눕히고, 식은땀을 닦아주고, 물을 먹였다. 그녀는 낮에는 시비로서의 일을 하고, 밤에는 이 은밀한 수련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조력자로서 잠을 줄여가며 곁을 지켰다. 청도현은 그런 그녀에게 몇 번이고 이제 그만 쉬라 말했으나, 소련은 늘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낮에는 병자로, 밤에는 구도자(求道者)로 사는 이중의 삶 속에서, 청도현의 몸은 서서히 변해갔다. 병든 안색이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고, 늘상 숨을 헐떡이던 걸음걸이도 점차 안정되었다. 손끝의 떨림이 줄어들었고, 밤마다 찾아오던 오한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 변화를 남들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청도현은 여전히 병약한 척 걸음을 늦추고, 숨을 몰아쉬는 시늉을 하며 세가 사람들의 시선을 속여야 했다. 때로는 일부러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시비들이 놀라 달려와 부축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병든 삼공자의 허물을 뒤집어쓴 채, 진짜 자신을 숨겨야 하는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있었다.
"공자님, 강 교사님이 오셨습니다." 소련이 조심스레 알렸다. 청도현은 순간 긴장했다. 밤중에 무학 지도교사가 찾아올 이유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 이 시각은, 그가 한창 기혈을 다스리던 참이었다. 혹여 그 기운의 흐름을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불안이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방으로 들어선 강태산은 우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와, 청도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의심과 확신이 뒤섞여 있었다. 등불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무뚝뚝함 대신, 뭔가를 확인하려는 자의 팽팽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공자님, 솔직히 여쭙겠습니다." 강태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 며칠, 밤마다 별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병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청도현의 눈빛이 순간 굳었다. '들켔구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무학 지도교사라는 자의 감각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발각된다면, 지금까지의 은밀한 수련이 모두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가 세가 전체에 알려질 위험까지 있었다. 그러나 강태산의 다음 말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저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고하지 않았습니다." 강태산이 말을 이었다. "오히려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선천허약지체를 지닌 공자님께서, 그런 기운을 다룰 수 있게 되셨는지."
청도현은 잠시 그를 응시했다. 강태산은 청목세가 안에서 유일하게, 병든 삼공자를 차별하지 않고 대해온 인물이었다. 무학 지도교사로서 세가의 모든 공자들을 가르치면서도, 그는 늘 청도현에게도 최소한의 예의와 관심을 잃지 않았다. 다른 교사들이 청도현을 가르치는 시간마저 아까워했던 것과는 달리, 강태산은 몇 번이고 별채를 지나며 안부를 물었고, 그날 밤 개의 습격에서도, 그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 사람이라면.' 청도현은 짧은 고민 끝에 결심했다. 완전한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으나, 최소한의 사실만은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날 밤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우연히 잠들어 있던 어떤 힘이 눈을 떴습니다." 청도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저 자신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힘 덕분에, 조금씩 몸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강태산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의 눈이 잠시 청도현의 안색과 자세를 훑었다. 병약함을 가장한 몸짓 속에서도, 뭔가 미묘하게 달라진 기색을 그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낀 채 잠시 침묵하다가, 오히려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공자님, 만약 그 힘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를 찾으십시오. 저는 세가의 무학 지도교사입니다. 어느 공자든 배우려 한다면, 가르치는 것이 제 본분입니다."
그 말에는 청랑을 비롯한 다른 공자들과 청도현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청도현은 그 진심을 느끼며, 처음으로 이 세가 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 묵혼문의 종사로 수많은 인재들을 부려왔던 그였으나, 이토록 사심 없이 손을 내미는 자는 흔치 않았다.
"감사합니다, 강 교사님." 청도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강태산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밤바람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청도현은 한동안 문가에 서서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후로도 청도현의 은밀한 수련은 계속되었다. 옥천경의 심득을 되짚으며 기혈을 다스리는 한편, 전생 묵혼문의 독술과 암기 절학의 기초를 하나씩 복원해나갔다. 손끝으로 은침을 다루는 감각, 독초의 성질을 구분하는 후각, 급소를 짚어내는 정밀함. 이 모든 것이, 조금씩 그의 손과 몸에 다시 새겨지고 있었다.
어느 밤에는 소련이 몰래 구해온 마른 독초 몇 줄기를 앞에 두고, 청도현은 눈을 감은 채 그 향만으로 성분을 가려내는 시험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처음에는 흐릿하기만 했던 감각이,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또렷해졌다. 이것은 부자(附子)의 향, 이것은 반하(半夏)의 향. 전생의 기억이 손끝과 코끝을 통해 하나씩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밤에는 어둠 속에서 은침 몇 개를 허공에 던져, 벽에 걸린 낡은 천 조각의 정해진 자리에 꽂히도록 연습했다. 처음엔 번번이 빗나가던 침이, 점차 정확한 자리에 박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단전 깊은 곳에서 미약하지만 분명한 진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얼어있던 강물이 봄기운에 풀려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실낱같던 그 흐름이, 점차 뚜렷한 궤적을 그리며 단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은 후천(後天)의 첫 관문, 일중(一重)의 경지였다. 병든 폐인이었던 청도현이, 마침내 무공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되새겼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미세하게 퍼져나가는 기운의 잔향을 느끼며, 그는 눈을 떴다. 창밖으로는 그믐에 가까운 달이 희미하게 걸려 있었고, 그 달빛이 방안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청도현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에는, 병든 삼공자의 것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서늘한 결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세가의 그림자 속에서, 그를 향한 또 다른 계략이 조용히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